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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실에서 법을 청하다] 조계종 원로의원 지성스님“스님은 스님답게 불자는 불자답게 살아가야”
조계종 원로의원 지성스님은 지난 16일 칠곡 극락사에서 “사부대중이 자신의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 ‘답게’ 살며, 오계를 지킬 때 불교의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재호 기자

종회의원, 은해사·동화사 주지

주요 소임 두루 역임한 어른

종단 최고 법계 ‘대종사’ 품수

지난 16일 경북 칠곡 지천면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극락사. 30도를 넘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이날 오후 극락사에서 주석하며 수행 정진하고 있는 조계종 원로의원 지성스님은 친견했다. 팔공총림 동화사, 제10교구본사 은해사 주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등 종단 주요 소임을 역임한 종단 어른에게 법을 청하기 위해서다. 불교계 NGO인 사단법인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어 몇 해 전까지 이사장으로 몽골, 스리랑카, 태국, 라오스 등 지구촌 곳곳을 누빈 원력보살인 만큼 자비 나눔을 몸소 실천하며 후학들에게 전하는 가르침이 남다르다.

이날 원로의원 지성스님은 “삼복더위에 먼 길을 왔다”며 환한 미소로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이어 “나는 시자가 없어, 내가 시자다”라며 직접 차와 과일을 내오는 모습에서 오랜 만에 만난 손주를 챙기듯 시골 할아버지의 따뜻함과 소탈함이 묻어난다. 그러면서도 질문 하나하나에 정성껏 답변을 이어가는 모습에서는 출가 60여 년의 수행내공이 진하게 담겨 있는 듯 했다.

“현재는 원로의원을 제외한 모든 소임을 내려놨다”는 지성스님은 그 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니 몇 번의 큰 변화의 계기가 있었다고 했다. 그 첫 번째가 1950년대 동화사에서 행자시절이다. 당시 스님은 뜻 맞는 도반들과 함께 시간 나는 데로 열심히 공부하고 또 일했다고 한다. 그러던 가운데 우연히 읽은 <능엄경>의 가르침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능엄경> 제10권에 ‘실제이지(實際理地)에는 불수일진(不受一塵)이나 불사문중(佛事門中)에는 불사일법(不捨一法)’이라 했습니다. ‘실질적인 진리자리에는 먼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지만, 부처님 일 즉 불사에서는 한 법도 버려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청정한 여래장자리에는 원래 무명이 없었지만 하루아침에 까닭 없이 생긴 뒤에는 너와 내가 생겼는데 이제 너나 내나 무명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먼지 하나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능엄경의 가르침이 당시 나의 생활과 딱 맞아 떨어졌고, 이후 출가생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후 종단의 여러 소임을 지낸 후 50대 중년에 이르러 지성스님은 두 번째 변화를 맞게 된다. 경전의 가르침만으로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을 모두 전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 현재 스님의 수행관이자 인생관으로 자리 잡은 ‘답게 살자’다. “주지는 주지답게, 수좌는 수좌답게, 불자는 불자답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일반사회도 만찬가지입니다. 정치인, 경제인, 군인, 학생 등 사부대중이 자기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답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를 실천하면 불교는 물론 온 세상이 행복하게 바뀔 거라 확신합니다.”

백고좌법회로 불교계 큰 반향

‘몽골불교’ 인연으로 국제구호

앞장서며 자비 나눔도 실천해

원로의원이 유일한 공식직함

“사부대중 오계 지키는 것이

불교 모든 문제 근본 해결책

이 같은 원력은 지성스님이 동화사 주지 재임 당시 여러 구체적인 성과로 현실화됐다. 2002년 동화사 주지로 부임하자마자 교구본사로는 처음으로 100일 동안 고승들을 초청해 매일 법석를 마련한 ‘백고좌 법회’를 원만히 회향했다. 매일 버스 15대 이상 동원하며 전국에서 10만 여명이 동참하며 불교계 안팎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어 ‘화엄논강’, ‘담선법회’, ‘계율수행법회’ 등 새로운 방식의 법회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스님은 “백고좌 법회를 원만히 회향하고 화엄논강, 담선법회 등을 통해 교구본사의 위상에 맞게 지역 불자들을 위한 법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자 노력했다”면서 “특히 사부대중 500여 명이 한 자리에 모여 밤늦도록 계율을 주제로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은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고 회고했다.

여기에 동화사 주지 당시 몽골불교와의 인연으로 현지 어린이들을 위한 유치원을 건립한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2003년 대구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당시 몽골 선수단과 임원진 50여 명이 동화사를 방문하고, 동화사 신도들이 몽골선수를 응원했다. 이후 몽골인들과 만남을 거듭할수록 양국의 불교교류의 필요성을 절감한 지성스님은 사단법인 한몽골불교교류협회를 만들고 2009년 9월 몽골에 간단사 부설 불교유치원을 건립했다. 이 협회는 현재

사단법인 함께하는세상으로 확대해 몽골을 비롯한 다른 불교국가를 돕는 불교계 NGO로 성장했다. 대구 성서에 국제포교당인 ‘이웃절’을 건립하고 법당에 한국, 몽골, 스리랑카 부처님 나란히 봉안하는 등 외국인이주노동자를 위한 신행도량과 상담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스님은 “지난 6월 몽골 간단사의 초청으로 우리가 세운 유치원을 방문해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전해주고 왔다”면서 “설립 초기에는 주위에 건물이 없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유치원 주위에 고급 주택가들이 들어서 명문유치원으로 잘 운영되고 있어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앞서 1980~90년대 제10교구본사 은해사 주지를 거쳐 대구 용현사 주지 소임을 맡을 당시에는 대구불교대학을 설립해 지역 불자들의 교육에 힘썼고, ‘한 사람이 만인을 위하고 만인이 한 사람을 위한다는 신협정신’을 실천하는 보현신용협동조합을 세우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주지답게 살자’는 지성스님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역 불교활성화에 활력을 주기에 충분했다.

현재 세납 여든을 몇 해 남기지 않은 지성스님은 “모든 소임을 내려놓고 물 흐르는 데로 살고 싶다”고 강조했다. 유일한 공식직함인 원로의원도 절반의 임기를 남겨두고 있다. 그러면서 스님은 “결국 사부대중이 오계를 잘 지키는 것이 모든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라고 강조하며 최근에는 오계(五戒)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면서 수행자로서 3번째 변화의 계기를 맞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불자들의 수가 감소했다고 다들 걱정하고 있는데, 중요한 것 인원수가 아닙니다. 사부대중이 오계를 잘 지키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답게’ 산다면 불자의 수는 자연스럽게 늘어납니다. 연기와 구름이 걷히면 집집마다 달이 밝고, 얼음과 눈이 녹으면 곳곳이 봄이 오는 이치와 같습니다. 오계를 지키며 국민들의 신뢰를 얻어간다면 앞으로 불교는 가장 존경받는 종교로 거듭날 것입니다.”

이어 지성스님은 물질문명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들에 대한 경책도 잊지 않았다. 스님은 “경제가 어렵고 생활하기 힘든 시절이라고는 하지만, 요즘은 과거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족한 시대”라며 “인간의 욕망이 끝이 없는 만큼 마음을 넉넉히 여유롭게 갖고 자신을 돌아본다면 세상에 부러워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지성스님은

혜진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지성스님은 1959년 동화사에서 인곡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1976년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이후 금당선원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했으며, 제7, 8, 9, 10대 중앙종회의원, 팔공총림 동화사 주지, 제10교구본사 은해사 주지, 청송 대전사 주지, 대구 용연사 주지, 초심호계위원, 재심호계위원, 법계위원, 대구불교대학 학장 등 종단 주요소임을 역임했다. 사단법인 ‘함께하는 세상’과 보현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최근까지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자비 나눔을 실천했다. 2012년 조계종 원로의원에 선출된 스님은 2014년 종단 최고의 법계인 대종사를 품수했다.

[불교신문 3316호 / 2017년 7월22일자]

 

칠곡=허정철 기자  hjc@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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