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정적을 깨는 전화벨 소리에 급히 받으니 잔뜩 부아 난 거사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우리 할멈이 며칠 전 세상을 떠났어요. 평생 부처님 믿고 스님 의지하며 살았는데 아니, 나오던 신도가 2년 동안이나 안 보이고 기별 없으면 전화라도 한번 줘야 하는 거 아니요? 내사 절에는 안 다니지만 집사람 좋으라고 49재를 지낼까 하는데 뭣을 어찌 해야 되는거요?”

격앙된 목소리에 야속함과 슬픔이 그대로 느껴졌다. 사과나 위로할 틈조차 주지 않고 다그치다가 마지막 일침을 놓고는 툭 전화를 끊었다. ‘기도 안내문은 잘도 보내면서!’ 난데없는 얼음물을 뒤집어 쓴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되짚어 보니 큰 행사 때에만 조용히 다녀가시는 노보살님인데 그렇잖아도 뵈지 않아 안부가 걱정되던 터였다. 2년여를 병상에 누워있어도 문병 한번 안 오고 장례 치르고 기다려도 절에서 아무 연락이 없으니 괘씸하고 서운했을 것이다.

잠시 후 전화를 다시 걸어 살펴드리지 못해 죄송하고 얼마나 서운하시느냐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리니 ‘집사람이 스님 염불소리를 그렇게 좋아했다’며 울먹이셨다. 얼마나 속상하고 야속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를 지내고자 마음을 낸 할아버지의 배려와 할머니를 향한 애틋함이 느껴져 내 마음이 아릿해져 온다. 두 분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풀어드릴 수 있도록 정성 다하여 49재를 모시고 목청껏 염불로 위로해 드릴 생각이다.

근래에 신도가 급격히 줄어든다고 여기저기서 걱정이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마라. 그저 인연따라 오고 갈 뿐’이라는 말은 오거나 말거나 무심히 그냥 두라는 것이 아니라 집착 없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행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 명의 새 신도를 공부시키고 불법을 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오랜 세월 함께 한 기존 신도를 챙기고 살피는 것이야말로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은사 스님 돌아가시고 오랜만에 듣는 매운 꾸짖음이 태연히 살고 있는 오늘, 사정없이 내려치는 장군죽비의 경책과 아픔으로 와 닿는다.

[불교신문3316호/2017년7월22일자] 

일광스님 거창 죽림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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