예배를 거두지 않는 아내에게 칼을 휘두르다

 

부처님께 예배 올리는 것을 
못마땅해 하던 바라도사와는 
“부처님 가르침과 떨어져서는 
잠시도 살아갈 수 없다”는 
아내 다닌사니의 말에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지고 

죽음을 앞둔 그 순간 
아내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부처님을 떠올리며 
예배를 올렸다

“나모 다싸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싸…”  

지금은 법적으로 폐지되었으나 부처님 당시 인도에는 ‘사성제’라는 계급제도가 존재했다. 혈통에 따라 신분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제도로 가장 높은 제1계급은 바라문(브라만)으로 육신을 넘어 정신적인 영역을 다스리는 일에 종사했는데 신들과 소통하는 성직자나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수행자들이 많았다. 바라문은 군주의 스승이 되기도 했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제2계급은 찰제리(크샤트리아)로 군인 즉 무사였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에 무사들은 왕위에 올라 통치자가 되거나 귀족이나 관리가 되어 정치를 했다. 왕족 출신인 부처님 또한 찰제리였다. 제3계급은 비사(바이샤)로 농업이나 상업에 종사하는 평민들이었다. 제4계급은 수타라(수드라)로 천민이었고 그 아래 도축, 도살업에 종사하는 최하층 전타라가 있었다. 

신분과 혈통에 집착한 바라문

부처님 당시 인도는 여러 왕국들이 서로 패권을 다투는 약육강식의 시대이자 변화의 시대이기도 했다. 전쟁으로 인해 혼란이 잦다보다 바라문 중에서도 국가의 안위나 학문적 명예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며 상업이나 금융업에 종사하여 큰 부를 누리는 현실주의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같은 바라문 계급 내에서도 우열을 철저하게 가리는 풍조가 생겨났다. 

고대 인도의 신화에 따르면 제1계급인 바라문은 범천(힌두교 우주의 창조신)의 ‘입’에서 태어났고, 제2계급인 크샤트리아는 범천의 ‘옆구리’에서 태어났으며, 제3계급인 바이샤는 범천의 ‘배’ 혹은 ‘다리’에서 태어났고, 제4계급인 수드라는 범천의 ‘발바닥’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바라문 중 고귀한 혈통을 내세우는 이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들은 범천의 ‘입’이 아니라 ‘정수리’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다닌사니’라는 바라문 종족이 바로 그랬다. 

다닌사니 종족은 혈통에 대한 우월의식과 집착이 매우 강했다. 바로 그 다닌사니 종족 출신의 여인 한 명이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종족의 명성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그녀는 이름 대신 ‘다닌사니’라고 불렸다. 다닌사니의 남편은 그녀와 같은 바라문으로 ‘바라도사와’ 종족 출신이었다. 그는 바라문 계급에 대한 자부심이 컸고, 매우 교만한 남자였다. 하지만 혈통의 우열을 굳이 나누자면 아내인 다닌사니 쪽이 훨씬 높았다. 그래서 그는 아내에게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다닌사니는 부처님께 귀의하였으나 그녀의 남편 바라도사와는 삼보에 관심이 없었다. 신심이 깊은 다닌사니는 종종 부처님과 스님들이 집으로 초대하여 공양을 대접하곤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좋은 재료를 준비하고 이른 아침부터 정성껏 요리를 해서 훌륭한 음식을 차려냈다. 그 모습이 보기 싫었던 바라도사와는 부처님이나 스님들이 오시는 날이면 일찍 집을 나가서 늦게 들어오곤 했다. 우연이라도 마주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다닌사니의 생활예배

반면 다닌사니는 남편 바라도사와가 바라문 수행자들을 초대할 때면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과 똑같이 정성을 다했다. 물을 섞지 않고 우유를 넣어 지은 밥을 대접하였고, 식사에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챙겼다. 그래서 바라도사와는 아내에게 불평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한 가지 불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닌사니가 수시로 부처님께 예배를 올리는 것이었다. 그녀의 예배는 거창하거나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존경의 마음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닌사니는 앉거나 서거나 눕거나 걸을 때, 일을 시작하기 전이나 일을 마쳤을 때, 음식을 먹기 전이나 다 먹었을 때 틈틈이 예배를 올렸다. 

“나모 다싸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싸”

다닌사니의 예배는 이 짤막한 문구를 소리 내어 세 번 외우는 것이 전부였다. 이는 ‘모든 번뇌를 떠나 사성제의 진리를 스스로 깨달으신 거룩하신 부처님께 예배합니다’라는 뜻이었다. 다닌사니의 예배는 기쁘거나 슬플 때, 감사한 일이 있을 때 ‘나무 석가모니불’ 혹은 ‘나무 관세음보살’의 염불을 늘 외우는 우리네 보살님들의 모습과 닮았다. 

바라도사와의 짜증 

삼보에 귀의한 후 다닌사니는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녀는 평범한 일상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고,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이 곧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하니 항상 좋은 마음을 갖고자 하였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하였다. 그러다보니 말이나 몸, 마음으로 업을 짓는 일이 크게 줄어들었고 필요 없는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다닌사니의 얼굴은 늘 평온하였고 행동은 늘 침착하였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쓸데없는 간섭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닌사니를 볼 때면 자신도 모르게 절로 편안함을 느꼈다. 

다닌사니는 자신에게 이러한 가르침을 주신 부처님을 한없이 존경했다. 부처님을 자주 찾아뵐 수는 없었지만 순간순간 부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들 때면 그때마다 작은 소리로 주문처럼 염불을 했다. 이러한 행동은 점차 자연스럽게 다닌사니의 습관이 되었다. 바라도사와의 눈에 가장 못마땅한 것이 바로 다닌사니의 이 습관이었다. 아내로서 다닌사니는 흠 잡을 곳이 없었다. 다만 숨 쉬듯 자연스럽게 부처님께 예배를 올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언제부터인가 바라도사와의 귀에는 너무나 거슬리기 시작했다. 한번 그런 생각이 들자 다닌사니의 입에서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나모’라는 말이 나오기만 해도 그는 화가 치솟았다. 한번 그런 생각이 품기 시작하자 아내에 대한 불만이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다닌사니는 범천에게 예배를 하지 않는다.’

‘다닌사니는 짐승을 죽여 제사를 지내지도 않는다.’

‘다닌사니는 불선업을 씻어내기 위해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지도 않는다.’ 

부부싸움이 벌어지다

그러던 어느 날, 바라도사와가 평소처럼 바라문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하기로 하였다. 식사 준비는 언제나 다닌사니의 몫이었기에 그는 아내에게 바라문들을 몇 명을 초대하였는지, 그들에게 어떤 음식을 올리면 좋을 것인지를 이야기하였다. 다닌사니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꼼꼼하게 음식 준비를 했다. 하지만 바라도사와의 얼굴에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다. 그날 밤, 바라도사와는 잠자리에 들기 전, 진지한 얼굴로 다닌사니에게 참고 참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여보, 내일은 우리 집에 바라문들이 오는 날이오. 그러니 내일 하루만이라도 ‘나모’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좀 참아주면 안되겠소? 당신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그 고타마에게 예배를 올리는데, 나를 비롯하여 바라문들의 귀에는 그것이 너무나 듣기 싫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듣기 싫다하여도 저는 부처님을 떠올릴 때마다 절로 예배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억지로 참으려 한다고 참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닌사니의 대답을 들은 바라도사와는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간신히 억누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럼 바라문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만이라도 입을 다물 수는 없겠소? 진실로 마음을 먹기만 한다면 사람의 의지로 할 수 없는 일은 없소.”

“저는 도저히 그럴 수 없습니다.”

결국 아내의 목숨을 위협 

다닌사니의 단호한 거절에 바라도사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크게 쉬고 나서 침대 머리맡에서 번쩍이는 긴 칼을 꺼냈다. 다닌사니가 끝내 자신의 부탁을 거절할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그녀를 협박하기 위해 준비해 둔 칼이었다.

“당신의 뜻은 잘 알겠소. 하지만 나도 이번에는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요. 이 칼을 잘 보시오. 만약 당신이 내일 바라문들 앞에서 그 고타마에게 예배를 한다면 바로 이 칼로, 내가 직접 당신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이오.”

바라도사와는 자신이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다닌사니가 겁을 먹고 그의 말에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닌사니는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담담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오, 여보! 당신의 뜻대로 하세요. 그 칼로 저를 찌르고 싶으시다면 찌르세요. 그렇다 해도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떨어져서는 잠시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끝내 고집을 꺾지 않는 아내를 바라보는 바라도사와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무서운 눈으로 다닌사니를 노려보던 그는 결국 칼을 휘둘렀다. 죽음을 앞둔 그 순간 다닌사니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부처님을 떠올리며 예배를 올렸다.

“나모 다싸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다싸.”

[불교신문3327호/2017년9월6일자] 
 

글 조민기  삽화 견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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