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이 풍부한데도 쓰지 않으면 

그를 어리석은 사람이라 하듯이 

낭비 줄이고 최소화 단순화하되 

소중한 것엔 집중할 수 있어야… 

불교는 중도를 추구하는 종교다. 오늘날 우리의 눈으로 보면 스님의 생활은 참으로 금욕적이고 극단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처님 당시 인도 수행자들의 문화에 비추어보면 불교 출가자의 생활은 결코 금욕적이 아니었다. 바라문교와 자이나교 교도들은 불교 출가자의 생활을 사치스럽다고 비판했다. 부처님의 사촌이었던 제바달다가 부처님에게 당시 수행자들의 삶의 표본에 가까운 금욕적인 계율을 주장하자 부처님은 이를 거부한다. 제바달다는 불교교단 내의 추종자들을 데리고 이탈해 새로운 교단을 세우는데 현장 법사가 천년이나 뒤에 인도를 방문했을 때도 제바달다의 추종자들이 상당한 교세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불교 경전에 나타난 중도는 여러 가지 개념으로 설해져 있다. 가장 유명한 비유는 거문고 줄의 비유이다. 거문고의 줄이 너무 팽팽하면 끊어지고 지나치게 느슨하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소비를 중도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소비가 중도적 소비일까? <별역잡아함경>은 “사치하지도 검박하지도 않고 그 중도를 취하느니라”고 설한다. <잡아함경>은 “또 어떤 착한 남자는 재물이 풍부하면서도 그것을 쓰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를 어리석은 사람이요 굶어 죽는 개(餓死狗)와 같다고 한다”고 설한다. 부처님은 사치스러운 것도 경고하지만 인색한 것도 경고한다. 지나치게 사치해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인색해도 문제라면 중간 정도에서 소비하면 될까? 물론 적절한 소비가 중도적이지만 중도는 꼭 이런 모습으로 실현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소비를 중간이나 평균값이라고 고집하는 것 또한 극단이며 중도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적절한 소비가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불교는 획일적인 기준에 의해 판단하는 경직성을 배격하므로 매 사안에 대해서 여러 가지 요인, 조건을 고려해 중도를 판단해야 한다.

가장 싼 물건이 1만원짜리고 가장 비싼 물건이 7만원짜리라고 하자. 1 더하기 7은 8이고 8을 2로 나누면 4이므로 4만원짜리를 구입해야 중도적 소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중도를 판단하는 것은 결코 불교적인 자세가 아니다. 어떨 때는 4만원도 중도적 소비가 아닐 수 있다. 어떨 때는 2만원짜리가 중도적 소비일 수도 있으며 5만원짜리가 중도적 소비일 수도 있다. 중도를 수학적 개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요인, 조건을 놓고 종합적으로 판단하되 그 결론도 일시적인 중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아는 어떤 교수는 자동차, 집, 의복 등 모든 면에서 소박한 삶을 산다. 예외적으로 노트북은 최고급 명품을 고집한다. 무엇보다도 내가 보기엔 지나치게 많은 노트북을 가지고 있다. 새 모델이 나오면 가장 일찍 사는 얼리 어답터이기도 하다. 그를 중도적 소비에서 벗어났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중도적 소비인가 아닌가는 개별적으로도 판단해야 하지만 전체적으로도 판단해야 한다. 100개의 소비 중 99개가 중도적 지출이었는데 1개가 사치스러웠다고 그를 소비중독이라고 말할 수 없듯이 중도적 소비의 판단도 마찬가지이다. 마찬가지로 100개의 소비 중 99개가 중도적 지출이었는데 1개가 인색했다고 해서 그가 중도적 소비에서 이탈했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디자인의 세계에서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젠 스타일(zen style)이라고 부른다. 불교에서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불교적이라고 생각하고 이름 붙인 것이다. 젠 스타일은 ‘최소 표현주의’ 혹은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라고도 한다. 모든 것을 최소화하고 단순화하는데서 아름다움을 찾는 자세는 불교의 중도적 자세와 일치한다. 과거에는 호화롭고 현란한 디자인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했는데 언젠가 서민들이 사용하던 투박한 그릇이나 초가집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단순 소박한 삶은 불교적 관점에서 중도적 삶과 맥을 같이 한다. 군더더기를 완전히 없애고 삶의 핵심만을 남겨 두어야 우리가 진정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 아이폰의 홈 버튼마저도 없애려고 했던 스티브 잡스의 사례처럼 우리 인생에서도 군더더기를 없애고 행복에 집중해보자. 삶에 덕지덕지 불필요한 것들이 달라붙어 있으면 우리의 에너지는 한 곳으로 모아지지 못하고 불필요한 것에 낭비된다. 예술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삶에서도 불교적인 미니멀리즘으로 모든 것을 최소화하고 단순화하자. 이것이 중도다.

[불교신문3310호/2017년7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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