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을 보고 억지로 참는 것보다 

유혹 당하지 않는 사고와 행위가 

체화된 사람이 진정한 불자일 것…

어떻게 보이는가 신경 쓰지 말고 

수입 범위내 지출하는 습관 중요

오늘날은 소비의 시대, 소비 중독의 시대이다. 이 세상에 쇼핑처럼 즐거운 일이 있을까? 우리는 누구나 자기가 오랫동안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사면 그 즐거움이 얼마나 큰가를 한 두 번은 경험한다. 젊은이들에게 가장 즐거운 일이 무언가 묻는다면 아마 쇼핑과 게임이 아닐까 싶다. 젊은이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1년에 한 번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삶의 엄청난 즐거움이다. ‘올해에는 한 번도 해외여행을 못해봤어’라고 한탄하는 것은 알고 보면 쇼핑을 못했다고 한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해외에 나가면 당연히 면세점이나 현지 가게에서 명품이나 그 지역에서만 살 수 있는 특별한 물건을 사는 쇼핑을 한다. 해외여행 자체도 사실 여행지를 놓고 쇼핑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모두에게 삶이 힘들다보니 스트레스 푸는 것도 쉽지 않다. 직장에서 퇴근하면 2/3 정도는 피곤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몸이 파김치가 돼 퇴근해도 인터넷쇼핑몰에 들어가 이것저것 기웃거리면 눈이 반짝반짝해지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몸이 불편하고 항상 피곤하다는 노인네가 백화점에만 들어가면 몇 시간이고 앉지도 않고 돌아다니는데 피곤하다는 소리 한 마디도 안 한다는 자식의 말은 우리 인간 본연의 모습을 묘사한다. 돈이야말로 인간의 욕망을 가장 제한 없이 마음껏 충족시켜줄 수 있는 수단이기에 돈을 ‘자유로운 권력’이라고 말한다. 더구나 대한민국에서는 돈이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으니 소비야말로 인간 욕망의 극단적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에서 쇼핑 때문에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진 여성이 50%에 육박한다는 조사가 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는 한 달 동안 카드를 긁어 살고 월급 나오면 카드 값 갚고 다시 카드를 긁어 한 달 살고 월급 나오면 갚는 생활을 반복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젊은이가 결혼을 하면 결혼생활에 적응을 못하기도 한다. 부부가 같이 번다고 해도 가정을 위해 적어도 절반의 돈은 내 놓아야 하는데 봉급 전부를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소비하던 버릇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여성이 일하지 않고 전업주부가 되면 봉급의 거의 전부를 가사를 위해 내 놓아야 하는데 이런 극적인 전환을 힘들어하는 신혼 남편이 많다.

<별역잡아함경>을 보면 “바르게 생활함은 어떤 것이냐 하면, 족성자가 그 재물을 살피어 그 많고 적음을 헤아리고 그 재물 쓰는 것을 조절하여 수입이 지출보다 많게 하며 마치 어떤 사람이 우담과일을 따 먹는데 처음 먹을 적에는 나무에 그 과일이 매우 많더니 벌써 많이 먹고 난 후 7일 동안 취해서 자고 있다가 이미 깨어보고야 바야흐로 과일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이 소홀히 쓰지 아니하고 알맞게 잘 처리하며…”라고 설해져 있다. 즉, 수입이 지출보다 많아야 하니 지출은 수입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내가 대학시절에 지방에서 올라 온 친구들이 용돈을 쓰는 패턴은 두 가지 중 하나였다. 부모님이 돈을 보내주면 초기에 몽땅 쓰고 후반부에 돈이 부족해서 쩔쩔매는 친구와 잘 분배해서 한 달 내내 골고루 쓰는 친구였다. 모두다 수입의 범위 내에서 지출했지, 은행에서 융자를 받는다거나 친구에게 돈을 빌리는 경우는 드문 일이었다. 

수입의 범위 내에서 지출하는 습관은 어렸을 때부터 길러 주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서 갖기 어려운 습관이다. 아무리 늦어도 결혼 전에는 가져야할 습관이다. 오늘날 저소득층이 수입의 범위 내에서 지출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중산층은 왜 수입의 범위 내에서 지출하지 못할까? 미국의 조사에 의하면 중산층이 부자들의 소비를 흉내 내다가 경제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나는 우리나라 중산층도 상당수가 과잉소비에 빠져 있다고 본다. 중산층의 소비는 생존을 위해 소비한다기 보다는 생존 이외의 욕망 충족을 위해 쓰여진다. 우리는 옷을 사는 게 아니라 상징과 이미지를 위해 돈을 쓴다. 브랜드는 내가 누구인가를 나타내주는 가장 명료한 신호이다. 따라서 현대인은 브랜드에 목을 맨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신경 쓰지 말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수입의 범위 내에서 지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습관에 의해 이런 행위를 할 수도 있지만 소비의 유혹은 언제 이러한 습관을 무용지물화 할지도 모른다. 불교는 욕망을 억제하는 종교가 아니라 욕망의 근원을 제거하여 욕망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는 종교다. 소비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금욕으로 치달을 것이 아니라 불교수행에 의해 불타는 나의 욕망의 근원을 제거해야 한다. 명품을 보고 억지로 참는 사람이 아니라 명품을 보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사고와 행위가 체화된 사람이 진정한 불자이다.고려대 행정학과

[불교신문3308호/2017년6월24일자] 

윤성식 논설위원·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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