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궁리 끝에 정원 돌 하나를 다른 위치로 옮겼다. 몇 해 전 처음 놓았을 때는 그 자리가 마음에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 이번에 바꾸어 놓은 것이다. 다시 정리하고 보니 지금의 자리가 더 어울린다는 평가를 들었다. 사람의 안목이나 소견은 그 때 그 때 다른 것이라서 과거의 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더러 있다. 이런 시행착오 때문에 그동안 정원의 돌과 나무들이 많이 옮겨 다녔다. 

인생의 여정에서 어제 한 일이 오늘 틀릴 수 있고 오늘 한 일이 오히려 맞을 수 있다. 애당초 자신의 결정은 절반은 틀릴 수 있다는 가정(假定)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늘 정답일 수 없다는 뜻. 그러므로 자기 관점이나 주장이 정확하다고 고집할 일이 아니다. 영화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맞다’는 제목이 있는데 무척 마음에 드는 표현이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돌아보면 과거의 그 결정이 맞고 지금의 결정이 틀릴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인생은 틀리고 넘어지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인생의 경험과 공부로 축척되었다면 착오와 실수는 큰 손해가 아닐 수도 있다.

일전에 해남 대흥사를 방문했다가 추사 선생의 일화를 듣게 됐다. 추사 선생이 제주도로 유배 가던 길에 대흥사에 들러 초의선사와 차를 나누다가 이광사의 글씨를 보고 형편없는 현판이라고 악평을 한 뒤 그 자리에서 자신이 ‘대웅보전’이라 써서 바꾸어 걸게 했다고 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유배가 풀려 상경하던 추사가 대흥사로 발걸음 하여 자신의 현판을 내리고 이광사 선생의 글씨를 다시 걸게 하면서 명필을 알아보지 못했던 교만을 반성했다. 이 일을 계기로 추사 선생은 일생동안 자신의 작품을 세 차례 수거해 불태웠다는 기록을 읽은 적이 있다.

위인들도 그 때는 완벽하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틀렸으므로 바로 잡은 것이다. 거듭 말하자면 어제의 정답이 오늘은 아닐 수 있다. 또한 오늘은 틀렸지만 내일은 그것이 맞을 수 있는 게 삶이다. 누구나 잘못하고 실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은 인정하고 다시 고쳐 쓰는 일이다. 청주 마야사 주지

[불교신문3310호/2017년7월1일자] 

현진스님 청주 마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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