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타스님과 사랑해 명상캠프’…백양사 현장

해맑다못해 창백한 얼굴, 반듯한 폼새로 능숙하게 가부좌를 튼 예원이(부산 하남중 1년)는 방학식 하자마자 짐을 꾸려 장성 백양사로 왔다. 중학교 들어가 처음 치른 기말고사의 압박과 불볕더위로 편도선이 붓고 고열이 나 병원에 가야 할 판인데, 예원이는 예정대로 절에 왔다. “병원가면 뭐해요? 약먹고 주사맞는 것보다 사찰의 맑고 깨끗한 에너지가 약이죠!” 말이 중1이지, 어른이다. “정말이에요. 절밥 먹고 스님이 주신 따끈한 차를 마시고 하룻밤 자고났더니 편도선이 싹 가라앉았어요. 하하하.”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2박3일 장성 백양사에서 열린 ‘혜타스님의 사랑해 명상캠프’에 참석한 52명 초중고생 가운에 예원이는 단연 빛났다. 발우공양도 수준급이다. 외할머니 지도로 엄마아빠와 어릴 때부터 집에서 발우공양을 해왔다고 하니 두말하면 잔소리다. 성악가를 꿈꾸지만, 서구식 문화보다 불교적 전통문화가 좋다고 한다. “교회와 성당도 좋겠지만, 저는 사찰과 불교가 제 마음에 맞아요. 더 인간적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함께 행복해지는 느낌이 있어요. 이래봬도 저 10년차 불자라고요!” 총명하고 당찬 예원이는 마음을 담는 향초에 ‘어찌 비만 내릴 수 있는가, 언젠가 볕도 내리쬐리니’라는 의미심장한 구절을 예술적인 필치로 적는가하면, “두 살 네 살 남동생 키우느라 힘든 엄마와, 우리 다섯식구 위해 땀흘려 일하는 아빠를 위해 꼭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번 ‘사랑해 명상캠프’에 참석한 50여명 아이들은 모두 예원이만큼 건강하고 해맑다. 서울은 물론 대전과 부산, 경기도 광주와 전라도 광주 등 전국 팔도강산에서 모인 참가자들은 낯선 인연이지만 넉넉한 부처님 품에 안겨서 서로를 벗하고 챙기면서 평생 남을만한 추억을 만들었다. 고불총림 백양사와 사단법인 동련이 용인 장경사와 손잡고 공동개최한 이번 캠프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열렸고, 올해는 참가규모가 크게 늘었다.

어린애같은 민철이(안성 비룡중 1년)는 발우공양을 처음 해보지만 “정말 맛있어요, 진짜에요” 하더니, 지금 뭐가 제일 먹고 싶냐 캐물었더니, “엄마밥이요” 하면서 울먹였다. 민철이랑 절에서 처음 사귀고 단짝이 된 준현이(광주 정광중 1년)는 내내 민철이 곁을 지켜주면서 함께 포행도 하고 명상도 했다. 발우공양부터 사찰예절까지 ‘FM’으로 지도하고 나선 백양사 포교국장 혜오스님은 신발 하나 놓을 때 갖는 조고각하(照顧脚下)의 마음과 밥한끼 먹을 때도 배려심과 자비심을 품어야 한다며 온 정성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본격적인 프로그램은 불교심리상담가로 유명한 혜타스님(용인 장경사)이 총괄진행하는 일곱차례 ‘선(禪) 여행’. 호흡명상은 기본이고 조별 모둠미션을 발표하는 시간, 몸느낌을 알아채는 물놀이 명상 등 매 시간마다 자신을 바로보고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이끌었다. 사랑, 고요, 미소, 행복 등 돌멩이에 지금의 마음 혹은 내가 원하는 마음상태를 적어넣고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도 흥미진진했다. 무심히 주워온 못난 돌멩이에 마음을 담고, 이제 돌멩이를 내버리기는커녕 간직하는 느낌을 가지면서, “내 마음을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고 했고 “평화로운 기분이 만났다” “누구나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 등등 아이들 표현은 다양했다. 둘째날 밤늦도록 이어진 만다라·촛불명상은 학업과 교우관계로 힘겨워하는 친구들과 소통하는 계기가 됐다.

혜타스님은 “요즘 아이들이 폭력적이다? 버릇없다? 등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건 우리 어른들이 단면만 보고 성급하게 내린 결론일 뿐, 정작 모든 아이들에겐 착하고 어여쁜 이면이 있다”며 “아이들에게 참으로 맑고 깨끗한 마음자리가 있다는 것을 어른들이 이야기해주고 끊임없이 응원해준다면 어떤 아이도 바르게 행복하게 자라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한창 먹어야 하는 아이들 행여나 배고플까 걱정인 혜타스님은 ‘장경사 쉐프’ 3명을 이끌고 함께 왔다. 엄마같은 보살님들이 즉석에서 햄에그샌드위치를 만들어주고 수박과 파인애플을 잘라주고 옥수수와 고구마를 쪄주고 신선한 사과주스 고급 아이스크림까지 ‘대령’했다.

명상캠프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날 아침 대웅전에서 주지 스님이 계사로 참석하는 수계·회향법회. 지난해에 이어 백양사 주지 토진스님은 캠프에 온 아이들에게 최적의 ‘수행환경’을 제공했다. 아이들 잠자는 방사에 에어컨까지 구비했고, 교육관 천장에도 최고급 실링팬을 설치해서 아낌없이 쾌적한 분위기를 선사했다. 52명 참가자들과 16명의 대학생 자원봉사자까지 일일이 눈을 맞추면서 “지혜에 눈을 뜨라”며 이마에 연비를 해줬다. 오는 8월 초 해병대 입대를 앞둔 이준성(20, 동국대 조경학과)씨는 자봉 중 한 명. 그는 “자원입대라도 솔직히 군대가기 전 두려운 마음은 있다”며 “어린 동생들 돌보고 궂은 일 하면서 오히려 마음이 정돈됐다. 특히 주지 스님의 연비가 불안한 마음을 씻어준 것 같아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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