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에는 누구라도 깊어지게 하는 힘이 있다

4·16순례에는 정규학교가 아닌 대안학교 학생들만 참가했다. 자신이 여행할 곳을 스스로 고르고 기획하는 청소년들을 보며 전인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사진제공=이승호 작가

 

대안학교 학생들 순례길 동참 
우리 사회 주인 되기 위한 ‘몸짓’

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었다는 것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참사가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우리가 값진 일을 하고 있다는 것 
                       …

“뒤에서 자꾸 내 발을 밟는다 
그래서 짜증을 내려고 했는데 못 낸다 
왜냐하면 나도 앞사람을 밟기 때문이다”
-참가자 강다은 양의 시 ‘뒷사람’

세월호 영령들이 우리를 지켜보며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제발 이런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반드시 희생이 헛되지 않고 값지게 되기를, 그리하여 아이들에게 희망의 등불 환하게 밝혀주기를.

나해철 시인은 말했다. “17세 소년 소녀 250명이 포함된 304명을 전쟁 시기도 아닌데, 한 날 한 시에 죽게 한 일은 인류역사에 없었다… 현대화된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250명의 17세 아이들의 목숨까지… 참혹하게 희생시키고 아무렇지도 않은 말하고 행동하는….”

도저히 있을 수 없음에도 일어난 참사였기에 세월호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너무나 인간적인 화두다. 그 화두의 의미를 압축하면 ‘아이들에게 희망을’이라는 한 마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세월호의 뱃길을 따라 인천에서 팽목항까지 바닷가 마을과 마을을 잇는 4·16순례길은 우리가 눈물을 흘리고 가슴을 치며 다짐한 첫 마음에 따라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는 어른으로, 새싹들에게 희망이 되는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지극한 몸짓이다. 우리는 두 차례 순례를 하면서 우리 스스로 희망을 만들기도 하고 희망의 길을 보기도 했다. 그 길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아이들’ 안에 있었다. 

세월호 순례의 기본은 침묵의 걸음이다. 침묵의 순례는 온 국민이 함께 성찰과 각성과 전환을 다짐했던 세월호 기적의 첫 마음을 생활화하고 사회화하는 과정이다. 실제로 이 순례는 사람들을, 특히 학생들을 매료시켰다. 

변산공동체학교, 실상사 작은학교, 광주청소년공동체 ‘날다’, 느티울행복학교 등 대안학교 학생들이 세월호 순례길에 동참하여 침묵으로 걸으면서 자기 내면으로 빠져 들어갔다. 작은학교 양준서 군(고1)은 “친구들과 함께 다른 길을 걸을 때는 외부에 시선을 뺏겨 자기에게 집중할 수 없었는데, 세월호 순례길은 성찰을 위한 최고의 조건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한결 양(고2)은 “나는 학생회나 동아리에 적극적인데, 소극적인 아이들과도 함께 일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들을 나의 기준에 맞추려 하지 말고, 이해하려 들지도 말고, 다만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라며 “그럴 때 유연성과 순발력이 생긴다”라고 했다. 이 양은 “이런 마음공부에는 순례가 최고”라고 덧붙이며 활짝 웃었다.

지난해 가을, 45일 동안 ‘첫걸음순례’를 한 순천 사랑어린배움터 중학생 9명은 순례의 교육적 가치와 효과를 몸으로 보여줬다. 순례 떠나기 일주일 전, 하승희 양은 이렇게 썼다. “나는 순례 가기 전 마음가짐을 잘 결정하지 못했다. 근데 우리가 다 같이 모여 이야기하고, 생각하고, 마음 모으는 사랑어린 몸짓을 하다 보니 순례 갈 때 가지고 갈 마음가짐이 점점 떠올랐다.(중략) 그 마음가짐은 바로 ‘내가 걷는 이 순례에 오롯이 집중하기’이다. 저번에 관옥 할아버지한테 들었는데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그건 산 게 아니라 죽은 것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다른 여행길에서 내가 한 행동이 생각났다. 이번 나의 마음가짐이 약간은 떨리지만 기대가 된다.” 정목영 군은 “나는 순례를 가서 기필코 스스로 하는 힘을 길러 보아야겠다는 목표가 있다. 어차피 이 목표는 순례 가면 누가 도와주지 않으니 확실히 이룰 수 있겠다”라고 썼다. 

순례자들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잘 관찰하고 다듬어 조화롭게 하는 연마도 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들이 매일 외운 시 ‘여인숙’이 큰 역할을 했다. 
 

여인숙

인생은 여인숙, 날마다 새 손님을 맞는다. // 기쁨, 낙심, 무료함, / 찰나에 있다가 사라지는 깨달음들이 예약도 없이 찾아온다. // 그들 모두를 환영하고 잘 대접하여라. /비록 네 집을 거칠게 휩쓸어/방안에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는 /슬픔의 무리라 해도, 조용히/정중하게, 그들 각자를 손님으로 모셔라./그가 너를 말끔히 닦아서/새 빛을 받아들이게 해줄 것이다. // 어두운 생각, 수치와 악의가 찾아오거든/문간에서 웃으며 맞아들여라. // 누가 오든지 고마워하여라./모두가 저 너머에서 파견된 안내원들이니 // 잘랄루단 루미

순례 중이던 어느 날 한 순례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상해 시 ‘여인숙’을 외웠더니 짜증이 안 나. 시에서 나오는 ‘손님’이 지금은 짜증인 것 같았거든. 그래서 시를 외면서 짜증을 정말 손님처럼 대하니까 어느 새 손님이 가 버렸어.” 이렇게 시를 외우고 음미하던 순례자들은 자신의 현재 삶을 시로 읊었다.

뒤에서 자꾸 내 발을 밟는다. / 그래서 짜증을 내려고 했는데 못 낸다. / 왜냐하면 나도 앞 사람을 밟기 때문이다. // (강다은, ‘뒷사람’)

양말은 조금만 관리를 하지 않으면 / 정말 상상치도 못할 냄새가 난다. // (김시현, ‘양말’)

두려웠나요? 아팠나요? 그리웠나요? // 저희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 ‘세월호’라는 이름만 들으면 // (김민정, ‘세월호’)

어린 순례자들은 깊이 성찰했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정서적 경험을 했다. 정임한결은 순례 마무리 글에서 이렇게 썼다. “세월호에 관한 생각을 하다 보면 연관되는 생각들이 한없이 어두워지고 침울해지니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우리 순례의 베이스, 기본 바탕이었는데도. 팽목항에 도착해선, 그냥 마음속에 쌓여 있던 게 탁- 하고 한 순간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여 눈물이 마구 났고,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냥 뭔가 설렜다.”

학생들을 인솔한 교사도 순례의 기쁨을 맛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보리밥 선생님은 순례를 회고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세 이레 때까지 내가 ‘아, 이건 새로운 나의 모습이야’하는 느낌이 없었다.(중략) 다행히도 순례를 마무리할 즈음에 새로운 나를 찾았다.” 그는 “걷는다는 것은 누구라도 깊어지게 하는 힘이 있다”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제 길은 열렸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질문을 가지고 걸을 것이다. 진심으로 마을과 마을을 이어가는 서해안 세월호 순례길에서 우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누구라도 오롯하게 자신의 참모습을 만나는 선물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 

세월호의 주인은 누구일까? 유가족일까? 순천 사랑어린학교 학생들은 지난 7월6일의 회향식에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세월호 유족도 아닌데 뭐가 감사한가?”라는 질문에 학생들은 말했다. “작년에 우리가 세월호 길을 처음으로 걸었어요. 세월호의 의미를 되새기며 걸은 거죠. 그런데 ‘우리가 처음 걸은 이 길을 다른 사람들이 걸을까?’라는 의구심이 생겼어요. 만약 뒤따라 걷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들이 걸은 그 걸음이 무의미해져 버리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 뒤를 따라 걷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하고, ‘우리가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는 일을 했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됐어요. 그러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죠.” 세월호 순례길에 오르는 것은 우리 사회의 주인이 되는 의식을 치르는 것과도 같다.

세월호 순례길에 들어서면 세월호의 화두를 저절로 들게 된다. 죽음이 항상 삶의 바로 곁에 있다는 것도 세월호를 통해서 암묵적으로 배운다. 그런 상황에서 분위기를 어둡게 가져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연스럽게 “이런 참사가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사회적 각성’의 내면화이다. 적절한 성인식이 없는 대한민국에서 세월호 순례길이 그 의식을 대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순례길에 정규학교 학생은 참여하지 않았다. 자신이 여행할 곳을 스스로 고르고 기획하는 과정이 있는 대안학교 학생들만 참가했다. 순례하는 동안 학생들이 전인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하는 이 일, 아이들이 스스로 희망이 되는 이 일에 엄마 아빠들이 앞장섰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불교신문3319호/2017년8월9일자] 

 

 

도법스님 조계종 화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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