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동 기자 사찰숲길을 거닐다] <18> 직지사 직지숲길
[여태동 기자 사찰숲길을 거닐다] <18> 직지사 직지숲길
  • 김천=여태동 기자
  • 승인 2017.08.2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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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갈참나무야! 내 마음이 바로 보이니?”

 

매표소 옆 오솔길 천년 숲 이뤄

일주문서 대웅전 길도 ‘명품 길’

경내 곳곳의 물길 아름다움 더해 

황악산 암자 다녀오는 길도 일품 

일주문에서 대웅전으로 오르는 길. 노거수가 즐비한 이 길은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길이다.

한여름의 날씨라고 하기에도 너무 덥다. 혹서(酷暑)가 절정인 지난 4일 찾은 경북 김천 직지사. 일주문은 습기를 머금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포도로 유명한 이 지역의 농가에는 더위를 반기는 듯 주렁주렁 열린 거봉이 탐스럽게 익어 있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더위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도 포도는 익어가고 있구나.’ 사람이 더위로 인해 고통스러워 할 때 농작물은 오히려 그 더위를 자양분 삼아 마지막 결실을 맺고 있으니 사뭇 비교가 된다. 이래서 절대적인 그 무엇을 단정한다는 건 모순되는 일이 아니던가.

만세루에서 바라본 대웅전.

여름 휴가철이지만 황악산은 조용했다. 과거에는 산으로 계곡을 찾아 나섰던 피서객들이 황악산에 깃들 법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여름 템플스테이를 하는 동참자들이 경내에서 수행삼매 체험을 하는 인기척만 보일 뿐 도량은 한산했다. 계곡에 발을 담그던 예전 사하촌은 북적거렸지만 이제는 옛말이다. 

“휴가철이지만 사찰을 찾는 방문객은 눈에 띄게 줄었어요.” 종무실장의 근심 어린 말투가 현실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사찰을 찾는 방문객도 줄어드는 상황이다 보니 불교계의 대책도 다양하게 연구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적해진 천년고찰이지만 품고 있는 천년유산은 그대로다. 오히려 잘 정비되었고 보존을 위한 노력을 더 쏟은 듯 단정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느끼는 만큼 감동이 온다고 했던가. 오로지 방문객이 알려고 하고, 느끼려고 하는 의지에 따라 감응이 올 듯하다. 

자동차로 매표소와 일주문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해 사찰을 한번 스윽 훑어보면 큰 감동은 없다. 오로지 두 발로 품을 팔아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돌아봐야 천년고찰이 간직한 깊은 내면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숲길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직지사가 창건된 깊은 뜻이 있는 ‘마음을 바로 본다’는 의미를 넣어 ‘직지숲길’이라 이름을 붙여본다. 

만세루 앞에 나 있는 물길.

직지숲길의 시작은 매표소 앞 전각에서부터다. ‘해동제일가람황악산문(海東第一伽藍黃嶽山門)’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이 곳은 전체 가람배치구조상 일주문에 해당된다. 하지만 직지사 일주문은 따로 있다. 왜? 직지사는 과거의 가람구조를 살려놓은 상태에서 새롭게 현대식으로 가람불사를 한 사찰이기 때문이다. 직지사는 과거와 현대의 가람이 공존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옛 것을 잘 살려 놓고 현대에 맞는 실용적인 건물불사를 했다. 불사에 대한 세심함은 홍사성 시인의 ‘불사’라는 시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 

매표소 우측에 나 있는 오솔길.

김천 직지사는 중창불사를 하면서

부처님 법문 들을 때 올라가는 황학루를 

약간 비껴 지었다 합니다

하필이면 누각 지을 자리에

못생긴 개살구나무 한그루가 있었는데

그 나무 살리려고 그랬다 합니다

쓸모없다고 베어내자는 사람 여럿이었으나

주지스님이 고집을 부려 할 수 없이

비뚜름하게 지었다 합니다

김천 출신의 시인 문태준은 직지사 ‘불사’라는 시를 이같이 설명하고 있다.

“낡은 건물을 헐고, 고쳐서 다시 짓는 일이 잦습니다. 그러할 때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들은 터전을 잃기 쉽습니다. 가령 이 시에서의 ‘못생긴 개살구나무’도 중창불사를 할 때 베어지기가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지스님의 고집 덕에 미리 자리를 잡고 살았던 개살구나무는 살림의 근거지를 잃지 않았습니다. 누각을 짓되 오히려 개살구나무를 피해 조금 비뚤게 지었던 것입니다. 개살구나무의 쓰임새야 대단한 것이 없었을 테지만 그 가치를 쓰이는 바에 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 같이 잘 사는 도리를 찾았던 것입니다.”

비단 황학루를 비뚜룸하게 지은 것만 아니다. 일주문에서 대웅전에 이르는 전각은 천년고찰이 지어질 때의 모습을 최대한 복원하고 살리는 방향으로 지어졌다. 그 길에 서 있는 나무는 최대한 살려 놓았다. 건물은 낡아 허물어져 보수하고 복원된 흔적이 보인다. 그 사이에 서 있는 나무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아름드리 고목이 되어 천년고찰 천년숲길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런 풍광은 세월이 담보되지 않고는 연출될 수 없는 모습이다. 

금강문에서 바라본 대양문.

잘 가꾸어진 직지숲길의 남다른 특징은 물길이다. 숲길이 나 있는 사이사이에 물길이 나 있다. 계곡에서 물을 끌어들여 사찰 경내 곳곳으로 흐르게 했다. 특별한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평지에 세워진 사찰에 물길이 있으면 조경학적으로 멋이 있을 게 분명하다. 여기에 물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은 말하지 않아도 알 법하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경내의 물길은 요즘 같은 계절에도 더위를 식혀주는 역할도 톡톡히 한다. 

경내 곳곳에 서 있는 노거수도 주목할만하다. 매표소 입구에 나 있는 오솔길의 전나무와 소나무, 벚나무는 천년고찰의 면모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또 일주문을 지나 부도전 옆에 우뚝 서 있는 갈참나무의 수령은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몇백 년은 됨 직한 갈참나무는 성인이 안아도 몇아름은 된다. 그 나무에 은근히 기대어 속삭여 본다.

“아름드리 갈참나무야! 내 마음이 바로 보이니?” 

대웅전 옆 등나무 넝쿨도 치렁치렁 몸치장을 했다. 향적전과 관음전 앞의 단풍나무도 곧 다가올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맑은 바람 드는 집’ 청풍료(박물관) 뒤편에는 상사화가 꽃대를 쑤욱 올렸다. 여름이 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청풍료 뒤에 핀 상사화.

일주문을 지나 오르는 길에 사찰을 찾은 5명의 일가족을 만났다. 밀양에서 왔다고 했다. 모처럼 만나는 가족이라 사진을 찍고 초상권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얼굴 찍히는거요? 영광이죠 뭐.”

흔쾌히 답하는 아이 엄마의 맑은 목소리 사이로 황악산 산그늘이 내린다. 

[불교신문3323호/2017년8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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