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전에 비로자나여래를 모신 까닭은

 

조선 후기 비로자나삼신불 ‘유명’ 

불전, 불상, 후불도 모두 보물 ‘유일’ 

‘노사나여래 조각’ 모신 드문 사례 

화엄사 대웅전은 전각명과 주존이 다른 예외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대웅전의 비로자나삼신불상과 불패. 왼쪽부터 석가여래, 비로자나여래, 노사나여래.

완주 송광사에서 진행하는 ‘폐허 속에 핀 연꽃, 벽암각성 스님이 중건한 불교 문화재 여행’이라는 문화재청 사찰문화재 활용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를 진행하기 위해 지난 주말 구례 화엄사를 방문했다. 몸이 불편한 이들과 함께 한 6월 여름의 화엄사 순례길은 그곳의 성보박물관에서 옛 인연을 20여 년 만에 만나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도 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지리산과 금강산 여행을 즐겨했고 여행 후에는 ‘유람기(遊覽記)’를 남겼다. 조선 초 생육신 가운데 한 명인 남효온(1454~1492)은 인물됨이 고상해 스승인 김종직도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우리 추강’이라고 그의 호를 부를 만큼 존경했다고 전한다. 그가 지리산을 유람하고 「지리산 일과」라는 글을 남겼는데, 화엄사를 방문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화엄사는 이름난 연기스님이 창건한 절이다. 절 뒤에 금당이 있고, 금당 뒤에 탑전(塔殿)이 있는데, 전각이 몹시 밝고 산뜻했다. 뜰 가운데에 석탑이 있었다. 탑의 네 모퉁이에 탑을 떠받치는 네 기둥이 있고, 또 부인이 중간에 서서 정수리로 떠받치는 형상이 있다. 스님께서 말하기를 ‘이것은 비구니가 된 연기의 어머니입니다’ 했다. 그 앞에 또 작은 탑이 있었다. 탑의 네 모퉁이에 또한 탑을 떠받치는 네 기둥이 있고, 또한 남자가 중간에 서서 정수리로 떠받치며 탑을 이고 있는 부인을 우러러 향하고 있는 형상이 있다. 이 분이 연기스님이다.”

추강 남효온이 언급한 화엄사 4사자3층석탑과 석등은 화엄사의 명물 가운데 하나이다. 남효온은 탑 속 인물을 연기스님의 어머니로, 석등 속 스님을 아들 연기스님으로 이해했다. 효를 강조했던 조선시대 성리학자의 눈에는 당연히 어머니께 공양올리는 아들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탑 안의 인물은 부처님이고 석등 속 스님은 부처님께 공양올리는 연기스님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전라도 구례현 ‘불우(佛宇)’에도 “화엄사는 지리산 산록에 있다. 불전이 하나 있는데 네 벽에 흙을 바르지 아니한 청벽(靑壁)으로 그 위에 화엄경을 새겼는데, 세월이 오래되니 벽이 무너지고 문자는 희미해져 읽을 수가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듯이 화엄경을 돌에 새겨놓은 석경(石經)이 유명하다. 아쉽게도 임진왜란 때 불전이 불타면서 석경 역시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전남 구례에 위치한 지리산 화엄사는 통일신라시대 창건된 화엄종 사찰로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지리산 자락의 수많은 사찰 중 하동 쌍계사와 함께 조선시대 벽암 각성스님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다. 그는 1630년에 화엄사 중건을 시작해 7년만인 1636년에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건물을 완성했다.

화엄사 중심 법당이 있는 대웅전 구역으로 들어가는 관문은 여러 겹이다. 먼저 ‘지리산 화엄사(智異山 華嚴寺)’ 현판이 있는 일주문을 지나면, 문지기인 금강역사를 모신 금강문을 만나게 된다. 고개를 들어 정면으로 전진하면 두 눈을 부릅뜬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이 떡 버티고 있으며, 그곳을 지나면 만세루가 시원스럽게 대웅전을 바라보고 있다. 만세루에서 바라보면 동서 5층석탑 뒤로 높다란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그 위에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 오른편에는 국내에서 가장 큰 통일신라시대의 석등과 조선 후기에 건축된 각황전이 자리잡고 있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의 주인공은 대웅인 석가여래 대신에 법신을 상징하는 비로자나여래가 보신(報身)인 노사나여래와 화신(化身)인 석가여래와 함께 모셔져 있다. 삼신불이라 일컬어지는 세 분의 부처님은 화엄사가 통일신라시대부터 내려온 화엄종 사찰이었음을 상징하며, 대웅전 건물은 조선 후기 의승군의 수장이었던 벽암각성 스님과 깊은 연관이 있다. 세 분의 부처님 뒤에는 1757년에 그린 3폭의 후불도가 있고 불상 앞에는 이름을 기록한 이름표 즉 불패(佛牌)가 놓여 있다.

조선 인조가 벽암각성스님에게 내린 교지와 가사(부분)(왼쪽 위 아래). 승탑(오른쪽)

대웅전 건물은 보물 제299호, 후불도인 삼신불탱화는 보물 1363호, 예배상인 비로자나삼신불상은 보물 1548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처님께서 머무르는 불전과 예배대상인 불상과 부처님을 장엄하는 후불도가 모두 보물로 지정된 국내 유일의 귀중한 예이다. 

대웅전의 본존불인 비로자나여래는 <화엄경>의 주불로 진리 그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에 진신(眞身) 또는 법신(法身)이라 부른다. ‘바이로차나(Vairocana)’는 부처님의 광명이 어디에나 비춘다는 의미인데 ‘비로자나’로 번역되었다. 이 부처님은 대광명전(大光明殿)·대적광전(大寂光殿)·비로전(毘盧殿) 등에 모셔진다. 비로자나삼존상일 경우는 좌우 협시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배치되며, 비로자나삼신불일 경우는 좌우로 노사나여래와 석가여래가 배치된다. 화엄사 대웅전은 후자의 경우이다.

화엄사 대웅전은 석가여래 대신 비로자나여래를 주존으로 봉안했기 때문에, 건물명과 건물주가 다른 예외적인 상황이다. 그 이유는 선조의 아들 의창군 광(1589~1645)이 현판을 써서 내렸기 때문이다. 의창군은 벽암각성 스님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는데 각성스님이 중창한 완주 송광사의 대웅전 현판도 그의 글씨이다. 또한 조계종의 총본산격인 서울 조계사 대웅전 현판 글씨 역시 1938년에 화엄사 대웅전 현판을 그대로 베껴서 쓴 것이다.

1636년에 조성된 화엄사 대웅전의 비로자나삼신불상은 조선 후기 비로자나삼신불상 중 가장 유명한 상이며, 도상면에서 법신 비로자나·보신 노사나·화신 석가여래를 표현한 것으로 보살형의 노사나여래가 모셔진 유일한 예이다. 이같은 삼신불은 불화에서는 많이 보이지만 조각으로는 드문 편이다. 

화엄사 대웅전 비로자나삼신불에서 가장 특이한 도상은 보관을 쓰고 두 손을 가슴께로 들어 설법인을 하고 있는 노사나여래상의 도상이다. 이같은 도상은 조선후기 석가팔상도 가운데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에서 성도 후 첫 설법하는 석가여래, <80화엄경> 변상도인 7처9회도에서 설법하는 비로자나여래를 이같이 표현하고 있다. 화엄사 비로자나삼신불상의 노사나불 도상 기원은 중국 항주 비래봉 마애불상에서 찾을 수 있다.

본존상인 비로자나여래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싸 독특한 수인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권인(拳印)’이라 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 비로자나여래상에서 출현한 것이다. 통일신라 비로자나여래는 왼손 검지를 곧추 세워 오른손으로 감싸는 ‘지권인(智拳印)’를 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표현법이다. 

이 삼불상은 불상조성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화엄사사적기>(1697년 간행)를 통해 조성 연도를 추정할 수 있다. 즉 1636년에 조각승 청헌·영이·인균·응원 등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약했던 17세기의 대표적인 조각승들이 공동으로 제작한 상임을 알 수 있다. 수조각승 청헌(淸憲)은 벽암각성 스님이 주도한 불사에 참여한 대표적인 장인이다. 

청헌스님은 1626년 법주사 비로자나삼불상을 현진스님과 함께 조성한 이후, 1636년 화엄사 대웅전 삼신불상, 1639년 하동 쌍계사 삼세불상과 보살상, 1641년 완주 송광사 삼세불상을 조성했다. 이들 사찰은 벽암각성 스님이 주도적으로 불사를 이끈 곳이어서 두 분이 공동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화엄사 금강문에서 천왕문 가는 길목에는 1663년에 세워진 벽암각성(1575~1660) 스님의 탑비가 거북이 등 위에 건립되어 있다. 탑비에는 그가 화엄사 대웅전이 완공된 1636년에 인조가 청나라의 침입으로 남한산성으로 피난했다는 소식을 듣고 수 천명의 스님들을 모아 항마군(降魔軍)을 조직해서 남한산성으로 달려갔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새로 완공된 성보박물관에는 인조로부터 하사받은 금란가사와 교지가 전시되어 있다. 일주문을 벗어난 화엄사 입구에 벽암각성 스님의 탑을 중심으로 승탑원이 자리잡고 있다. 그의 탑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17세기 이후 벽암각성이 차지하는 위치가 어떠한지를 가늠케 한다. 

[불교신문3309호/2017년6월28일자] 

 

유근자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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