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때는 흰 구름 더불어 왔고…

법정스님 지음 / 책읽는 섬

“좋은 시를 만나면 몸에 물기가 도는 것 같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던 법정스님은 시를 무척 좋아했다. 스님은 지인들에게 편지와 엽서를 보내면서 정갈하게 써내려간 선시 한 편을 덧붙이기도 했고 에세이 한 편을 오롯이 시에 바치기도 했다.

스님은 시(詩)를 ‘말씀 언(言)’ 변과 ‘절 사(寺)’ 자로 해자(解字) 하면서 ‘절에서 쓰는 말’이라 이라고 풀이했다. 그래서 일까. 법정스님은 불교의 가르침을 노래한 게송 등을 일컫는 선시(禪詩)를 특히 좋아했다. 선시는 사전에 등재된 정식 단어는 아니지만 불교문학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 했다. 수행 중이던 선승이 움막을 박차고 나와 몇 구절의 시를 휘갈긴다. 시를 본 스승이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 스승은 제자가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음을 알아본다. 이때 지어진 시를 오도송이라고 한다. 삶의 끄트머리에서 육신을 벗으며 남기는 마지막 가르침과 생을 벗어나는 소회를 시로 남긴 것을 열반송이라고 한다.

선승들이 남긴 시는 언어로 진리의 영원성을 순간을 압축했다. 찰나의 풍경 속에서 섬광처럼 찾아든 깨우침을 순간을 그대로 포착했기에 선시는 회화성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선시의 속뜻이 깊고 오묘하면서도 일반 대중의 마음을 끄는 이유 역시 한 폭의 수묵화나 민화를 대하는 듯 친숙함에 있다. “벽이 무너져 남쪽 북쪽이 다 트이고/ 추녀 성글어 하늘이 가깝다/ 황량하다고 말하지 말게/ 바람을 맞이하고 달은 먼저 본다네. 조선시대 환성 지안스님의 시인데, 곧 허물어져가는 오두막에 살면서도 궁기가 전혀 없는 낙천적인 삶의 모습이다. 벽이 무너지고 추녀가 떨어져 나갔지만 도리어 그 속에서 자연을 가까이 할 수 있음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다. 하늘과 바람과 달을 집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예전 수행자들의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옛 것과 낡은 것은 아름답다. 거기 세월의 향기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이 사랑했던 작자 미상의 선시 15편을 포함한 선시 82편과 스님이 시에 대해 쓴 산문 4편을 묶은 책 <올 때는 흰 구름 더불어 왔고 갈 때는 함박눈 따라서 갔네>가 최근 출간됐다. 팍팍하고 막막한 디지털 시대에서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에 우린 늘 쫓긴다. “오랫동안 티끌 속에 묻혀 지내느라/ 본래의 일을 까맣게 잊었으리/ 어서어서 온갖 일 걷어치우고/ 서둘러 청산에 돌아오너라.” 보선선사의 시 ‘서둘러 청산에 돌아오너라’

아날로그 시대의 시는 오래돼도 낡지는 않는다. 시도 좀 읽으면서 운치 있게 살아보자. 첫 장에 실린 법정스님 산문 제목에 눈길이 간다. “시도 좀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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