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불교학술원 ‘도록’ 출간 … 보물 등 483종 612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인 정각스님이 원각사에 소장하고 있는 고문헌을 집대성한 도록이 나왔다.

동국대 불교학술원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사업단(이하 동국대 ABC사업단)은 지난 7일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사업단 고문헌 도록 1’ <원각사의 불교문헌>을 출간했다고 밝혔다.

지난 2014년 9월부터 2015년 8월까지 원각사 소장의 고문헌을 조사한 동국대 ABC사업단은 총 483종 612점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도록에 담았다. △불교문헌 335종 422책 △다라니 89종 123매 △불교 외 문헌 59종 67책이다.

<원각사의 불교문헌> 조사개요에 해당하는 앞쪽에는 시기별, 판종별, 형태별, 주제별로 문헌을 분류한 통계자료를 제시해 원각사 전체 문헌의 현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학자는 물론 일반인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자료 수록 순서를 정리했다. 경장, 율장, 논장, 사휘, 중국찬술, 한국찬술, 일본찬술, 사지(寺誌), 불교연계문헌 등의 주제순으로 목차를 배열했다. 또한 다라니는 고려-조선시대로 이어지는 시기순으로, 불교 외 문헌은 경(經), 사(史), 자(子), 집(集)으로 정리했다. 동국대 ABC사업단은 “보물 제1010-2호 <묘법연화경>을 비롯한 불교문헌 13종 18책과 보물 제1291-3호인 <자치통감>,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02호인 고려시대 다라니 일괄(15종 37매) 등 지정 문화재들은 수록 순서와 관계없이 앞부분에 소개했다”고 밝혔다.

도록 말미에는 각 문헌의 서(序)・발(跋) 등을 포함한 간기(刊記) 정보와 간행질 및 묵서기를 부록으로 담아 발행사항을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동국대 ABC사업단 집성팀은 원각사 소장 문헌을 총 10회에 걸쳐 불교학술원에서 조사와 촬영을 진행했다. 자료 가운데 보물 및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문헌들과 이동에 한계가 있는 자료들은 원각사에서 작업이 이뤄졌다. 한상길 집성팀장을 비롯한 7명의 전문 연구원과 11명의 연구보조원, 5명의 촬영팀이 참여해 총 54개 항목에 대한 정밀 서지조사와 동시에 5천만 화소의 고해상도 촬영을 진행했다.

자료를 공개한 정각스님은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학위를 받고,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스님은 경상북도 전통사찰보존위원, 경상북도 문화재위원을 지내며 문화재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현재는 중앙승가대 교수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매장문화재분과위원회)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각스님은 ‘수집과 간행의 변(辯)’을 통해 “여러 대학의 기관에서 원각사 소장 불교문헌을 집성키 원한다는 연락이 왔는데, 마침 동국대 불교학술원에서도 불교문헌 집성사업을 진행한다는 말을 듣고 동국대 문헌 집성사업에 동참 했다”면서 “승(僧)으로서 삶을 살면서 그 삶 가운데 하나의 의미가 되고, 성보(聖寶)를 모으고 정리한 나의 공덕이 진리의 화장세계 장엄하는 한 송이 꽃잎 되어 법계에 두루 휘날릴 수 있기 원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정승석 동국대 불교학술원장은 “원각사 소장 불교문헌은 고려시대로부터 조선시대, 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책 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간기가 충실히 남아있는 선본(善本)들이 많다”며 “이번에 출간한 도록은 수록된 문헌들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불교 고문헌의 역사와 서지사항을 파악할 수 있는 지침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담양 용흥사를 시작으로 고양 원각사 등 30여 곳 사찰과 기관 등에서 수천여 점에 이르는 불교 고문헌을 조사를 진행한 동국대 ABC사업단은 고문헌 서지 자료와 이미지 등을 아카이브 서비스 시스템(kabc.dongguk.edu)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다음은 동국대 불교학술원에서 발간한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사업단 고문헌 도록 1’ <원각사의 불교문헌>에 실린 정각스님의 ‘수집과 간행의 변(辯)’ 전문이다.

 

                                수집과 간행의 변(辯)

                                                         정각 / 원각사 주지, 중앙승가대 교수

I. 고적(古籍)과의 인연

80년대 말 통도사 강원(講院)에서 수학하던 중, 대구 봉산동 고서점을 지나치다 처음 불경(佛經) 고적(古籍)을 만난 것은 숙연(宿緣)이었던 것 같다. 출가 후 틈나면 폐사지(廢寺址)를 찾았고, 선현들의 정취를 느끼고자 하였던 나는 불교학과 박사과정을 마치고, 또다시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에 들어가 불교미술사를 전공하였다. 이렇듯 고적(古籍)과 고물(古物)에 대한 나의 숙연이 맞물려진 결과, 문화재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대학에서 문화재학을 교수(敎授)하는 입장에 있기도 하다.

II. 영물(靈物)의 주인

영물(靈物)은 때가 되면 스스로 주인을 찾는다. 내가 유물을 찾는 것이 아니고, 옛 선현들 손때 묻은 경전(經典)과 성보(聖寶)들이 나를 찾아올 때, 언제나 나를 찾아온 인연에 숙연한 마음을 갖는다.

그 시작은 어느 날, 초조대장경의 고려시대 인출본 『대반야바라밀다경』 1축(軸)을 소장하게 된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 재조대장경의 고려시대 인출본 중 몇 안 되는 『유가사지론』 1축(軸)이 거짓말처럼 수중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어 간경도감 간행의 『묘법연화경』 언해본 수권(首卷)이 나를 찾았다. 권수(卷首) 변상도(變相圖)와 함께 윤사로(尹師路)의 전문(箋文)과 간기(刊記)가 실린 귀중한 책으로, 간경도감 관계자의 교정(校正) 도장까지가 찍힌 책이었다.

교서관(校書館) 간행의 『능엄경』 을해자(乙亥字) 언해본을 소장하게 된 감동 또한 그랬다. 훈민정음 창제 후 간행된 최초의 한글번역본에, 책 마지막 장 하단에는 “김여산(金麗山) 세(洗)”라는 주서(朱書)가 쓰인 책이었다. 김여산은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정음청(正音廳) 서원(書員)에 봉직한 인물로, 그가 지니고 교정한 책을 갖게 된 것에는 뭔가 보이지 않는 인연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이런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우리나라 간행 불경 335종 423책과, 불교 고문서 100여종을 모으게 되었다. 이밖에 중국과 일본의 중요 고경(古經)을 모으고, 인도와 네팔, 부탄 및 남방에서 수집한 50여점의 패엽경과 500종이 넘는 티벳어 경전 또한 소장품 목록에 올랐다.

소장품 중 20여 종 남짓이 보물과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렇듯 하나하나 인연 따라 불경 고본(古本)을 소장하는 가운데, 나는 현실 속에서 초조대장경과 재조대장경 판각사업에 종사한 일원이 되었으며, 간경도감 말석에 앉게 된 영광을 몽상(夢想)할 수 있었다.

III. 불감사비(不敢私秘)

불경(佛經)을 모으는 자체가 행복한 삶의 순간이었으며, 불경을 곁에 둔 채 그 서기(瑞氣)와 함께 살았다. 그러나 무엇이든 적을 때는 나의 것이지만, 많으면 공유의 것이 된다. 대각국사 의천은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서(序)에 교장(敎藏) 간행 사유를 이렇게 쓰기도 하였다.

“이제 얻게 된 신구(新舊)의 제종의장(諸宗義章) 찬술들을, ‘감히 사사로이 지닐 수 없기에[不敢私秘]’

하나하나 편찬하게 되었다.” (今以所得 新舊製撰 諸宗義章 不敢私秘 敍而出之)

여러 대학의 기관에서 원각사 소장의 불교문헌을 집성키 원한다는 연락이 왔다. 마침, 동국대 불교학술원에서도 불교문헌 집성사업을 진행한다는 말을 듣고 동국대 문헌 집성사업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오랜 동안의 목록 작업을 마무리하고, 일부 불교 고문서와 외국 간행 불경들을 제외한 채 도록을 준비하게 되었다.

IV. 해제(解題)를 마치며

불교학술원에서 「불교 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구축사업(ABC사업)」의 일환으로 『원각사의 불교문헌』 도록을 간행함에 앞서, 필자는 고문헌의 해제를 작성하였다. 해제를 작성하며 문득 아래 한용운 스님의 일화를 생각하게 되었음은 동일한 감정의 소치일까?

만해 한용운 스님은 1931년 어느 날, 고산 안심사(安心寺)에 언해본 불경 경판(經板)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밤 0시 30분 안심사에 도착, 한글 경판을 감춘 중각법당 후불전(後佛殿)에서 경판을 배관(拜觀)한 스님은 총 658판 반 - 7판 반의 결판 - 에 이르는 경판을 정리한 후 다음 소감을 남겼다.

“한글 佛經板을 發見하야 나의 손으로 整理하야 노은 것은 나의 一生의 勝事이다 거긔에서 얻은 快感과 歡喜는 言語道를 超越하얏다…經板을 整理하고 最後로 法堂을 나오다가 다시 도러서서 經板을 向하야 두어줄기의 눈물을 뿌린 것으로 끗을 막엇다”

- 한용운, 「國寶的 한글 經板의 發見徑路」, 『불교』, 1931년 7월호.

V. 사족(蛇足)

80년대 말 강원 학인으로 있을 무렵, 당시 종정 성철스님께서는 언제나 학인들에게 “밥값 내 놔라, 이 도적놈들아!” 하셨다. 그 이야기 듣던 나는 승(僧)으로서 밥값 내놓는 삶을 살기 위해 애썼다. 어느 땐가는 “이거면 지금까지의 밥값으로 충분하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렇듯 언제나 나의 마음은 ‘밥값 갚는 삶’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승(僧)으로서 삶을 살면서 그 삶 가운데 하나의 의미가 되고, 성보(聖寶)를 모으고 정리한 나의 공덕이 진리의 화장세계 장엄하는 한 송이 꽃잎 되어 법계에 두루 휘날릴 수 있기 원한다.

헨델의 쳄발로 연주 사라방드(Sarabande)의 장중함과 애잔함을 느끼며, 내 자신 삶의 일기 중 한 페이지가 될 이 장엄한 책이 나올 수 있도록 해주신 동국대 총장 보광스님과 학술원 정승석 원장님, 집성팀의 한상길 교수와 관계자 분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중앙승가대 정진관 연구실에서

                                 2017. 2. 28. 정각 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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