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은 왕실후원 받고, 왕국은 안정을 찾다

 

지바카의 공덕으로 

분소의 대신 얼룩도

기운 자국도 없는 

깨끗한 가사 입은 스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앉자 

죽림정사 전체가 

환하게 빛나고 …

한편 지바카 주선으로 

부처님을 친견하면서 

두통과 불면증이 사라진

아자타삿투왕은 

빔비사라왕에 버금가는 

군주가 되어 

부처님과 교단을 보호하며 

왕국을 번영으로 이끌었다

지바카가 올린 연꽃의 향기를 맡고 변비를 깨끗이 치료하신 부처님께서는 체액의 균형을 찾으셨다. 이에 지바카는 기력을 보충해주는 음식들을 부처님께서 공양으로 올렸다. 부처님께서 흡족하게 공양을 마치시자 지바카는 상을 하나 내려달라고 청했다. 부처님께서는 침묵으로 그의 청을 허락하셨다. 그러자 지바카는 그의 오랜 숙원이었던 가사 공양을 허락받을 기회가 왔음을 알았다. 그는 자세를 단정히 하고 부처님께 예배를 올렸다. 

부처님께 가사 보시를 허락받다 

“부처님이시여, 제자에게는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지금까지 누더기 가사만을 사용하십니다. 교단의 스님들에게도 누더기 가사만을 허락하셨습니다. 제자는 파조타왕에게 받은 1만 필의 비단을 교단에 바쳐 가사를 보시하고 싶습니다. 또한 파조타왕에게 받은 시베야카 옷감으로 가사를 만들어 부처님께 바치고 싶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신도들이 교단의 스님들에게 가사를 보시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교단의 스님들이 깨끗한 천으로 만든 가사를 사용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부처님이시여, 이것의 제자의 간절한 바람이옵니다.”

지바카의 소원에는 한 조각의 사심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의 간청은 오직 부처님과 교단을 위한 것이었다. 부처님 또한 그의 절절한 마음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지바카의 간청을 받아들이셨고, 가사 공양을 허락하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출가 제자들은 거사들의 옷과 같은, 깨끗한 천으로 만든 가사를 입어도 좋다. 만약 누더기 가사를 원한다면 누더기 가사를 입어도 좋다. 누구든 만족하는 가사를 입는 것을 여래는 찬탄한다.”

지바카의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과 지혜 덕분에 스님들은 건강을 챙길 수 있었고 신도들은 보시의 공덕을 쌓을 기회가 늘어났다. 더러운 가사로 인한 질병 또한 한결 줄어들었다. 교단에 가사 공양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된 신도들은 기뻐하며 지바카의 공덕을 찬탄하였고 바로 다음 날 수천 벌의 가사가 죽림정사 앞에 놓였다. 수많은 신도들이 기쁜 마음으로 밤을 새워 만든 가사였다. 그날 죽림정사의 스님들은 분소의 대신 신도들이 올린 깨끗한 가사를 입었다. 옷이 날개라고 했던가. 얼룩도, 기운 자국도 없는 깨끗한 가사를 입은 스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앉자 죽림정사 전체가 환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이 모습을 본 대중들은 환희심이 피어올랐다.

지바카는 시베야카 옷감으로 만든 귀중한 가사를 부처님께 올렸다. 부처님께서는 이 가사를 매우 소중하게 여기셨고 특별한 의식이 있는 날이면 잊지 않고 이 가사를 입으셨다. 부처님의 시봉을 담당한 아난존자는 이 시베야카 가사에 좀이 슬지 않도록 가끔 바람을 쐬거나 햇빛을 쐬어주면서 세심하게 관리를 하였다. 지바카가 올린 시베야카 가사는 그만큼 세상에 보기 드문 것이었다. 

왕실과 교단의 건강을 충실하게 지켜온 지바카는 빔비사라왕과 부처님의 비극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이기도 했다. 전륜성왕이라 불리며 마가다 왕국의 번영을 이끌고 왕으로서 가장 먼저 삼보에 귀의한 뒤 정성을 다하여 교단을 후원했던 빔비사라왕의 말년은 참혹했다. 언제나 위풍당당했던 빔비사라왕은 베데히 왕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친 아들 아자타삿투 왕자에 의해 유폐되어 굶주린 몸으로 지독한 고문을 받은 끝에 죽음을 맞았다. 

두통에 시달리는 아자타삿투왕

아버지를 유폐, 감금한 뒤 왕위에 오른 아자타삿투왕은 빔비사라왕이 세상을 떠난 뒤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렸다. 눈을 감으면 앙상한 몸으로 피투성이가 된 채 세상을 떠난 빔비사라왕의 모습과 슬퍼하던 베데히 왕비의 얼굴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건장했던 아자타삿투왕은 점점 수척해졌고, 얼굴은 마치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 병을 앓아온 사람처럼 창백해졌다. 그토록 원하던 권력을 얻었지만 정작 왕위에 오른 뒤에는 단 하루도 행복한 날이 없었다. 죄책감과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이 불쑥불쑥 가슴을 짓누를 때면 숨 쉬는 것조차 괴로울 때가 많았다. 견디다 못한 아자타삿투왕은 지바카를 불렀다. 빔비사라왕은 세상을 떠났지만 지바카는 여전히 왕실 주치의였기 때문이다. 

“편히 잠을 자 본적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낮에는 수백 개의 바늘이 머리를 찌르는 것 같은 두통이 수시로 찾아오고 밤에는 수십 근의 바위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답답하여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도대체 이 고통의 원인이 무엇이란 말이냐?”

아자타삿투왕의 호소를 들은 지바카는 마침내 그를 부처님께 인도할 기회가 왔음을 알았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한 마디 한 마디 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하여 답했다. 

“대왕이시여, 대왕의 병은 저의 재주나 제가 가진 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칠 수 없다는 말인가?”

“대왕의 병은 마음의 병입니다.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분은 세상에 단 한 분밖에 안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지금 라자가하에 머물고 계십니다.”

“오, 그래? 그대조차 치료할 수 없는 내 병을 고칠 수 있는 자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 분은 바로 부처님이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의 마음에 박힌 독화살을 뽑아주시는 최고의 의사이십니다.” 

지바카의 말을 들은 아자타삿투왕은 고민했다. 부처님은 부왕이었던 빔비사라왕의 스승이었다.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그가 무슨 낯으로 부처님을 뵐 수 있단 말인가. 주저하는 아자타삿투왕의 마음을 눈치 챈 지바카가 말했다. 

“대왕이시여, 대왕께서 만약 부처님을 뵙고자 하신다면, 신이 자리를 마련하겠나이다.”

지바카의 말을 들은 아자타삿투왕은 오랜 침묵 끝에 무거운 목소리로 허락했다. 

“그리 하라.”

부처님께 인도하다

얼마 후 안거가 끝나자 지바카는 부처님과 스님들을 자신의 망고 정원으로 초대하였다. 지바카의 정원에 오신 부처님께서는 가부좌를 틀고 편안하게 앉으셨고 이어서 스님들도 조용히 앉아계셨다. 이윽고 날이 저물고 달이 떠올랐다. 밝은 달 아래 부처님과 스님들이 조용히 한 자리에 앉아계신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 같았다.

밤이 깊어졌을 때, 아자타삿투왕이 신하들을 데리고 지바카의 망고정원에 도착하였다. 양심의 가책 때문에 부처님을 뵙는 것이 껄끄러웠던 그는 코끼리 수레에서 내린 뒤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괜히 두리번거렸다. 그때 구름에 가려져 있던 둥근 달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정원에 앉아계신 부처님과 스님들을 환하게 비췄다. 고요하고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왕위에 오른 후 늘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괴로움에 시달렸던 아자타삿투왕은 부처님과 스님들이 가지런히 앉아계신 모습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탄식하듯 말했다.

“지금 부처님과 스님들이 고요히 계신 것처럼, 나의 아들 우다야밧따 왕자도 늘 편안하였으면 좋겠다.”

정원은 너무나 조용했기 때문에 아자타삿투왕의 한숨 섞인 탄식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부처님께서는 바로 지금을 그를 제도할 때임을 아셨다. 그리고 담담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대왕이시여, 사랑하는 아들 생각이 나셨습니까?”

만약 그때 부처님이 아자타삿투왕의 탄식을 받아주지 않았다면 그는 차마 부처님을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한 채 돌아갔을 지도 모른다. 이를 아신 부처님께서는 아자타삿투왕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주신 것이다. 자신을 나무라지도, 비난하지도, 외면하지 않는 부처님의 한 마디 덕분에 아자타삿투왕은 주저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는 처음 정원에 왔을 때보다 한결 밝아진 얼굴로 부처님께 천천히 예배를 올렸다. 그리고 부처님께 가르침을 청했다. 부처님께서는 아자타삿투왕의 질문에 하나하나 비유를 들어 상세하게 대답을 해주셨다. 법문을 듣는 동안 아자타삿투왕의 마음에서는 삼보에 대한 믿음이 절로 우러났다. 그는 부처님을 찬탄하며 삼보에 귀의한 뒤 그동안 억지로 짓눌러온 양심을 고백하였다.

“부처님이시여, 제자가 어리석어서, 무지해서, 지혜롭지 못해서 부처님과 교단을 보호하고, 법답게 나라를 다스리던 부왕을 죽게 하였습니다. 저의 허물을 용서해주십시오.”

이 한 마디를 꺼내놓기까지 아자타삿투왕은 실로 많은 고통에 시달렸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허물을 고백하자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부처님께서는 그의 진심어린 참회를 받아주시는 것이 아닌가. 아자타삿투왕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아자타삿투왕을 괴롭혀온 오랜 두통과 불면증이 마침내 사라졌다. 

아자타삿투왕은 빔비사라왕에 버금가는 군주가 되어 부처님과 교단을 보호하였고 마가다 왕국을 번영으로 이끌었다. 부처님과의 만남으로 아자타삿투왕의 두통은 완치되었고, 부처님과 교단은 왕실의 후원을 계속 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마가다 왕국은 안정을 찾았으니 이 또한 지바카의 공이라 할 수 있다. 

[불교신문3323호/2017년8월23일자] 
 

글 조민기  삽화 견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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