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포 달인

                                                 김영삼

할머니가 바람 보러 간다

허름한 단층 슬래브 집 모퉁이

사십 년을 꼬박꼬박 오르내린 계단도 늙었다

백발 같은 국숫발이 빼곡히 널려 있는 옥상

난간에 서서 바람 깊숙이 손을 집어넣는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엄지와 검지로

바람 속살을 살살 비비며 만지작거린다

풍향에 따른 염도를 재는 것이다

밀가루 반죽하기 전에 반드시 치르는 의식인데

-오늘은 제일 좋은 북동풍이여, 소금은 두 종지면 돼야

-해풍에 말린 국수는 잘 불지도 않고, 삶으면 물도 맑아

생활의 달인이 손끝으로 귀신같이 국수 간을 맞춘다

구룡포에서 국숫집을 하는 할머니를 뵈었던 모양입니다. 할머니는 반죽을 하기 전에 바람 속에 손을 집어넣어 바람의 속살을 만져 염도를 잽니다. 바람의 염도를 재서 소금을 몇 종지 넣어야 국수의 간이 잘 맞을 지를 귀신같이 알아챕니다. 할머니가 국숫발을 뽑아 해풍에 말리며 손님을 맞은 지도 사십 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이처럼 삶의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말과 움직임은 어떤 것보다 구체적으로 실감이 있습니다. 한편, 김영삼 시인은 시 ‘물방울같이’에서 “그냥 물도 좋지만/ 물방울같이// 겉도 없고/ 속도 없고// 말랑한 몸이 투명한 말인/ 물방울같이”라고 써서 아름다운 서정을 표현했습니다.시인

[불교신문3322호/2017년8월19일자]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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