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한 고양이밥인 줄은 

모르겠으나 오징어채를 

느릅나무 물푸레나무 

뒤편으로 조금씩 뿌려두었다 

‘나비야, 어딨니? 미안해!’

세상엔 비겁한 거짓말쟁이가 

있는가 하면 보살도 있다 

생긴 지 얼마나 된 말일까 

캣맘, 캣대디…

마치 누굴 기다리기라도 하듯 고양이는 양재천변 산책로 가운데쯤 앉아 있었다. 꼭 다문 입술, 호동그란 눈으로 미동도 없이 웅크려 앉은 채 오가는 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콧잔등부터 목덜미와 아랫배에서 넓적다리 안쪽까지 난 하얀 털이 깨끗해 보였다. 눈과 귀로부터 잔등에서 뒷발까지 익은 벼이삭 같은 털빛을 하고 있었다. 길고양이다. 

한때 ‘도둑고양이’로 불리기도 한 길고양이는 살던 집을 나왔거나 쫓겨났거나 버림받아 집을 잃고 길 위에서 사는 고양이다. 집이 없다는 것은 세상천지가 다 제 집이라는 말도 되지만 버림받았다면 고양이에겐 슬픔이다. 같이 살자고 손걸어놓고 이제 와서 나가라니. 그래도 저 눈빛은 무언가를 찾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빛이다. 

한참을 앉아있던 고양이 눈이 스르르 감기는 듯 했다. 그때 날짐승의 기척이 났다. 고양이는 느릅나무 쪽으로 가서 잎이 흐드러져 보이지 않는 소리를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고양이는 느릅나무 쪽을 향해 앉아있었던 거였다. 왜 그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걸까. 느릅나무 위의 날짐승과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혹시 까치가 갓 낳은 새끼라도 해친 걸까. 문득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어 다가가 허리를 굽히고 “나비야˜”하고 몇 번 불러주었다. 다만, 내가 고양이를 불러왔던 방식으로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불러줬을 뿐인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다가와 구부려 앉은 내 등 뒤로 가 엉덩이에 바싹 붙어 앉는 거였다. 살가운 손길이 그리웠을까, 정감어린 목소리가 그리웠을까. 고양이에게 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미안해 줄 게 아무것도 없네. 나비야, 다음에 올 때 맛있는 거 가져올 게. 또 만나자”하면서 살그머니 자리를 떴다. 사실, 저를 정말 좋아하는 줄 알고 고양이가 따라오면 어쩌나 은근히 겁이 나기도 했던 거다. 그날 이후 나는 비겁한 사람이 되었다. 

다음날 저녁 비슷한 시간. 그 자리에서 또 그 고양이를 만났다. 아, 다음에 올 때 맛있는 거 가져온다는 약속을 해놓고 이렇게 또 만날 생각은 안 하고 있었던 거다. 비겁한 거짓말쟁이. 고양이에게 아는 체 할 수 없었다. 때마침 아가씨 손에 이끌려 나온 말티즈가 고양이 앞을 지나며 겁도 없이 짖었다. 등허리와 꼬리를 한껏 곧추세우고 전투자세로 돌입한 고양이를 보고도 계속 짖어댔다. 아가씨는 말티즈를 반짝 안고 비켜갔다. 상처 받았을까. 고양이는 산책로 아래 물가 쪽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나는 아는 체를 못하고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약속은/ 허물기 위해 짓는 집/ 가끔은/ 그렇지.”(졸시 ‘집’) 그래도 그렇지. 고양이에게까지 그럴 수 있나. 비겁한 사람. 그러면 약속이라도 지켜라. 배낭에 잘게 자른 오징어채를 넣어가지고 이튿날 그 무렵 그 자리로 갔다. 고양이는 없었다. 산책시간 내내 그 주변을 맴돌았다. 하는 수 없이, 마땅한 고양이밥인 줄은 모르겠으나 오징어채를 느릅나무 귀룽나무 물푸레나무 뒤편으로 조금씩 뿌려두었다. ‘나비야, 어딨니? 미안해!’

세상엔 비겁한 거짓말쟁이가 있는가 하면 보살도 있다. 생긴 지 얼마나 된 말일까. 캣맘, 캣대디. 한국고양이보호협회. 길고양이보호협회.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잘 곳을 마련해 줄 뿐만 아니라, ‘중성화 사업’을 통해 사람과 길고양이의 행복한 동행을 도모하고 실천하는 이웃의 보살행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불교신문3309호/2017년6월28일자] 

홍성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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