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비사라왕 괴롭혀온 치질을 치료하다

 

빔비사라왕은 치질 때문에 

고통과 싸우고 있었다

용변을 보고 나면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바지가 

붉게 물들 지경이었다

이를 본 왕비와 시녀들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대왕께서도 여인처럼

월경을 하시나 봅니다

월경을 시작하신지도 

꽤 된 것 같은데 이제 곧 

아이도 낳으시겠습니다”

후궁들이 농담할 때마다 

미소를 지었지만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따까실라에 가서 7년 동안 의술을 익힌 지바카는 스승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뒤 다시 라자가하로 향했다. 하지만 라자가하에 도착하기 전, 코살라 왕국의 무역도시 사케타에 이르렀을 때 지바카의 수중에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부족한 여비를 벌기 위해 지바카는 의술을 펼쳐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물어 오랫동안 질병을 앓아온 환자를 찾았다. 지바카의 질문을 들은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사케타에서 손꼽히게 부유한 장자의 집을 가리켰다. 환자는 바로 장장 7년 동안이나 두통을 앓아온 장자의 부인이었다. 자신을 치료하겠다고 찾아온 지바카를 본 장자의 부인은 못미더운 얼굴로 말했다.

의사로서 명성을 떨치더니 

“지난 수 년 동안 나를 낫게 해주겠다고 찾아온 의사들은 많았지만 그들은 모두 치료비만 축내왔을 뿐이오. 그들 중에는 유명한 의사들도 많았소. 그런데 당신처럼 젊은 의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소?” 

장자의 부인은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돈을 잘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사치는 일절 하지 않았고 늘 검소하게 생활하며 하찮은 물건이어도 버리는 법이 없이 제대로 쓰여야 안심했다.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미리 들었던 지바카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제가 치료한 후 부인의 두통이 낫지 않는다면 치료비를 받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치료한 후 부인의 두통이 낫는다면, 치료비는 부인께서 주시는 만큼 받겠습니다.”

치료비를 자신의 뜻에 맡기겠다는 지바카의 말에 부인의 표정이 달라졌다. 낭비를 가장 싫어했던 그녀는 수년째 고치지 못한 두통 때문에 수많은 치료비를 헛되이 사용한 것이 큰 불만이었다. 어쩌면 그로 인해 두통이 더 심각해졌는지도 모른다. 부인이 치료를 허락하자 지바카는 병세를 찬찬히 살펴본 후 두통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가 치료할 수 있는 병이었다. 

“부인의 두통은 제가 고칠 수 있는 질병입니다. 치료를 위해서는 버터가 조금 필요합니다.”

하인들이 버터를 가져오자 지바카는 지니고 있던 여러 약재들은 배합하여 버터에 골고루 섞은 뒤 부인의 코 속으로 집어넣었다. 버터에 섞인 약재들이 부드럽게 콧속을 통과하자 부인은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부인이 숨을 쉬는 동안 약재들이 자연스럽게 흡수되면서 콧속에서 녹아내린 버터가 입으로 흘러나왔다. 이 한 번의 치료로 무려 7년 동안 부인을 괴롭혔던 두통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부인은 하인에게 그릇을 가져오게 하여 입 안의 버터를 뱉어낸 뒤 말했다. 

“잘 정제된 버터는 귀중한 것이니 버리지 말도록 해라. 먹을 수는 없어도 솜이나 헝겊에 적셔 놓으면 불을 피우거나 상처를 닦는 데는 얼마든지 다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단 한 번의 치료로 금화 1만6천냥

부인의 알뜰함은 이와 같이 철저했다. 이어서 부인이 손뼉을 치자 네 명의 하인이 황금을 가득 채운 접시를 가지고 왔다. 이토록 돈을 쓰는데 깐깐한 장자의 부인이 지바카에게 지불한 치료비는 무려 금화 4000냥이었다.

“약속대로 내가 주고 싶은 만큼의 치료비를 드리리다. 여기 금화 4000냥이 있소. 오래 전부터 내 두통을 완치시켜 주는 의사가 있다면 이 돈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며 준비해 둔 것이라오. 그동안 많은 의원들이 나를 치료하겠다고 자신했으나 누구도 내 두통을 없애주지 못했기에 아무도 이 돈을 받아가지 못했소. 하지만 오늘 그대의 치료 덕분에 내 오랜 두통이 완전히 사라졌으니 그대야말로 이 금화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소.” 

금화 4000냥은 보통 사람은 평생에 한 번 만져보기 어려운 큰돈이었다. 이제 막 첫 진료를 한 의사가 이러한 거금을 받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바카가 치료비로 받은 돈은 4000냥이 아니라 금화 1만6000냥이었다. 부인의 두통이 완치되자 남편인 장자와 그녀의 아들 그리고 며느리가 지바카에게 각각 금화 4000냥씩을 주었던 것이다. 부인이 두통에 시달려온 7년 동안 가족들의 마음고생 역시 못지않았다. 그들은 부인을 완치시켜준 지바카를 은인처럼 생각했고, 라자가하로 향하는 그를 위해 하인들과 마차까지 준비해주었다. 

사케타에서 단 한 번, 단 한 명의 환자를 치료함으로써 부귀와 명성을 얻은 지바카는 마차를 타고 하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라자가하로 금의환향했다. 라자가하에 도착한 지바카는 가장 먼저 자신을 거둬준 아바야 왕자를 찾아갔다. 그리고 금화 1만6000냥과 하인들, 마차를 모두 왕자에게 바치며 말했다. 

“왕자님은 제 생명의 은인이자 천애고아인 저에게는 아버지나 다름없는 분이십니다. 그 동안 길러주신 은혜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부디 이 돈을 받아주십시오.” 

아바야 왕자는 지바카의 마음에 크게 감동하며 말했다. 

“지바카야, 참으로 장하구나. 하지만 내가 돈을 바라고 너를 거둔 것은 아니다. 너의 마음은 내가 충분히 알았으니 이미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네가 왕궁 밖으로 나가 고생을 하며 의술을 배운 것은 모두 자립을 위해서가 아니더냐. 내 너에게 거처를 마련해 줄 터이니 그곳에서 마음껏 의술을 펼쳐 보거라. 이 돈은 병원의 구색을 갖추고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데 사용하도록 하거라.” 

빔비사라왕의 말 못할 고민에…

아바야 왕자는 자신의 왕궁 뒤에 있는 망고나무 정원을 지바카에게 주었다. 왕자의 배려로 자신만의 거처가 생긴 지바카는 그곳에 집을 짓고 본격적으로 의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지바카가 사케타에서 까다로운 부인을 치료하고 금화 1만6000냥을 받았다는 이야기와 그가 아바야 왕자에게 은혜를 갚으려 했다는 이야기는 미담이 되어 라자가하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던 중 지바카에게 빔비사라왕을 치료할 기회가 찾아왔다. 

이 무렵 빔비사라왕은 치질 때문에 고통과 싸우고 있었다. 어찌나 상태가 심각한 지 용변을 보고 나면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로 바지가 붉게 물들 지경이었다. 이를 본 왕비와 시녀들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대왕이시여, 바지에 피가 잔뜩 묻었습니다. 대왕께서도 여인처럼 월경을 하시나 봅니다.”

“대왕이시여, 월경을 시작하신지도 꽤 된 것 같은데 이제 곧 아이도 낳으시겠습니다.”

후궁들의 농담을 들을 때마다 빔비사라 왕은 미소를 지었지만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치질의 고통만큼 수치심도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하들은 피에 젖은 빔비사라왕의 엉덩이를 애써 모른 척 하기에 바빴고, 후궁들은 그저 깔깔 웃기만 했다.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없던 빔비사라왕은 아바야 왕자에게 치질에 대해 말해주었다. 아들 앞에서는 부끄럽거나 창피할 것이 없었다. 빔비사라왕의 이야기를 들은 아바야 왕자는 웃지도, 비웃지도, 모른 척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실력이 뛰어난 의사 한 명을 아는데 그를 대왕에게 보내드리겠습니다.”

지바카, 약을 챙겨 왕궁으로 향하다

다음 날, 지바카는 필요한 약을 챙겨 아침 일찍 왕궁으로 향했다. 빔비사라왕은 이미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바카는 빔비사라 왕에게 증세를 자세히 물어보았다. 왕의 몸을 치료하는 것이기에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빔비사라왕은 자신을 괴롭혀온 치질에 대해 상세하게 말해주었다. 이윽고 진단을 마친 지바카가 왕에게 고했다. 

“대왕이시여, 제가 오늘 대왕의 고민을 깨끗하게 없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따뜻한 물이 가득 담긴 두 개의 욕조가 필요합니다.”

빔비사라 왕은 시종에게 명하여 따뜻한 물이 가득 담긴 두 개의 욕조를 준비시켰다. 지바카는 먼저 첫 번째 욕조에 마취제가 섞인 향유를 넣은 뒤 빔비사라 왕에게 몸을 담그게 하였다. 향긋하고 뜨끈한 욕조에 들어간 빔비사라왕은 이내 잠에 빠져 들었다. 빔비사라왕이 곤히 잠든 것을 확인한 지바카는 욕조의 물을 모두 퍼냈다. 그리고 왕의 엉덩이와 항문의 상처를 찬찬히 확인했다. 그리고 치질이 난 곳을 모두 도려냈다. 빔비사라 왕의 엉덩이는 순식간에 붉은 피로 물들었으나 왕은 여전히 잠에 빠져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치질을 모두 도려낸 지바카는 피를 깨끗하게 닦고 직접 조제한 약을 꼼꼼히 발랐다. 그러자 잠시 후 상처가 아물면서 치질을 도려낸 자리에 털이 자라났고 빔비사라왕의 엉덩이와 항문에는 치질이 있었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치료가 모두 끝나자 지바카는 빔비사라왕을 두 번째 욕조로 옮겼다. 반시간 쯤 지났을 무렵 마취가 풀린 빔비사라왕이 잠에서 깨어났다. 왕은 지바카가 여전히 같은 자세로 서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아직도 그대로 있었단 말인가. 한시가 급하니 어서 치료를 시작하도록 하라.”

그러자 지바카가 말했다.

“대왕이시여, 치료가 끝났습니다.”

[불교신문3317호/2017년7월26일자] 

 

글 조민기  삽화 견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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