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이타(利他)...진정한 애국심 국민들이 기억해야

지난 4월7일 해남 대흥사 보현전 앞 특설무대에서 열린 청허휴정 스님 탄신 497주년 기념 ‘호국대성사 서산대재’에서 대흥사 주지 월우스님과 총무원장 자승스님(오른쪽)이 스님의 진영 앞에서 예를 표하고 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종단은 국가기념일로서의 ‘호국의승(護國義僧)의 날’ 제정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 당시 전국의 스님들로 구성된 승병(僧兵)들은 누구보다 앞장서 왜적에 맞섰고 피를 흘렸다. 영화 ‘명량’에서도 잘 드러난다. 무엇보다 자신을 멸시하는 이를 위해 도리어 목숨을 바친, 완벽한 이타(利他)였다. 반면 선비들이 일으킨 의병에 비해 승병의 활약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불자들의 아쉬움이다.

조선 왕조의 숭유억불(崇儒抑佛)은 익히 알려진 바다. 명실상부한 국법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이 완성되면서 조선의 불교는 금기로 굳어졌다. 이때부터 여자가 절에 가서 산신에게 기도를 올리면 곤장 100대를 맞아야 했다(음사, 陰祀). 승려를 선발하는 승과제(僧科制)도 폐지했다. 국가에서 더 이상 스님을 길러내지 않은 것이다. 

연산군은 불자들에게도 폭군이었다. 비구들에게 결혼을 강요했고 사냥을 나갈 때 일꾼으로 썼다. 여성의 출가를 금지했으며 20세 이하의 비구니는 전부 환속시켰다. <중종실록>에는 “무술년(1538년)에 유생들이 닥치는 대로 중을 죽이고 절을 불태웠다”고 쓰였다. 조선의 중기(中期)는 멸불(滅佛)과 함께 시작된 셈이다.

국가권력의 핍박과 멸시에도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기꺼이 참전

조선의 전기와 후기는 양난(兩難)을 기점으로 갈라진다. 임진왜란은 잔해만 남은 불교에 회생의 기회를 제공했다. 승병들의 활약 덕분이다. 스님들은 애민(愛民)의 가치와 불살생계(不殺生戒)를 맞바꿨다. 

서산대사로 유명한 청허휴정(淸虛休靜)은 도총섭(都摠攝)에 임명된 직후 전국 사찰에 동원령을 내려 5000여 명의 병력을 모았다. 가히 모든 스님들이 참전했다고 보면 된다. 이들은 행주대첩의 주역이 됐고 평양성 탈환의 선봉에 섰다. 성벽을 쌓고 군량미와 화살을 조달하는 병참에서도 탁월했다. 국경인 의주까지 피난을 갔던 선조는 700명 의승의 호위를 받으며 서울로 귀환했다.

승군의 전공과 투지는 방방곡곡 소문이 났다. “아군의 병사들은 그 수도 적고 군세도 나약하나 오직 승병만은 숫자가 많고 군세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해지고 있다<선조실록>.” “승려들조차 의분을 일으켜 떨치고 일어나 죽음을 맹서하고 왜적을 쳐부수고 있는데 하물며 우리 유생들이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는가<난중잡록>.” 평양성 수복의 선봉장이자 휴전협상에 기여한 사명유정(四溟惟政)도 청허휴정 만큼이나 대단했다. 

이밖에도 금산성 전투에서 순국하며 왜군의 호남 진출을 막은 기허영규(騎虛靈圭), 행주대첩의 영웅인 뇌묵처영(雷默處英), 황해도에서 거병한 의엄(義嚴) 역시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어느 고장에서 얼마나 봉기했는지는 아직도 발굴하고 있는 상황이다.

승병 총지휘했던 서산대사의 ‘대승보살도’

대흥사 서산대재 국가제향 승격도 필요

특히 승병을 총지휘했던 서산대사의 행보는 ‘대승보살도’의 표본으로 평가받는다. 전쟁 발발 이전 조선 최대의 사화(士禍)였던 정여립 역모사건(기축옥사)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쓰고 옥고를 치렀다. 선불교의 고전으로 상찬되는 저작인 <선가귀감>이 사대부들에 의해 눈앞에서 불태워지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국가권력에 누구보다 깊은 원한을 가질 법한 이력이지만, 백성이 위기에 처하자 사직을 위해 맨 먼저 몸을 던졌다. 

“싸울 수 있는 승려들은 자신이 직접 이끌어 전투에 참여하고, 늙고 아파서 못 싸우는 승려들은 절에서 기도하도록 하겠나이다.” 도총섭 임명 교지를 받고 국왕이었던 선조에게 올린 장계의 일부다(조계종사, 조계종 교육원 편찬). 그때 스님의 나이는 73세였다.

서산대사가 주석했던 제22교구본사 해남 대흥사는 ‘호국의승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과 함께 일제강점기 이후 명맥이 끊어진 ‘호국대성사 서산대재’의 국가제향 승격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4월 서산대재에는 총무원장 자승스님도 직접 참석해 격려했다. 

대흥사 주지 월우스님은 “사사로운 감정에 연연하지 않고 ‘중생을 향한 자비’라는 명분으로 일치단결했던 승병들의 모습은 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된다”며 “진정한 애국심과 국민통합의 정신을 일깨운다는 취지에서도 ‘호국의승의 날’ 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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