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낳은 아들딸을 빼놓고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으로는 며느리와 사위가 있다. 그들은 가족이라는 단위에서 부르기 싫어도 그렇게 불러야 한다. 그리고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가족 밖의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자식의 친구들이다. 친구의 어머니를 아줌마나 이모, 혹은 사모님이나 여사님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한 보살님이 찾아와, 고등학생 아들에게 ‘친구들을 집에 들이지 말라’는 남편의 말에 아연실색을 해버렸다. 물론 개구쟁이들이고 가끔 사고도 치는 녀석들이지만, 어떻게 집에 찾아온 아들의 친구에게 밥도 먹이지 않고 그냥 내보내라고 하느냐고 항의했다가 오히려 자기가 지청구를 들었다.

내가 시골에서 자랄 때, 친구는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커가면서 말썽을 피우고 반항도 하지만, 친구 집에 가면 어머니는 먼저 밥부터 챙겨주고 잠도 재워주었다. 중학교에 들어가 뼈마디가 굵고 지게를 져도 될 나이가 되면 어른에 준하는 대접을 받았다. 모내기나 벼베기를 하다가 막걸리잔 정도는 어른들 틈에서 당당하게 받았다. 

고등학생 정도 되면 어머니는 밥상 위에 소주 한 병쯤은 올려주었다. 그리고 ‘이놈들, 내 새끼들. 엄마가 주는 술만 먹고 다른 데서는 먹지 마. 술 마시고 싶으면 엄마한테 와’ 당부도 곁들였다. 친구들은 그 밥과 술만 받아먹고만 있지는 않는다. 집안에 결혼이나 환갑잔치가 있으면 가서 거들고, 초상이 나면 부고를 돌리고 상여를 메는 것까지 다 친구들의 몫이었다.

식구(食口)와 친구(親口)가 ‘입 구(口)’자를 쓰는 걸 보면, 가족이란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뜻이다. 서로 보살펴서 그 생명의 가치를 고양시킨다. 그것을 인류의 보편적 어머니로 격상시킨 분도 있다. 테레사 수녀님이다. 사람들은 마더 테레사(Mother Teresa)라 부른다. 그분을 Mother라 부르며 그 어머니의 마음을 좇는 이들은 모두 식구이며 친구이며 아들딸이다. 다툼이 있어도 화해할 수 있는 싸움만 한다. 세계평화와 인류애 같은 기적이 정말 사소한 일처럼 일어난다.

[불교신문3317호/2017년7월26일자] 

만우스님 논설위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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