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의 시기에 

사회적 역할이 없는 종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본격적으로 탈근대의 길을 

모색해야 할 불교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2700년 전 붓다가 

세상을 물들였던 방식을 철저히 

탐구하는 것으로 출발해야 한다

거기에 분명히 불교도 살고 

세상도 사는 길이 있을 것이다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 붓다는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는 적이라 간주될 수 있는 상대와도 대화를 했지, 어떤 상대와도 다투는 법이 없었다. 자신을 암살하려 한 데바닷따와도 그랬고, 석가족을 멸족시키려는 아자타삿뚜 왕을 막아설 때도 그랬다. 대화로 설득하고, 안되면 미련 없이 포기했다. 이를 ‘자비무적(慈悲無敵)’이라 했다. 

한편으로 붓다는 혁명가였다. 붓다는 브라만과 아트만으로 대표되는 당대의 종교사상계를 매우 신랄하게 비판했고, 사회를 유지하던 카스트 제도나 여성차별도 아예 부정했다. 대신 차별 투성이인 세상과 다투지 않고, 자신의 공동체 안에서 신분차별, 남녀차별을 없애버리는 방식을 택했다. 인류가 근대 들어서야 신분·성차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2700년 전 붓다의 시도는 실로 놀랍고 담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붓다를 인류사에서 가장 위대한 혁명가라 부르기도 한다. 

생각할수록 이채롭다. ‘자비무적’과 ‘혁명’이라는 언뜻 대립되어 보이는 두 가치가 어떻게 한 인물 안에 공존할 수 있을까? 그 비밀은 붓다가 세상을 물들인 방식에 있었다. 붓다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 대신 세상을 움직이는 부당한 가치와 정신을 허물어뜨리는 방식을 택했다. 신분제를 유지하는 세력과 싸우는 대신 그것을 지탱하는 정신과 싸웠고, 여성차별주의자들과 다투는 대신 그 것을 지탱하는 가치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공동체 안에서 그 가치를 먼저 실천했다. 인류사에서는 근대들어 인도의 간디, 미국의 마틴 루터킹, 남아공의 만델라 등이 붓다와 유사한 방식을 이어 왔다. 

붓다가 오늘 우리 곁에 계신다면 역시 세상의 고통을 낳는 근본정신을 무너뜨리는데 온 정성을 다했을 것이다. 전쟁과 기아, 불평등과 차별 등 세상의 고통을 낳는 정신들, 예컨대 ‘물질적 성장이 발전이다’ ‘이기적 욕망의 추구가 성장의 동력이다’ ‘이기적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의 본성은 선과 악으로 나뉘어 불변한다’ ‘물리적 힘만이 나를 지킬 수 있다’와 같은 편견과 고정관념들이 그 대상이었을 것이다. 

2700년 전 붓다는 이러한 편견을 극복할 수 있는 모범답안을 이미 내놓았다. ‘평화와 행복이 진정한 발전이다’ ‘이타심에서 행복이 온다’ ‘인간의 본성은 이타적이고 타자와 어울려 살게 되어 있다’ ‘인간은 본래 붓다이므로 무궁무진한 변화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두려움과 무지에서 벗어나 행하는 지혜와 자비다.’ 붓다의 통찰, 붓다의 방식은 그때에도 옳았고, 지금도 역시 옳다. 아니 어쩌면 세상이 개방되고 하나로 연결된 지금이야말로 붓다의 실험을 제대로 입증할 좋은 기회인지 모른다. 

지금은 세상 전체가 요동치는 대전환의 시기다. 사회적 역할이 없는 종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하나, 현실세계에서 존재가치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불교 또한 예외일 수 없다. 본격적으로 탈근대의 길을 모색해야 할 불교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2700년 전 붓다가 세상을 물들였던 방식을 철저히 탐구하는 것으로 출발해야 한다. 거기에 분명히 불교도 살고 세상도 사는 길이 있을 것이다. 

※ 정웅기 논설위원은 동국대를 졸업한 뒤 불교신문 기자로 활약했다. 이후 불교사회활동가로 변신해 참여불교재가연대 사무총장과 불시넷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생명평화대학 운영위원장과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불교신문3322호/2017년8월19일자] 

정웅기 논설위원·생명평화대학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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