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역사다. 해방 후 새로 세울 국가의 정체성을 둘러싼 논쟁 갈등이 가장 비극적이고 폭력적으로 전개된 사건이 바로 제주 4·3이다. 28만 제주도민 가운데 3만여 명이 희생당하고 수많은 가옥이 불타는 등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섬 전역에서 벌어졌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 정부 차원의 추념이 이루어기까지 정부는 진상규명을 회피하고 ‘좌익 폭도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불가피한 사고’나 ‘좌우 대립 혹은 좌익의 조작 선전’으로 호도해왔다. 정부가 진상규명과 사과를 회피하는 동안 제주도민의 상처는 더 깊어가고 우리 사회의 진정한 통합과 화합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해왔다. 

이제 새 정부 들어 제주 4·3은 진상규명과 함께 그 의미를 되새기는 작업에 나서게 됐다. 내년이면 4·3이 일어난 지 70년을 맞는다. 70주년이 한풀이가 아니라 진정한 화합과 국론 통일을 위한 장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 관련 학계 주민들이 나서는 진상규명이 철저하게 진행돼야 한다. 진상규명 속에는 불교와 사찰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제주와 불교는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오랜 세월 함께 해왔다. 육지와 떨어진 섬인 제주는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와 생활 양식 관습을 형성하고 있다. 거친 자연환경에 맞서 육지 정부의 탄압도 견뎌야했던 제주도민들에게 불교는 신앙적 의지처였다. 제주도민들은 사찰을 찾아 어부들의 무사귀환과 풍어를 기원했다. 제주 산간과 해안가 마을에 들어선 수많은 사찰이 그 증거다.

제주 4·3 당시 사찰과 스님들도 제주도민들과 함께 희생당했다. 지난 16일 열린 ‘제주불교 4·3 진실 규명을 위한 세미나’에서 나온 자료에 따르면 4·3 당시 37개 사찰이 불타거나 강제 철거, 강제 매각 당했으며 16명의 스님이 총살, 수장, 고문 등으로 입적했다. 4·3으로 인해 제주불교는 오랫동안 암흑기를 보내야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불교계 피해 현황 등은 제대로 밝혀진 적이 없다. 정부 차원에서도 불교계 피해를 따로 밝히는 작업을 특정종교라는 잣대를 들이밀며 거부한다. 4·3 당시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사찰이 제주 불교를 대표하는 관음사다. 1970년대 부임했던 스님들이 밤 마다 영가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관음사는 4·3 당시 최대 격전지였다. 4·3의 참혹한 광경과 도민들의 염원을 묵묵히 지켜보며 성쇠를 함께 했던 관음사를 증오와 분열의 역사를 딛고 평화와 화합의 미래로 나아가는 공간으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70년 전 제주도민들이 염원했던 바대로 평화 상생이 넘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주 4·3의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고 희생자 명예회복과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속에는 제주도민들과 함께 하다 목숨을 잃은 스님들과 불에 탄 사찰 등 불교계 피해 규모, 희생자 현황 조사 등도 함께 포함돼야 한다. 불교를 특정종교라는 이유로 배척하는 행위도 중단해야 한다. 

[불교신문3308호/2017년6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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