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맑은 마음으로 바른 이치 따르는 것

 

중생ㆍ부처ㆍ불법이니 하는 것도

모두 깨달음 위한 안내표시일 뿐

‘본마음’은 맑아 더럽혀지지 않아

그 때에 혜명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먼 훗날에 이 가르침을 듣고 믿음의 마음을 내는 약간의 중생이라도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그들은 중생이 아니며 중생 아닌 것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여, 중생 중생이라 하는 것은 여래가 중생 아닌 것을 설함이며, 그 표현이 중생이기 때문이니라.” 

제21분의 후반부 대화를 보면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에 대한 기록들을 생각나게 한다. 

경전에서는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이들이 곧바로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것은 경전에서 결과를 곧바로 보이기 위해 과정을 많이 생략한 것이다. 많은 경전에서 짧게 설명되는 여러 기록들을 퍼즐 맞추듯이 종합해 보면 부처님의 교화가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가장 교화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하셨던 최초 5비구만 하더라도 곧바로 깨달은 것이 아니었다. 부처님의 자상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중도(中道)의 이치를 깨닫는데 수개월이나 걸린 듯하다. 그들은 이미 네란자라강(尼連禪河) 유역에 있는 고행림(苦行林)에서 싯다르타와 6년을 함께 수행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고행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녹야원으로 떠나갔고, 다시 만난 부처님의 자상한 설명을 듣고도 중도(中道)를 깨닫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은 45년간의 교화 기간 중에 무시당한 일이 매우 많다. 어떤 이들은 깨달았다는 석존의 말씀을 듣고는 비웃으며 놀리기까지 하였다. 뿐만 아니라 부처님을 곁에서 모시던 제자 가운데는 바른 스승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떠나기도 했다. 데바닷타(Devadatta)는 사촌동생이며 제자였지만 교단을 차지하기 위해 부처님을 살해하려는 시도까지 했고, 결국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을 꾀어 새로 교단을 만들기까지 하였다.

“먼 훗날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마음을 내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요?” 하는 수보리존자의 질문에는 바로 그 교화의 어려움이 은연중에 보인다.

부처님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면 그 음성을 직접 들으면서도 믿지 않는 이들이 많은데, 과연 부처님의 모습을 볼 수 없고 부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멋 훗날에는 어떠할까? 과연 경전을 통해서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내는 중생이 있을까?

이에 대한 부처님의 답은 좀 뜻밖이다. “수보리여, 그들은 중생이 아니며 중생 아닌 것도 아니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여, 중생 중생이라 하는 것은 여래가 중생 아닌 것을 설함이며, 그 표현이 중생이기 때문이니라.” 우문현답(愚問賢答)이란 이런 것이다. 

중생이라는 말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이므로 어리석음만 극복하면 중생이 아니며, 어리석음 즉 번뇌에도 정해진 시기가 있는 것도 아니므로 언제든지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의 본마음은 맑고 깨끗하여 더럽혀지지 않는다. 마치 다이아몬드가 진흙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다이아몬드 그 자체가 더럽혀지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중생 속의 불성도 그와 같다. 이것을 알고 믿는 것이 신심(信心)이다. 

그렇다면 ‘중생 아닌 것이 아니다(非不衆生)’는 말은 무엇인가? 다이아몬드가 진흙 속에 있을 때는 본래의 깨끗한 모습이 진흙에 감춰져 있다. 이 경우 그 진흙덩어리 속에 다이아몬드가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의 눈에는 그저 진흙덩어리로만 보인다. 중생 속에 불성이 있음을 믿지 않는 사람의 눈에는 그저 중생의 모습만 보인다. 

믿음이란 부처님의 몸과 그 음성을 믿는 것이 아니라 맑은 마음으로 바른 이치를 따르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먼 훗날이라고 해도 마음이 맑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부처님을 믿고 그 가르침대로 수행하여 반드시 해탈한다. 

중생이니 부처니 불법(佛法)이니 하는 것도 모두가 깨달음을 위한 안내표시일 뿐이다.

[불교신문3322호/2017년8월19일자] 

송강스님 서울 개화사 주지 삽화 박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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