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출토된 9세기 금동여래 입상 가운데 가장 커

유금사에서 출토된 9세기 금동여래입상.

영덕 유금사에서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보이는 불상이 나왔다. 지금까지 출토된 국내 9세기 금동여래 입상 가운데 가장 크다.

삼한문화재연구원은 지난 21일 보물 제674호 ‘영덕 유금사 삼층석탑’ 보수사업 정밀 발굴 조사 중 탑 남서쪽 가장자리 부근에서 9세기경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금동여래입상과 호신불 금동여래입상 등 2구를 출토했다고 밝혔다.

온전한 모습으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 1구는 높이가 39.5cm에 이른다. 거신광배(擧身光背:전신을 둘러싼 광배)는 탈락돼 없으나 전체적으로 잔존상태가 온전하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올려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왼손은 아래로 내려 여원인(與願印)을 하고 있다. 통견은 전체적으로 ‘U’자 모습을 하고 있으며, 통견법의 안에 속옷을 묶은 띠 매듭이 있고 주름이 음각새김선으로 새겨져 있어 9세기 전반에 제작된 불상으로 판단된다.

온전한 모습의 금동여래입상.

현재까지 알려진 9세기 조성된 금동여래입상은 경주 안압지 출토 금동여래입상(24.7cm), 홍천 물걸리 사지 출토 금동여래입상(22.6cm), 의령 보리사 출토 금동여래입상(26cm) 등에 불과하다. 연구원은 “이번에 출토된 금동여래입상은 9세기 전반 제작된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 가운데 가장 큰 입상”이라며 “유물의 크기, 잔존상태, 미학적면 등으로 볼 때 지금까지 알려진 여래입상 가운데 가장 우수한 예술품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탑 북쪽에서는 유금사 창건 당시의 대웅전 터로 보이는 금당지도 함께 발굴됐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로 추정되는데 금당 가운데 계단이 확인됐고 계단과 연결한 답도(발 디디는 곳)도 일부 남아있었다. 3단으로 축대를 쌓고 위에서부터 차례로 강당, 금당, 탑을 남북축 선상에 나란히 배치한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산지 가람 형태를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한문화재연구원은 “경주외역에 건립된 8~9세기 산지가람의 전모를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므로 조사범위 외역에 대한 정밀발굴조사가 추가로 필요하다”며 “해체 보관 중인 3층 석탑은 원 탑지로 이전해 전반적인 초창기 절터를 복원하고 고대 사원 문화의 교육장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했다.

삼한문화재연구원은 유금사 3층 석탑 틈이 벌어지고 한쪽으로 기울어짐에 따라 지난 5월부터 6월까지 이를 복원하기 위한 이전 부지 발굴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호신불 금동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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