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순간 나를 돌이켜보면, 결국 바른 길로 갑니다”

“설사 잘못 가고 있다 하더라도

지향점 제대로 설정하면 된다”

1995년부터 신도시 전법 진력

승가대 교수ㆍ문화재위원 활동

후학양성ㆍ문화재 보존에 정성

“물질만능주의와 가치관이 상실된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고뇌 속에 방황하고 있습니다.” 중앙승가대 교수 정각스님(고양 원각사 주지)은 “험난한 세상을 헤쳐 가는 참된 용기와 실천이 필요하다”면서 “환희와 불퇴전의 용기로 자신의 삶을 일깨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년보다 빨리 찾아온 무더위로 무상(無常)한 계절의 변화를 새삼 알게 된 지난 6월 5일, 고양 원각사에서 정각스님을 만났다.

 

중앙승가대 교수, 문화재위원으로도 활동하는 정각스님은 후학 양성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불자들에게 바른 불교관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교직자이자 수행자이다. 신재호 기자

정각스님은 “수행은 특별한 게 아니다”면서 “하루하루 할 일을 얼마나 성실하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수행론의 일반적인 이야기라고 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무디어진 삶의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스님은 산길을 걷는 것으로 수행을 표현했다. “등산 전문가들은 어느 길로 가면 어긋나지 않고 갈 수 있는지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길을 가본 사람이 길을 자연스럽게 아는 것처럼 수행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오직 사냥꾼만이 숲속 오솔길(holzwege)을 알고 있다.” 정각스님은 20세기 후반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인 하이데거(M. Heidegger)가 그의 저술에서 자주 언급한 18세기 독일 시인 횔덜린(F. Hölderlin)의 글을 인용하며 수행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냥꾼들은 매 순간 순간 노루와 토끼들이 어디에 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마음을 늘 그쪽에 두고 있습니다. 어느 때나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수행이 아닐까요.” 간화선, 위빠사나, 염불, 사경 등 다양한 수행법들도 결국은 ‘진리를 찾는 사냥꾼의 마음’을 알아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각스님은 “길을 가본 사람들만이 길을 안다”고 했다. “누군가 숲속 길을 이야기 할 때, 사냥꾼은 그가 어느 노정(路程)에 있는지 안다”면서 “길을 자주 오간 이들은 아직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도 저절로 알게 된다”고 했다. 출가수행자의 길을 걸으면서 “그 길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의상스님은 법성게(法性偈) 가운데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이란 어구를 말했을 것이다”고 했다.

“횔덜린의 시처럼, 사냥꾼만이 오솔길을 아는 것처럼, 수행하고 정진한 이들만이 그 길을 알 수 있다”고 강조한 정각스님은 “그렇기에 선사들은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학을 만나게 되면, 한두 마디 말을 듣기만 해도 어느 경지에 도달했는지 알게 된다”고 덧붙였다. 시냇물을 건너려고 징검다리를 밟을 때 몇 번째 돌다리가 바로 놓여 있는지, 잘못 놓여 있는지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시냇물을 건너다 잘못하면 물에 빠질 수 있는데, 길을 오간 사냥꾼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이치와 같다.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불가와 인연을 맺은 것은 숙연이었을 것이다.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 미학(美學)을 전공하려고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특히 부친이 가톨릭 신부의 길을 걷기를 원하면서 고민 끝에 집을 나왔다. 이때 우연히 읽은 헤르만헤세의 <유리알 유희>에서 정화와 탈세속의 세계, 카스탈리엔(Kastalien)을 알게 되면서 동양적인 사유에 관심을 갖게 됐다. “카스탈리엔과 같은 세계에 살고 싶은데, 그곳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니 절이라는 공간에서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류시화, 이호준, 이준호 등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며 동양 정신세계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결국 출가를 고민했다. 친구 류시화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비롯해 법정스님 법문과 잠언을 엮은 〈산에는 꽃이 피네〉 등을 펴낸 명상시인이다.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이호준은 마하리쉬의 책 <나는 누구인가?>를 번역하고 스님보다 한해 뒤에 송광사로 출가한 지산스님으로 2010년 4월 입적했다. 이준호는 <정신세계> 편집장을 지내는 등 지인들이 동양정신 세계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한 인연들이 저의 성향과 맞물려 자연스럽게 절을 찾게 되었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출가 전까지 절에 간 것은 중고교 시절 수학여행 때 딱 2번 뿐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우리가 전생에 해인사 도반이었다나요?…”

송광사로 출가하기 전의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 카스탈리엔이란 장소를 동양적 사유의 장소인 절에서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갖고 지내던 어느날, 택시를 타고 “가까운 절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기사가 내려준 곳은 서울 안암동 개운사였다. 당시 개운사에는 중앙승가대학이 있었고, 1980년대 시대적 여건 때문에 스님들이 시국상황에 참여할 때이다. 그곳 길에서 만난 스님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청해 대화했다. 당시 출가 이전의 정각스님은 청색 계통의 정장을 주로 입었는데, 승가대 스님들이 ‘안기부 직원’으로 오해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정인스님의 권유로 송광사로 출가해 현문스님 상좌가 되었다.

송광사에 입산한 스님은 “전혀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면서 “전생에 숙연이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출가 초기에 스님은 진언 염송을 했다. “습관적으로 진언을 외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꿈에서도 진언을 외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정각스님은 “정토신앙에서는 임종할 때 아미타불을 열 번 외우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한다”며 “임종시에도 염불을 할 수 있는 것은, 매순간 자기를 알아가고, 순간순간 돌이켜 볼 수 있는 힘(수행)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결국 ‘지향점의 문제’라는 것이 스님 입장이다. 돈을 벌려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돈이 가득 차 있고, 권력이나 명예를 탐하는 이들은 그것으로 꽉 차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순간순간 자신을 돌아보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정각스님은 강조했다.

정각스님은 <중아함경(中阿含經>의 지분경(支分經) <지재경(持齋經)>에서 설명하는 재계(齋戒) 가운데 목우재(牧牛齋), 니건재(尼健齋), 불법재(佛法齋)를 예로 들며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목우재는 세속의 이득을 중시하고, 니건재는 말과 생각은 하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에 비해 불법재는 언제나 부처님, 가르침, 계율 등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부처님을 언제나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긋나지 않습니다. 특히 수행과 같은 의미를 갖는 계율이 중요한데, 매순간 자기 자신을 돌이켜 보고 관(觀)하면 어긋난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설사 잘못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향점을 제대로 설정하고 있으면 언젠가 바른 길로 가게 됩니다.”

정각스님은 “나무가 비록 구불구불하게 자라도 결국은 저절로 펴진다”면서 “그렇게 펴질 수 있는 힘은 바로 지향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선근(善根)의 힘입니다. 숙연에 의해 지향점이 뿌리 내렸기 때문이죠. 그러나 누구에게나 지향점이 바르거나 확고한 것은 아닙니다. 시작 지점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도 근원적으로는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숙연이나 업으로 야기 되는, 이전의 원인에 의해 현생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서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거나 전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의 나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업은 원력(願力)으로 전환시킬 수 있습니다. 원력으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은 물론 현생의 방향도 전환시키고 미래도 바꿀 수 있습니다. 현재와 더불어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원력입니다.”

정각스님이 신도시에서 불법을 전한 것이 1999년 5월부터이니, 강산이 두 번이 바뀌는 세월이 흘렀다. 원각사가 자리한 곳은 불교와 인연이 깊다. 새 주소는 고양시 일산동구 동국로 137-48, 옛 주소는 일산동구 식사동 729-13이다. 동국로(東國路)는 종립학교인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식사동(食寺洞)은 고려말 공양왕이 자객을 피해 절에서 밥을 얻어 먹었다는 설화에서 유래했다. 600년이 넘는 세월이지만 자비행을 공통으로 간직한 불연이 깊은 땅에 원각사가 자리했으니 이 또한 숙연(宿緣)이다.

“조계총림 송광사 일산분원인 원각사는 부처님 가르침이 ‘나’로부터 시작되어 가족과 이웃, 나아가 큰 사회로 이어져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불자들이 함께 하는 곳입니다.”

* 정각스님은

조계총림 송광사에서 현문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87년 송광사에서 보성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90년 범어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1991년 통도사 강원을 졸업한 후 법주사 포교국장, 중앙승가대 불전국역연구원 간사, 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 연구위원을 역임했다.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박사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원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4년 범어사에서 무비스님을 법사로 모시고 전강했다. 동국대 겸임교수, 중앙대 객원교수를 거쳤다. 경상북도 전통사찰보존위원, 경상북도 문화재위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조계종 교수아사리를 지냈다. 현재 중앙승가대 교수, 고양 원각사 주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매장문화재분과위원회), 일산서부경찰서 경승위원장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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