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아오자이는 

전통을 바탕으로 

1930년대에 프랑스의 디자인이 

가미돼 재구성된 복장이다

조계종의 승복 역시 

이런 아오자이와 같은 

전통에 입각한 멋스러운 승화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래야만 승려들의 자부심 

승단에 대한 동경심이 

고취될 것이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의 기후적인 특징을 4계절이 뚜렷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봄·가을은 스치듯 사라지는 기후로 바뀐 지 오래이다. 때문에 여름의 문턱부터 스님들은 더위에 따른 말 못할 고통을 겪게 된다. 긴팔 적삼을 입고 그 위에 두루마기까지 입고 있을라치면,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혹자는 시원한 삼베나 모시로 승복을 해 입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고가에 손질을 많이 요하는 옷을 입는다는 건 일반 스님들로서는 쉽지 않다.

사실 승복은 불교적인 전통복장이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불교복장은 가사(袈裟)이며, 이는 한국불교에서는 일상복이 아닌 의식복으로만 사용된다. 이런 점에서 승복을 현대화하고 개량하는 것은 전혀 불교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혹자는 승복이 한국불교의 전통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승복의 적삼과 동방은 한복이 회색으로 바뀐 것일 뿐이다. 또 두루마기는 흥선대원군이 청나라에서 들여와 일반화시킨 호복(胡服), 즉 오랑캐 복장으로 한국적인 연원조차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단체복은 소속집단을 구분하는 가치인 동시에 그 집단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승복은 불편함은 차치하고라도 이렇다 할 맵시조차 나지 않는다. 어떤 이는 한복의 곡선적인 아름다움을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곡선의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것이, 바로 입고 있는 사람을 짧게 보이도록 한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즉, 제복을 입는 사람들에게 조차 자부심을 주지 못하는 것이 바로 승복인 셈이다. 여기에 승복은 한복의 특성상 불편하고 터무니없는 고가라는 점에서 부담까지 된다.

붓다는 당시 인도 수행자들이 ‘분소의’를 착용할 때, 이것이 도시의 변화된 가치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간파하고 할절의(割截衣)로 바꾸는 복제개혁을 단행한다. 할절의는 오늘날까지 유지되는 전통가사의 원형이 된다. 할절의의 변화는 당시의 시대변화를 수용한 능동적인 것인 동시에, 불교의 승려들이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특색이자 자부심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이런 정신이 현대의 우리에게는 퇴색돼 있는 것이다.

또 조계종을 제외한 한국불교의 상당수 종단들은 결혼을 하고 육식과 삭발을 임의에 맡기기도 한다. 이는 동일한 승복을 착용했을 때, 이분들과 조계종 승려들이 구분되지 않으면서 자칫 오해받기 쉬운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런 문제와 연관해서, 조계종에서는 종단 가사를 특수화하고 ‘가사원’을 설치해 통일된 제작과 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조계종의 승복 역시 타종단과 구분되며, 전통을 살린 세련된 디자인과 불교적이 상징을 내포하는 측면으로 바뀌어 저렴하게 보급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합리적인 변화 및 승려들의 부담과 종단의 재정확충 모두에서 불교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베트남하면 떠오르는 여성복장인 아오자이는 전통을 바탕으로 1930년대에 프랑스의 디자인이 가미돼 재구성된 복장이다. 조계종의 승복 역시 이런 아오자이와 같은 전통에 입각한 멋스러운 승화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래야만 승려들의 자부심이 고취되고 다른 사람들의 승단에 대한 동경심이 고취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승복의 개혁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인 과제라고 하겠다.

[불교신문3309호/2017년6월28일자] 

자현스님 논설위원·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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