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불복장 의례단. 사진제공=경암스님.

불심과 시대상 담은 타임캡슐
사리, 경전, 발원문 등 봉안 
종교적 권위와 생명력 상징
종합적 조사 등 관리 ‘필요’

불복장(佛腹藏). 불상 내부에 사리, 경전, 발원문 등을 봉안하는 것을 가리킨다. 복장은 점안(點眼)과 함께 불상을 단순한 조각상에서 종교적 위의를 지닌 생명력을 갖게 하는 성스러운 의례이다. 그런 점에서 불상의 복장이 지닌 상징적인 의미는 매우 크다.

대표적인 복장물은 사리, 오곡, 오색실, 경전, 종이, 직물, 의복, 다라니, 만다라, 후령통(喉鈴筒), 발원문을 들 수 있다. 발원문에는 불상을 조성한 장소와 시기 그리고 조성 사유, 발원자, 시주자 등을 기록한다. 그러나 부처님 진신사리가 희유하고 수량도 한정적이기 때문에 법(法)사리에 해당하는 불경(佛經)과 다라니를 봉안한다. <조상경(造像經)>에는 복장물의 구체적 내용과 의례가 전해지고 있다

복장물은 시대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유구한 불교역사와 함께 한 복장물은 그 시대의 상황을 증명하는 타임캡슐이다. 불상에 성물을 납입하기 시작한 것은 나무로 불상을 조성하면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송일기 중앙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해인사 법보전 비로자나불에 ‘중화(中和)3년(883년)’이란 연대가 기록되어 있다”며 “비록 부정론이 팽배하지만 이 기록이 신빙성이 있다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복장 사례가 아닌가 싶다”고 주장했다.

이승혜 삼성미술관 리움 책임연구원은 “한국불교 전통에서 조상(彫像) 안에 물목을 봉안하는 의례는 늦어도 고려 중기인 12~13세기에 보편화 된 것”이라고 가늠했다. 고려시대 이규보가 남긴 ‘낙산관음복장수보문병송(洛山觀音腹藏修補文竝頌)에는 “심원경(心圓鏡) 2개, 오향(五香), 오약(五藥), 색사(色絲), 금낭(錦囊) 등 여러 가지 물건을 갖추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1315년 민지가 지은 ’국청사금당주불석가여래사리영이기(國淸寺金堂主佛釋迦如來舍利靈異記)‘에는 팔엽통(八葉筒)이 복장물로 등장한다.

1346년에 조성된 문수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의 복장물인 <미타복장입물색기(彌陀腹藏入物色記)>에 기록된 물목을 통해 고려 시대 복장물을 짐작할 수 있다. 복장물은 다음과 같다. “청목향(靑木香) 곽향(藿香) 침향(枕向) 유향(乳香) 정향(丁香) 부자(符子) 하자(荷子) 인삼(人蔘) 감초(甘草) 계심(桂心) 유리(琉璃) 호박(琥珀) 진주(眞珠) 생금(生金) 생은(生銀) 대황(大黃) 소황(小黃) 우황(牛黃) 자황(雌黃) 웅황(雄黃) 심경(心鏡) 심주(心珠) 후령(喉鈴) 오색백(五色帛) 오색사(五色絲)15척(尺) 건반(乾飯) 오곡(五穀) 황폭자(黃幅子) 사리동(舍利同) 팔엽동(八葉同) 청화(靑花) 대청(大靑) 대록(大綠) 주홍(朱紅) 황칠(黃漆) 남분(南粉) 칠(漆) 아교(阿膠)”

불상 복장물 가운데 경전, 발원문, 조성기, 사경 등 전적(典籍)도 많은 편이다. 종이와 책이 귀했던 시절에 경전과 종이를 불상에 모신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특히 전적류는 복장을 모실 당시 어떤 경전을 독송했는지는 물론 서지학(書誌學) 측면에서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

송일기 중앙대 교수는 “조선시대 전국 사찰에서 간행된 불교전적은 대략 400만부로 추산하는데 현재까지 보존된 수량은 40만부 정도”라고 추정했다. 불교 전성기인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발행된 불교전적까지 감안하면 발행 부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송일기 교수는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조성된 불상에 넣은 불경은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국립도서관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보물 1780호 해인사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상에는 문화재급 전적(典籍)이 상당수에 이른다. 해인사 비로자나불상을 통해 다른 불상의 복장물의 짐작이 가능하다. 비로자나불상 복장에서 수습된 문화재급 지류(紙類)는 전적류 58점, 다라니류 6점, 중수(重修)발원문 2점이다. <대방광불화엄경 진본(晋本)> <대방광불화엄경 정원본(貞元本)> <금광명경> <반야바라밀다심경>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초조(初雕)본 약사유리광여래본원공덕경> <아미타경소(疏)> <감지금니문수최상승무생계법사경(紺紙金泥文殊㝡上乘無生戒法寫經)>. 대부분 고려시대인 12~13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목판본 또는 필사본이다.

복장에서 나온 전적은 불교학 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1986년 경주 기림사 비로자나불상에서 도굴범에 의해 출토된 54건 71책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가운데는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호접장본(蝴蝶裝本)과 다수의 고려시대 사경도 있다. 이 경우처럼 귀중한 불교학 연구자료의 상당수가 불복장에서 발견된 사례는 많다. 한국 불교사뿐 아니라 동아시아 불교문헌사와 서지학, 인쇄사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전적들이다.

송일기 교수는 “우리나라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불교전적은 상당부분 불상에서 수습된 자료로 판단된다”면서 “그런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방치된 상황에서 도굴범이 도난하고, 불상을 개금(改金)하는 과정에서 수습한 복장유물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불상과 불복장은 종교적 위의를 지님과 동시에 당대의 역사적 문화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크다. 그런 점에서 교계와 더불어 정부에서도 불복장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체계적인 관리가 요구된다.

한편 복장물은 불상에만 납입하는 것은 아니다. 불화(佛畵)를 조성할 때도 복장물이 함께 한다. 불화의 복장은 복장낭(腹藏囊)을 걸거나 그림 뒷면에 부착한다. 

복장에서 옷 조각이 나온 까닭은?

지난 11일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부처님께 숨결을 불어넣다 - 불상 안의 복장유물’이란 주제로 열린 국제학회에는 국내외 학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해 불복장에 대한 관심을 증명했다. 전통불복장및점안의식보존회장 경암스님도 참석해 학자들과 대담을 갖고 불복장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고려말 불복장에 온전하지 못한 형태의 옷이 들어 있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경암스님은 “그 시대의 생각은 모르겠다”고 전제한 후 다음과 같이 답했다.

“예를 들어 지금 부처님을 한분 모시는데 많은 분들이 각자 옷, 비단, 천을 보시했다고 하자. 그런데 불상 안에 모두 봉안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는) 각자가 보시한 천을 조금씩 잘라 시주자 이름을 써서 복장에 모실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남은 물품으로는 (불상 좌대의) 방석이나 가사로 사용할 것이다. 옛날에는 책이 굉장히 귀해 복장에 모셨다. 하지만 지금은 책이 너무 많다. 보시한 책을 모두 불상에 넣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제목과 저자 이름이 있는 부분만 떼어서 봉안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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