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담/'적폐! 누가 무엇이 공동체의 진정한 문제인가

"모든 결과 우리 모두 함께 만든 공업"

"화쟁은 같이 살자는 것이지 이겨먹자는 게 아니다"

 

'누가 무엇이 적폐인가'를 주제로 종단 안팎에서 활동해온 스님과 불교활동가들 방담을 나누고 있다.

이향민: 적자생존과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라는 패러다임에 우리는 아직도 갇혀 있다. 그래서 이토록 괴롭다. 누군가가 나에게 ‘적폐 대상’이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 기분이 나빠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참회는커녕 도리어 증오심과 적개심만 일어난다. 낱말마다 고유한 에너지가 있다. ‘적폐’라는 단어는 일말의 감동도 주지 못하며 저항적이고 협박적이며 분리와 배제의 언어다. 불교의 연기적 세계관에 따르면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모든 결과는 누구 하나의 과오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든 공업(共業)이다.

가섭스님: 어느 조직에나 적폐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한 집단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함께하다 보면 미처 해소하지 못한 허물이 필연적으로 생기고 쌓인다. 다만 적폐를 만든 장본인도 구성원이지만 적폐를 없애는 주역도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집행부만을 표적으로 삼아 적폐라고 낙인을 찍는 것은 논리비약이다. 모든 적폐는 종도들 공동의 책임 아닌가? 1994년 종단개혁이 어느덧 23년 전이다. 무엇보다 20년 이상 우리 종단과 함께 한 선배와 도반들이 종단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깔보는 모습이 안타깝다. 지난해 겨울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 자주 나갔다. 집회가 끝나고 나면 군소 모임들끼리 모여 회의를 열더라. 다들 ‘현재 대한민국의 잘못은 모두 나에게 있다’고 참회하는 장면이 시큰했다. 아울러 이러한 책임의식과 연대의식이 조직의 역동성과 건강성을 증진한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애정을 갖고 있는가?

'마녀사냥' '내로남불' 아닌가

조계사 부주지 원명스님

정웅기: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이 조계사 앞에서 매일같이 열리는 시위를 목격한다면, ‘조계종이 이토록 부패하고 무능한 집단인가’ 혀를 찰 것이다. 한 사람의 불교시민운동가로서 듣기가 불편하다. 물론 종단도 비판받을 점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100% 악한 존재가 어디 있는가? 상대방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정하고 능멸한다면 뉘우칠 마음이 생겼다가도 사라지는 법이다. ‘왕따’를 자행하는 학생과 무엇이 다른가? 한때 종단 제도권에서 일하다가 지금은 뛰쳐나와 거리에서 적폐를 주장하는 스님들에게도 공이 있고 과도 있다. 만약 과만을 보고 과만을 물고 늘어진다면 이분들도 적폐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원명스님: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조계사 앞에서 종단을 저주하고 있다. 적폐의 ‘적’은 본래 ‘積(쌓일 적)’이지만 '적(敵, enemy)‘이라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긴다. 단어 자체가 분열과 혼란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정연만: 불교 신도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탈종교화 현상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총무원장 스님 혼자만의 잘못이라고 재단할 수 있나? 불교의 기본정신은 화쟁(和諍)이고 원융화합이다. 종교개혁은 반드시 내부로부터의 개혁이어야 한다. 외부의 힘을 빌린 종교개혁은 기어이 종교탄압과 말살로 마무리될 뿐이다.

조계종 포교원 포교부장 가섭스님

가섭스님: 그들이 강변하는 적폐청산은 마치 ‘종북몰이’와 비슷하다. 분단의 현실에서 상대방을 무작정 깎아내리고 깔아뭉개기 위한 폭력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듯하다. ‘너는 나의 원수야. 그래서 너는 죽어도 싸’라는 논리 앞에서 무슨 소통이 있고 무슨 희망이 있겠나?

원명스님: 종단을 헐뜯는 인사들 중에는 과거 스님이었다가 결혼한 전력이 들통 나서 직권제적을 당한 이도 있다. 한때 출가수행자였다는 사람이 스스로는 조금도 성찰하지 않고 타인을 비방하는 행위 자체가 낯부끄럽다. 합법적인 징계절차에 따른 등원 요구를 번번이 무시하다가 막상 제적이 되고나니 불교 바깥의 인사들에게 자신을 도와달라 손을 벌리는 분도 있다. 자기반성에는 왜 이리 인색한가? 총무원장 스님만 물러나면 불교신도가 500만쯤 늘어날까?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언동 때문에 그들의 주장에 실린 타당성마저 희석되는 형편이다.

'너는 죽어도 돼'라는 저주가 불교를 살린다고? 

정연만 전 환경부차관(중앙신도회 부회장)

정연만: 종단의 어른 스님들이 모여서 조속히 해결책을 마련해주셨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불자로서 너무 황망하고 민망하다. 시민들 앞에서는 창피하다.

가섭스님: 불자 300만 명 감소의 원인을 33․34대 집행부만의 탓으로 몰아가고 있다. 포교원에서 소임을 살면서 살펴봤더니 신도들에게 정확한 역할과 지위를 주지 않은 것도 또 하나의 원인이더라. 종단 지도층이 썩어서가 아니라 사부대중공동체라는 이념이 체계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문제다. 그러므로 사부대중 전체가 함께 풀어야만 풀릴 매듭이다.

이향민: 수도꼭지가 고장 나서 물이 샌다면 수도꼭지를 갈아야 한다. 완전히 고쳐지지는 않았지만 현재 총무원장 스님도 많이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불교적 관점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화’ ‘힘의 논리’ ‘근거가 빈약하거나 옹색한 비난’ ‘외부세력 동원’, ‘선정적인 폭로전’ 내가 배운 불교는 절대 이런 것이 아니다. 종교가 세속을 이끌기는커녕 세속에서도 부적절하다고 평가할 방법들이 총망라되고 있다. 세속의 관행만 따라가지 말고 불교가 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제시해야 한다.

가섭스님: 며칠 전 종각에서 열린 첫 번째 적폐청산 촛불집회에서 ‘총무원장 스님을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쳤다고 한다.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었다. 이것은 끝까지 싸우자는 것이고 영원히 원수로 지내자는 말이다. 물론 종단도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 마곡사 용주사 문제가 그들에게 빌미를 제공했다. 비판 받을 여지는 있겠으나 이게 범법행위인가? 종단 집행부가 국정농단 세력인가? 총무원장 스님에 구악(舊惡)의 대명사로 지목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입시켜 조리돌림을 하는 모양새다. 부디 금도(襟度)를 벗어나지 말자.

원명스님: 아무리 막돼먹은 자식이라도 가족의 허물을 남들 앞에 드러내는 일은 꺼리는 법이다. 자기들은 즐길 것 다 즐기면서 스님들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오직 숨만 쉬고 살라는 식이다. 

정웅기 생명평화대학 운영위원장

정웅기: 명동성당 앞에서 가톨릭 신도가 교구장의 비리의혹을 규명하라며 시위를 한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자기 편이라고 무턱대고 비호하거나 남의 편이라고 앞뒤 잴 것 없이 저주하는 교계의 정서가 서글프다. 제도권도 재야도 회광반조해야 한다.

정연만: 종단 내부에서의 공론화가 사태를 일단락시키는 해법이라고 본다. 다만 막연하게 ‘강자가 약자를 품어줘야 한다’는 식으로의 순진한 접근은 낭패를 맞을 수 있다. 품어 안아 주더라도 어떻게 품어줄 것인지, 누구를 품어줄 것인지, 품기 위해서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에 대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향민: 화쟁위원회나 사부대중공사가 그래도 대안이 될 것이다. 밖에서만 불만을 쏟아내지 말고 제발 안에서 치열하게 싸웠으면 한다. 성스러워야 할 종교가 어느 집단보다 통속적인 집단으로 비춰지는 현실이다. 우리가 불교를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도 불교를 사랑해주지 않는다. 불교를 더 사랑하는 이가 결국은 포용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이고 싶다.

원명스님: 불교 자주화의 의미는 우리 스스로 갈등을 봉합하고 적폐를 청산하자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자는 내용이다. 우리 안에 종헌종법 질서가 엄존하는데 단지 내가 손해를 봤다거나 집행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종헌종법을 거부하는 것은 어린아이 떼쓰는 것에 불과하다. 일례로 종단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81%가 동의했다고 당장에 직선제를 시행하라는 요구가 그렇다. 설문조사의 정당성과 합리성 논란에는 눈을 가린 채 표면적인 숫자에만 집착한다. 어른 스님들을 단순히 표를 구걸하는 속물로 보이게 하고 전체 종도를 정치승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는 귀를 닫는다. 선거와 관련한 법과 제도의 보완, 종도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져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쪽수로 밀어붙이며 본인들의 주장을 관철시키지 않는다고 종단을 썩었다고 손가락질하는 행태는 볼썽사납다.

이향민 인드라망연구소장 

적폐 아닌 공업...조금만 정직해지자

가섭스님: 불교 전체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자들이 어떻게 신도 감소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1962년 통합종단 출범 이후 1994년 종단개혁 이후 우리는 조금씩 더디지만 끈질기게 성장하고 자정해 왔다. 내막을 모르고 내막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자기만의 독선과 아상에 사로잡혀 불교를 망치는 지도 스스로 모르면서 불자라고 자임할 수 있나?

정웅기: 어서 상식을 되찾기만을 바라는 마음이다. 세상에 어느 공동체에서 모든 폐단을 수장의 책임으로 몰던가? 그리고 이러한 논리에 수긍할 불자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용주사 마곡사 문제는 분명히 종단의 잘못이다. 서로가 한발씩 물러나는 것이 어렵지만 확실한 해법이겠다.  약육강식의 정글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상대를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 사회다.

이향민: 주최 측은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인원이 수백 명이라고 주장하지만 도저히 화해하지 못할 극렬한 반대론자는 20명 남짓이라고 생각한다. 나머지 480명을 설득하는 일을 지금 종단이 해야 한다.

정웅기: 건강한 상식의 흐름이 다수가 되도록 하는 것. 이것이 해답이고 우리의 의무다. 화쟁의 궁극적 지향은 함께 살자는 것이지 이겨먹자는 게 아니다.

사회 정리=장영섭 기자 사진 신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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