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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스님의 부처님 교화공원 이야기] ⑫기원정사와 수닷타 장자 中수닷타 장자의 망나니 아들 깔라의 교화
  • 성일스님 화성 신흥사 주지
  • 승인 2017.08.0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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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짧은 게송 한편을 가르쳐 주셨다. 

깔라는 아무리 애를 써도 외우지 못하고, 

외우려고 애쓰는 사이에 게송의 의미를 

저절로 깨우치게 되었다.  

의미를 터득하면서 깨달음을 이루게 되었다. 

기원정사.

 녹자모 강당(동원정사)을 시주한 미가라 장자의 며느리

수닷타 장자에게 딸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수마제였는데 매우 아름답고 품행이 반듯하여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였다. 어느 날 수닷타 장자에게 친구인 만재 장자가 찾아왔다. 수마제가 나와서 인사를 드리자 며느리 감을 찾고 있던 만재 장자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보게, 자네 딸을 내 며느리로 주게나.”

하지만 수닷타는 승낙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기는 독실한 불자집안인데, 친구의 집안은 자이나교의 나형외도(나체행자)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승낙을 미루던 수닷타는 친구가 하도 조르는 바람에 부처님께 의논을 하였다. 그런데 의외로 부처님께서 아주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부처님의 흔쾌한 허락으로 수닷타는 용기를 내어 딸을 시집보냈다.

그런데 만재 장자의 고향인 만부성에서는 성 밖의 사람들과 혼인 맺으려면 자기들이 믿는 나형외도 6천 명을 초대하여 정성껏 음식을 공양 올리면서 허락을 얻어야 했다. 만재 장자도 6천 명이나 되는 나형외도들을 집으로 초대하였다. 그리고 귀한 음식을 대접한 뒤에 며느리를 불러내었다.

수마제는 시아버지의 명을 받고 단정하게 치장하고 방에서 나왔다. 하지만 나형외도들을 보는 순간 기겁을 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저는 벌거벗은 사람들에게 절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믿고 있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은 모두가 법다운 모습으로 공양을 받는데 저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가 봅니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시아버지가 아무리 타이르고 권해도 수마제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처님 이야기만 하는 것이었다. 결국 나형외도들은 크게 화를 내고 돌아갔다. 갓 시집온 며느리의 행실치곤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무례였다. 시아버지는 그날 이후 한숨 속에서 나날을 보내었다. 애초에 예견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며느리가 너무나 완강하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잠시 제 정신을 잃었던 게야. 며느리를 잘못 들여 집안이 망하게 생겼구나.’

그런데 마침 이때 장자의 오랜 친구가 찾아와 그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오히려 잘 되었네. 어서 부처님을 집으로 모시고 법을 들어보게나.”

친구의 권유로 결국 만재 장자는 며느리에게 말하였다.

“아가, 네가 믿는다는 그 부처님을 나도 한번 뵙자꾸나. 그분과 제자들을 집으로 초대하렴.”

자기 때문에 시댁에 그림자가 드리운 것이 가슴 아팠지만 옳은 신앙만큼은 양보할 수 없어 속앓이를 하던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제안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서둘러 부처님과 스님들을 시댁으로 초청하였다.

부처님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만부성으로 들어오시던날, 한 번도 부처님을 뵌 적이 없는 만부성의 사람들은 모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만재 장자의 집안에 평지풍파를 불러일으킨 며느리의 ‘그 스승’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장자의 여법한 공양을 받고 난 부처님은 만재 장자에게 오계를 지킬 것과 보시할 것, 그리고 선업을 닦아서 천상에 태어날 것을 당부하셨다. 나아가 탐욕과 번뇌는 더러운 것이니 속히 벗어나라고 이르셨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장자의 생각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법을 받아들일 마음가짐이 갖추어졌음을 보시고 부처님은 이어서 사성제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셨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진리를 보는 깨끗한 눈을 얻게 된 만재 장자는 동쪽 동산에 절을 지어 승단에 바쳤다. 이 일로 인해 그 성의 사람들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자기의 뜻을 거역한 며느리를 타박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먼저 연 시아버지 만재 장자. 그는 며느리로 인하여 진리의 세계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어떤 칭찬의 말을 하였을지 궁금해진다.

그가 며느리 수마제에게 말하였다. “아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였구나. 너는 내 정신을 다시 태어나게 한 어머니이다.”

훗날 사람들은 그 절을 ‘만재 장자 어머니의 강당(녹자모강당)’이라 불렀다.

“정사를 세운 그대들의 마음의 공양, 그 공덕은 참으로 클 것이오. 동원정사는 기원정사와 나란히 사밧티에 있어 불법 유포의 커다란 거점이 되어 번민에 휩싸인 수많은 사람들의 의지처가 될 것이오. 장자(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정법을 만나 깨우치게 해 주었다고 녹자모라 부르니 정사 이름은 ‘녹자모 강당’이라고 할 것이며, 기원정사의 동쪽에 위치하였으니 ‘동원정사’라고 부르라.”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녹자모 강당은 기원정사·죽림정사와 더불어 부처님이 머물며 법을 설하셨던 대표적인 곳이다.

 망나니 아들 깔라의 교화

수닷타 장자에게는 망나니 아들 깔라가 있었다. 이 아들의 나쁜 습관을 고칠 방법을 궁리하다 결국 돈으로 아들의 마음을 움직여 보기로 하였다. 장자는 아들에게 만약 네가 초하루나 보름날 저녁에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곳에 가서 하룻밤을 새고 오면 돈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그런데 아들은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는 곳에 가기는 하였으나 그저 시간만 보내다 아침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반가운 나머지 아들에게 아침으로 죽부터 먹이려고 하자 아들은 먼저 돈이나 달라고 하였다.

다음날 장자는 아들에게 말했다.

“이제 부처님에게 게송 한 구절을 배워서 외우면 그 보상으로 일천 냥을 주겠다.”

그래서 아들이 정사에 가서 부처님께 뭔가를 배우고 싶다고 청하자, 아들을 보낸 부모의 마음을 꿰뚫어 아신 부처님께서는 짧은 게송을 한 편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는 “이것을 외우면 아주 좋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깔라에게 그 게송을 욀 수 없도록 만들었다. 깔라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그 게송을 외지 못하였다. 그런데 외우려고 애쓰는 사이에 게송의 의미를 저절로 깨우치게 되었다. 깔라는 게송의 의미를 터득하면서 깨달음을 이루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깔라가 부처님과 스님들을 따라 자기 집에 도착하자, 장자는 아들에게 일천 냥을 상금으로 내놓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아들은 그 상금을 부끄러워하며 받으려 하지 않았다. 장자는 아들에게 거듭 권하였지만 깔라는 아주 겸손한 태도로 돈 받기를 거절하였다. 그러자 장자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 제 아들이 사람이 아주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제 아들이 하는 짓이 마음에 들기 시작합니다. 이제 아들을 신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수닷타 장자 부인의 지극한 공양

수닷타 장자는 부처님께 기원정사를 지어 공양할 만큼 부자였으나 며칠 동안 끼니를 구하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가난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쓰레기를 뒤지다가 나무로 만든 되 하나를 얻었다. 전단향 나무로 깎아 만든 것이었다.

“꽤 값이 나가겠군.”

수닷타는 매우 기뻐하며 그 되를 팔아서 쌀 넉 되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 여기 쌀이 있으니 빨리 밥을 짓도록 하세요. 나는 나무를 해 오리다.”

수닷타 장자는 쌀을 아내에게 주고 나무를 하러 갔다. 밥이 다 되었을 즈음이었다. 사리불 존자가 장자의 집으로 찾아왔다.

“존자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부인은 기쁜 마음으로 사리불 존자의 발우에 밥을 담아 드렸다. 사리불이 돌아간 뒤, 부인은 다시 한 되의 쌀로 밥을 지었다. 그런데 밥이 다 되었을 때였다. 이번에는 목건련 존자가 찾아왔다.

“존자님, 잘 오셨습니다. 마침 밥을 지었답니다.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장자의 부인은 기뻐하며 밥을 모두 목건련의 발우에 부었다. 목건련이 돌아간 뒤, 부인은 다시 한 되의 쌀로 밥을 짓기 시작하였다. 밥이 다 되었을 때 이번에는 가섭 존자가 집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존자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장자의 부인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기뻐하며 밥을 모두 가섭의 발우에 담아 주었다. 가섭이 돌아간 뒤 부인은 마지막 남은 한 되의 쌀로 밥을 지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처님이 오셨다.

부인은 쫓아가서 부처님께 예배를 올렸다.

“부처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부인은 마지막 쌀로 지은 밥을 모두 부처님의 발우에 담아 드렸다.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수닷타 장자가 나무를 해 가지고 돌아왔다.

부인은 잠시 망설였다.

‘넉 되의 밥을 모두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께 다 공양을 올렸는데 남편이 야단을 치면 어쩌지?’

부인은 이런 생각을 하며 먼저 남편의 마음을 떠보기로 하였다.

“여보, 가령 넉 되의 쌀을 나누어서 한 되로 밥을 지었는데 사리불 존자가 오신다면 어쩌지요?”

“그야 말할 것 있소? 공양을 올려야지.”

부인은 다시 물었다.

“나머지 쌀에서 다시 한 되를 나누어 밥을 지었을 때 목건련 존자가 오시면 어쩌지요?”

“그야 한 되 밥을 다 공양 올려야지. 우리야 남은 쌀로 밥을 지어 먹으면 되지 않소?”

부인은 망설이며 또 물었다.

“여보, 그 나머지 한 되 쌀을 나누어서 또 밥을 지었을때 가섭 존자가 오시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야 말할 것 있나요. 복밭을 왜 놓쳐요. 한 되 밥을 다 공양 올려야지. 우리야 남은 쌀로 밥을 지어 먹으면 되지 않소?”

“여보, 그런데 마지막 쌀로 밥을 다시 지었을 때 부처님이 오신다면 어쩌지요?”

장자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왜 묻는 거요? 당연히 공양을 올려야지. 복밭을 왜 놓친단 말이오?”

부인은 장자의 대답을 다 들은 후 기쁜 마음으로 오늘 있었던 일을 말했다.

“그래? 그거 참 잘 했군. 잘 했어요. 잘 했고말고.”

수닷타 장자는 손뼉이라도 칠 듯이 기뻐했다. 수닷타장자는 비어 있는 곡식 창고를 열었다.

“아니?”

비어 있던 곡식 창고에 쌀이 가득했다.

“복이 왔군. 복이 왔어!”

다른 창고에는 금은이 가득했다.

“복이 왔어. 복이 왔다구.”

장자와 부인은 손을 잡고 기쁨의 춤을 추었다.

그리고 또 얼마 있으니까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곡식과 여러 물건들을 가득 실은 수레가 여러 대 도착하였다.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수닷타 장자는 그 수레를 몰고 온 사람들을 살펴보니 자기한테 돈을 빌려간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이 말하기를, “지난 밤 잠을 자는데 꿈에 창칼을 든 장군(신중님)들이 나타나 수닷타 장자에게 빌린 돈을 당장 갚지 않으면 사람도 재산도 모두 다 없어질 것이라고 하여서 두려운 마음에 가지고 왔다.”고 하였다.

수닷타 장자는 다시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면서 열심히 사업하여 전날의 부자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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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3314호/2017년7월15일자] 

성일스님 화성 신흥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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