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과통과

범일스님 지음/ 불광출판사

양평 산기슭 서종사 머물며
소박하게 도량 가꾸는 스님
온라인 올린 글, 사진 모아
8년 만에 펴낸 신작 에세이
“길 나쁘면 옆으로 길을 내고
그 길도 나쁘면 다른 길 내라“

지난 2001년부터 양평 화야산 기슭 서종사에 머물며 온라인 도량 ‘조아질라고(www.joajilrago.org)’를 가꾸고 있는 범일스님이 8년 만에 신작 에세이 <통과통과>로 현대인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한다.

2009년 펴낸 전작 <조아질라고> 이후 틈틈이 써온 글 1500여 편의 중에서 엄선한 글 105편과 계절을 담은 사진 46컷이 정갈하게 담겨 있다. 웬만큼 힘든 일도 다 ‘조아질라고’ 일어난 것이니 맘에 두지 않고 ‘통과’시켜버리는 스님의 여유가 한여름 계곡물에 발을 담근 듯 시원함을 준다.

양평 서종사에 머물며 온라인 도량 ‘조아질라고’를 가꾸고 있는 범일스님이 산사의 소박한 일상을 담은 신작 에세이 <통과통과>를 최근 펴냈다.

범일스님은 올해로 17년째 서종사에서 밥 짓고, 풀 뽑고, 길 고치고, 방 훔치는 담소(淡素)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또한 오래전부터 홈페이지 ‘조아질라고’에 글과 사진을 올려왔다. 함께 일하고 공부하며 살아가는 벗들과의 정다운 교류, 개와 고양이, 꽃과 나무를 기르는 가지런한 마음, 몸을 움직여 절을 가꾸는 삶이 주는 만족감 등이 소박하게 표현된 스님의 글은 불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편안하고 친근한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먼저 TV 광고문구와 경전을 인용해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스님의 책 서문이 눈길을 끈다. “생각대로 T~, 통신사의 그 광고는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어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생각대로’는 <화엄경>의 핵심법문입니다. 이 가운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요즘 말로 하면 ’생각대로‘입니다. 생각의 표현은 말이고 말은 우리네 삶을 만들어갑니다. <천수경>의 첫 구절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은 말이란 생각의 결과이고, 그 말이 본인의 삶과 다른 이의 삶에 영향을 주니 말을 정교하게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이와 더불어 식물과의 대화 속에서 얻는 깨우침도 인상적이다. “공작선인장 꽃이 피었습니다. 선인장 몸집이 너무 커서 방에 두기 부담스러워하던 차였습니다. 그런 제 의중을 눈치 챘는지 꽃이 말하길, ‘저 이렇게 예쁘거든요. 몸뚱이 조금 큰 거 가지고 뭐라 하지 마세요!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이처럼 범일스님은 일상의 작은 일 하나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비오는 날 풀을 뽑다가 가뭄 끝에 숨 좀 돌리나 싶은 생각을 하다가도 어느덧 사정없이 뽑히는 풀의 신세를 떠올린다. 또 코스모스 지는 꽃잎이 바람이 이끄는 대로 떨어지는 모습에서 인연 따라 순하게 흘러가는 자세를 숙고하고, 가만히 있는 거미를 보고 고요히 지내는 삶의 이로움을 깨우치는 식이다. 그러면서 “살아가면서 점점 지혜로워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 둘은 어쩌면 일상을 살피는 관심의 폭과 깊이의 작은 간격 때문에 그렇게 갈라진 건 아닐까”라며 살뜰한 일상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스님에 대한 통념을 깨는 유쾌함 속에 담긴 따뜻한 교훈도 눈여겨 볼만하다. “새로 출가한 행자님과 밤 8시부터 두 시간쯤 매일 절을 하는데 행자님도 뽕! 푹~ 하는 것입니다. 으~ 독한 거. 추운 겨울이라 법당 문을 안팎으로 비닐과 뽁뽁이로 빈틈없이 막았는데….” “행자님 나가서 배출하시오!” “아직 남은 속세의 독이 빠지느라 더 독한가 봅니다.” 이 장면 앞에는 범일스님이 방귀를 뀌는 장면이 나온다. 겨울에 법당 문을 닫고 절 수행을 하다가 스님이 방귀를 뀌니 함께 있던 사람들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스님을 보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자연스레 나오는 것을 어쩌란 말입니까?”라고 응수한다. 그런데 자신이 남의 방귀냄새를 맡는 입장이 되고 보니 반성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스님의 수행과 포교에는 거창한 격식보다 친근하고 자연스러움이 우선이다. 입을 벌리고 자는 습관을 고치려고 입술에 종이테이프를 붙이고 자거나, 다이어트를 하다 힘들어 포기하고 떡과 과자를 실컷 먹는다든지 하는 아이같은 익살스러운 내용도 글로 써서 홈페이지에 올린다. 스님의 이런 솔직함은 친한 이웃 같은 편안함을 준다. 이런 가르침이 거부감 없이 가슴을 파고들어 내 삶 속에서 깨우침의 순간들을 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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