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법스님의 4·16 순례기 <上>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의 공업(共業)

 

왜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할까

국가적 모순과 부패와 나태의 산물

천안함 용사들은 외부세력이 죽였지만

세월호 학생들은 우리 스스로 죽인 것 

‘시대 아픔을 현장에서 도우라’던 붓다

불교가 가장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

깊은 성찰과 각성과 전환의 각오 살려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길 ‘발원’ 

세월호 순례단은 7월6일까지 세월호가 운항한 서해안 마을길을 따라 809km를 걸었다. 사진은 ‘세월호 희망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지난 5월15일 인천 연안부두 상트페테르부르크광장에서 ‘4·16순례길’ 출발식을 열고 있는 장면.사진제공=이승호 작가

세월호 순례길이 만들어지고 있다. 인천항에서 팽목항까지, 세월호가 운항한 서해안 마을길을 따라 809km를 연인원 2000여 명의 시민들이 5월15일부터 7월6일까지 53일 동안 걸었다. 지난 2016년 9월5일부터 순천사랑어린배움터 7학년생 9명이 45일간 걸으면서 만든 순례길 지도를 토대로 조금씩 완성도를 높여가는 순례다.

순례길은 시민들의 열성적인 성원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장맛비가 내리는 6일의 회향식에도 시민 수백 명이 참석했다. 순례길에 참여하지 못했거나 혹은 회향식에 오지 못한 사람들은 미안한 마음을 전해왔다. 

사람들은 왜 무더위도 비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순례를 하는 것일까? 함께 걷지 못한 사람들은 왜 “미안하다”고 할까? 그 까닭은 너무나 명백하다. 세월호는 우리 시대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속(代贖)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전한다. 

2014년 4월16일 바다에 빠져 불귀의 객이 된 304명의 세월호 희생자들도 우리를 대신하여 목숨을 바친 셈이다. 그 중에는 꽃다운 청춘들이 많았고, 그들이 죽음의 나락으로 내몰리는 장면을 우리는 디지털 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보았다. 배가 눈앞에서 침몰하는데도 그들을 구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민낯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다.

세월호 사건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모순과 부조리와 부패, 정신적 나태, 도덕적 타락이 쌓이고 쌓여 일어난 사건이었다. 배가 침몰하지 않게 하고, 침몰하는 배에서 승객들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끝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말았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 유대인들이었던 것처럼, 304명의 무고한 생명을 수장시킨 사람도 바로 우리들이었다.

한편에서는, “세월호 희생자와 천안함 희생자가 무엇이 다른가?”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세월호나 천안함이나 그 희생자들의 목숨은 모두 고귀하다. 천안함에서 희생된 군인들도 그 정신을 기려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들이 느끼는 정서는 다를 수밖에 없다. 천안함의 침몰은 외부의 어떤 힘에 의해서 희생되었다고 한다면, 세월호의 희생은 온전히 우리 대한민국이 스스로 죽인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온 국민이 유독 세월호의 슬픔을 자기 슬픔으로 받아들이면서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십자가인 세월호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총체적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밝혀져야 할 의혹들이 남아있다.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은 왜 승객들을 방치한 채 배를 빠져나왔는지, 해경은 왜 그들을 해경 수사관의 아파트에 데리고 갔으며, 그때의 CCTV기록 두 시간 분량이 사라졌는지, 세월호에 왜 국가정보원의 그림자가 비치는지 등에 대한 의혹들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 이 모두 국가가 풀어내어 국민들에게 보고해야 할 일이다. 국가는 세월호 침몰의 핵심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종합적인 결론을 내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같은 사고를 반복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국가의 책임 못지않게 국민의 책임 또한 크다.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국민이 곧 국가다. 또한 번뇌가 곧 보리의 씨앗이며 절망이 곧 희망의 기회다. 세월호의 비극은 너무나 엄청난 비극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크나큰 희망의 씨앗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 가능성은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 2016년 말 타오른, 세계를 감동시킨 1000만 평화의 촛불은 말 그대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시민혁명이었다. 정권교체를 이룸은 물론 나라다운 나라로 나아갈 물꼬를 텄다. 실로 기적이다. 세월호 영령들이 준 교훈과 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들이 일으킨 거룩한 ‘첫마음’이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온 국민이 세월호의 슬픔과 아픔을 자신의 슬픔과 아픔처럼 함께 했다. “잊지 않고 기억할게. 헛되지 않고 값지게 할게”하며 깊이 성찰하고 각성하고 대전환을 다짐했다. “세월호 이후에 내가 달라질게.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게” 하며 온국민이 눈물 흘렸다. 한 인간, 한 사회가 일으킬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거룩한 한 마음이었다. 촛불을 든 사람, 태극기를 든 사람 간의 구분이 없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의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진실을 드러내는 일이 상식적으로 진척되지 않았고, 정부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방해하는 것 같았다. 불가피하게 국민들은 정부를 규탄하는 일에 매달렸고, 그 과정에서 온 국민이 가졌던 거룩한 첫 마음을 개인의 삶으로 심화시켜내지 못했고 사회적으로 실현되도록 하지 못했다. 우리는 결국 304명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세월호 순례는 빛바래고 있는 세월호의 첫마음을 되살리는 일이다. 국민들이 함께 일으켰던 깊은 성찰과 각성과 전환의 각오를 다시 살려내어 새로운 나와 대한민국으로 거듭나는 일이다. 이 일은 이익에만 눈이 먼 선사(船社) 청해진해운, 혹은 자기들만 빠져나간 세월호 선장 및 선원들, 혹은 그들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를 ‘관피아들’을 상기하고 증오하며 성토하려는 것이 아니다. 진실을 밝히는 등의 이 일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이며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촛불’의 힘으로 집권한 현 정권이 잘 처리하리라 믿는다. 

세월호 순례길을 만들어 순례하자고 하는 것은, 온 국민이 하나 되었던 거룩한 첫 마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세월호에 정치적 주장이 덧칠되고 정치적 관점이 개입하기 이전에 우리는 하나였다. 그 마음과 정신으로 세월호 이후의 나와 대한민국이 새로워지도록 함으로써 세월호의 비극을 희망으로 승화시키려고 하는 것이 세월호 순례의 의미다.

이 일은 304명의 죽음을 값지게 만드는 일이며, 세월호의 비극을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일이다. 만일 우리가 새로운 나와 대한민국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들의 죽음은 의미없는 헛된 죽음이 되고 만다. 반면, 우리가 환골탈태한다면, 세월호는 우리의 미래를 밝히는 등대가 될 것이다. 그것은 붓다를 깨달음으로 이끌었던 샛별, 예수의 부활과 같은 의미를 띨 것이다. 부활이란, 단순히 죽었던 몸이 다시 살아남을 뜻하는 것이 아닐 터이다. 

세월호 순례 또한 304명의 희생을 사랑의 이름으로 부활시키려는 몸짓이다. 순례는 “내가 진리와 사랑의 길을 걷겠다”는 자발적인 행위다. 그것은 부처님이 2600년 전에 갈파한 바, “진리를 등불로 삼고,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는 가르침을 주체적으로 실천하는 몸짓이다.

세월호 순례는 오늘날 우리가 이루어야 할 진정한 민주주의와도 관계가 깊은 일이다. 민주주의란, 제도만이 아니라 일상의 생활 문화로 뿌리내려야 한다. 개개인의 성찰을 기반으로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생활화되었다면, 국가적 재앙인 세월호 참사는 없었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의 민주주의가 투철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제도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성찰과 각성을 통한 생활화로 완성된다. 

세월호 순례길은 생명이 안락하고 삶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붓다의 서원을 완성시키는 몸짓이다. 시대의 아픔을 품고 현장에서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석가모니의 가르침이자 행동이었다. 아마 붓다가 오늘날 살아계신다면 틀림없이 우리처럼 행동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세월호 순례는 불교가 가장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불교의 존재 이유와 맞닿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불교신문3315호/2017년7월19일자] 

도법스님 조계종 화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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