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현재 쌓여 미래가 돼 … 지금을 소중히 여겨야”

정홍섭 동명대 총장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우리는 아무것도 갖고 오지 않았다. 그의 운명 또한 가혹하리만큼 그에게 쥐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에 품은 빛이 있었기에 좌절하지 않고 선택한 길을 묵묵히 걸었다. 아무것도 행하지 않고 노력을 멈춘다면 그저 같은 자리에 머물 뿐이라고 생각했다. 꿋꿋하게 한 길을 걸어 마침내 그만의 연꽃을 피워낸 정홍섭 동명대 총장을 지난 15일 만났다.

초야에 묻혀 조용히 수행하며 살아가던 정홍섭 총장이 동명대 총장직을 맡게 된 것은 지난 1일부터였다. 동명대에서 총장으로 와달라고 요청했을 땐 교육 일선에서 물러나 조용한 삶을 살기로 다짐했기에 거절했다. 그러나 불교대학은 아니지만 창립자의 유훈에 따라 불교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동명대가 마치 부처님과의 인연이라고 생각되었다.

“일선에서 물러났던 제가 다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어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인연을 따르자고 결심했으니 리더의 덕목에 대해 다시 고민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오래 가졌습니다. 리더란 자기중심을 바로 세우고 모든 이와 평등하게 소통하며 직관적인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정 총장은 동명대가 산학협력 거점대학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취업에만 치중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 올바른 인재를 키워내려면 능력에 비례한 인성·감성교육이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이 정 총장의 지론이다. 동명대에는 불교 명상 수행으로 내면에서 삶의 가치를 찾고 마음을 다스려 시대와 소통하는 정서적 힘을 기르도록 돕는 세계선센터가 있기에 가능하다.

정 총장은 선센터의 명상 프로그램은 재학생과 일반인들에게 많이 이용되고 있지만 불교문화컨텐츠학과의 신입생이 줄어드는 것을 불자로서 아쉬운 부분으로 꼽았다. 불교를 전공하면 취업이 힘들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이라고 판단해 관심 있는 불교단체를 소개하거나 다양한 불교 컨텐츠를 만들고 활동을 늘여갈 계획을 전했다. 불교뿐 아니라 학과 전반에 걸쳐 일상의 버거움에 눌려 자신의 꿈이 어느 방향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정 총장은 여러 대안을 마련 중이다.

“학생들에게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으라는 말은 와 닿지 않겠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들에게 격려를 보내고 싶습니다. 지나간 과거가 쌓여 현재가 되고 미래가 만들어지니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인생에 수많은 길에는 표지판이 없죠. 처음으로 걷는 나만의 길이기에 헤맬 수 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응원을 하고 싶습니다.”

이 길 모퉁이를 돌면 어떤 풍경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인생의 길은 매번 다른 풍경과 새로운 길을 만나며 변화와 역전이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여행이다.

교직 꿈꾸며 공사장 돌던 소년

교사 거쳐 대학총장까지 올라

지식경험 필요한 곳에서 봉사

세계선센터 통해 불교명상 수행

마음 다스려 소통하는 힘 길러

인성감성 갖춘 '바른 인재' 육성

취업 힘들 것이란 선입견 불식

불교문화컨텐츠학과 사기 진작

불교단체 연계... 활로 모색할 것

경주 변두리 마을에서 칠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정 총장의 인생길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입 하나라도 덜고자 열여섯 나이에 객지에 올라 온갖 허드렛일을 겪었지만 비관적이지 않았다. 운명을 부정하지 않고 삶을 사랑했으며 가혹한 굴레를 벗고나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용기를 내었다.

“스스로 좌절하지 않는 한 어떤 얄궂은 운명이나 조건도 나를 망치지 못합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그대의 삶이 아무리 보잘 것 없더라도 그것과 맞서서 살도록 하라. 삶을 회피한다든지 고약한 이름으로 욕하지 마라. 그대의 삶은 그대의 생각만큼 그렇게 엉망이지 않다. 그대의 삶이 아무리 보잘 것 없더라도 그것을 사랑하라’는 말을 늘 가슴에 새기고 다닙니다. 저는 저의 삶을 사랑했고 누구보다 당당하게 살아왔습니다.”

누구보다 뜨거웠던 삶이라며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 당당한 자부심이 서려있다. 늘 밝은 그에게도 잊지 못할 고난은 존재했다. 대학입시를 위해 다니던 방직공장을 그만두고 근근이 모은 돈으로 생활할 때였다. 입시가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모아놓은 돈이 떨어져 사흘을 내리 굶었다. 시험을 마치고 나와 마주한 하늘이 온통 노랗게 변했다. 배고팠던 시절의 굶주림은 정 총장의 뇌리에 깊이 남아 그 누구도 배고픔만은 겪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기회가 닿을 때마다 결식아동돕기나 북한동포돕기, 유니세프운동을 꾸준히 해왔다. 또한 지난 19일엔 학교법인 동명문화학원 건학 40주년을 기념하고 1학기 기말고사를 맞아 천 원짜리 점심을 제공하는 등 소소한 격려를 전했다.

청운의 꿈을 안고 들어간 대학에서 만난 불교는 정 총장의 인생에 또 다른 길을 제시했다. 철학으로 접했던 불교를 이해하고 싶어 경전도 읽고 법문을 들으러 다녔다.

“고향이 경주여서 불교문화는 익숙하게 접했지만 불교의 가르침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우연히 접한 경전의 구절이 눈길을 이끌었고 불교의 인연법이 마음 깊이 와 닿았습니다. 인연 따라 만들어지고 소멸하는 법칙에 따라 분별과 집착을 버리라는 가르침이 저에겐 커다란 조언이었죠.”

불교를 만난 후 그의 마음은 천천히 변해갔다. 평정심을 유지하며 흔들림 없는 평온한 상태로 지내다 보니 일이 잘못되어도 짜증이 나지 않고 잘돼도 크게 기뻐하는 일 없이 담담해질 수 있다. 누군가는 재미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조직을 이끄는 리더라면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정 총장은 늘 바쁘게 사느라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기 힘든 청춘들에게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을 추천했다. 행복과 불행이 끊임없이 번갈아 찾아와도 당당하게 맞서 이겨내고 녹여내 삶의 주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10개의 금언이 담긴 내용은 종교를 떠나 누구에게나 좋은 교훈을 줄 수 있다.

“바라지 말고 원하지 말라는 보왕삼매론의 내용이 얼핏 억울하게 다가올 수도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담담해져야 바른 판단을 하고 현명해 질 수 있고 어떤 역경이 다가와도 좌절하지 않고 삶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비워내야 채울 수 있듯 욕심과 집착을 버려야 새로운 기회도 다가옵니다.”

지금 정 총장에게 불교는 생활이자 삶 그 자체다. 동명대 총장직을 맡기 전까지 밀양에 위치한 2평 남짓한 토굴에서 수행하고 자연과 살아갔다. 고요한 산 속을 떠났지만 그의 아침은 언제나 참선으로 시작한다. 불교의 가르침 중 그가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알아차림이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로지 현재와 자신에게 집중하는 알아차림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분별과 집착을 비울수록 더 의미 있는 현재를 가득 채울 수 있게 됩니다. 늘 맑은 정신으로 깨어 현재를 바라봐야 지금의 가치를 지킬 수 있습니다.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열여섯 나이에 처음 세상에 나와 공사장을 돌던 어린 소년은 교육의 꿈을 안고 교사가 됐으며 진심어린 조언을 던졌고 어느새 총장의 자리에 올랐다. 스스로 성공했다고 여기거나 사회적 위치로 존재를 부각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삶에 감사했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제게 주어진 운명적 조건에서 이룰 수 있는 최상의 꿈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대학 총장이라는 지위가 제 모든 것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인연이 다하는 날까지 제가 가진 학문적 지식과 교육·행정적 경험이 필요한 곳에 봉사하며, 삶이 더 성장하고 완성되도록 언제나 새로운 날들을 꿈꿀 것입니다.”

수없이 굽이쳐 걸어온 길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 없이 살았기에 성공한 삶이라고 말했다. 인생을 다시 한 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삶은 없다. 역경이 있기에 작은 성공도 기뻐했고 인연을 소중히 했기에 다양한 경험을 이루어 지금의 정홍섭 총장이 있었다.

“주어진 운명과 인연에 감사했고 원망하는 마음 없이 현실에 충실한 나날이었습니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니 행복했고 작은 것에도 감사했죠. 가진 것이 없었기에 두려움 없이 나아갔고 내 것이라는 집착이 없었기에 늘 상대방에게 자비심으로 다가갔습니다. 제 인생관은 늘 변함없을 겁니다.”

정홍섭 총장은 1947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황남초, 경주중, 대구상업고, 경북대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부산대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부산내성중, 부산전자공업고 등에서 교사로도 재직했으며, 신라대 교무처장 기획실장 사범대학장 교육대학원장 등을 거쳤다. 또한 신라대 총장, 부산시 교육위원회 부의장,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장관급), 한국교육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1991년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를 창립하고 공동대표를 맡았고, 1992년 공명선거시민운동연합을 창설해 공명선거운동을 벌이는 등 1990년대 부산의 대표적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

1993년 대통령표창, 2008년 황조근정훈장에 이어 공직자 최고훈장인 청조근정훈장을 2013년에 수상했다.

또한 캄보디아의 교육분야에 대한 공로로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외국인으로서는 최고훈장인 국가재건최고훈장을, 대만불광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한국대학경기연맹 회장을 거쳐 현재 명예회장으로 있으며, 2013년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에서 ‘돌담마을’이라는 전통장류농장을 설립해 산촌 가꾸기에 헌신해왔다.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