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해 내가 있다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다. 연기적 삶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고 타인과 인연을 맺어 나갈 때 자기발전이 가능하다. 사진출처 = pixabay

인간관계 맺는데 ‘회의’

청년 넘어 전계층 확산

연기적 삶 깊이 인식해야

자기 발전 가능성 커져

최근 한 일간지가 20세에서 29세까지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인간관계와 행복의 관계’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페이스북 친구가 100명 이상 이라고 응답한 이는 약 62%에 달했다. 하지만 진짜 친구는 몇 명이냐는 질문에는 평균 4.99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와함께 과반수가 넘는 55%가 인간관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을 주저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고착되어 있는 현상을 ‘관태기(關怠期)’라고 한다. 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이다. 권태기에 빠진 이들을 관태족(關怠族)이라고 부른다.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고 교유하는 데 회의적인 관태족들은 ‘자발적 아웃사이더’ 또는 ‘나홀로족’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관태족이 등장하는 현상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무엇보다 치열한 경쟁사회의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청년세대들이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하는데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극소수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그치고, 인간관계를 더 이상 확대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관태족이 등장한 원인으로 인간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자기 존재의 우수성을 증명하려는 강박관념이 타인과의 관계를 막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교 입장에서 관태족들에 대해 연기적 삶과 그물처럼 얽힌 인생의 인드라망을 망각하고 있다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논어>에는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말이 있다. 자기 세계에만 갇히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소통할 때 자기의 발전 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관태족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새로운 인간관계의 필요성을 애써 외면하고, 홀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주변사람과의 대화 등을 통해 푸는 것이 아니라 혼자 끙끙 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들은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모임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경향을 보인다.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런 저런 신경을 쓰고 노력하기 보다, 차라리 나홀로 있는 것이 안정적이고 편하다는 생각을 갖는 까닭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밴드, 카페 등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이용한 SNS 친구는 많지만 정작 일상에서 마음을 나눌 친구는 적거나 없는 게 관태족들의 현주소이다. 관태기에 빠진 20대의 우울증 발병률이 50대를 앞선다는 암울한 소식까지 들린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청년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에는 경제불황, 노인인구 증가, 핵가족 가속화, 개인주의 심화 등으로 관태족의 범위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실정이다.

지난 4월 잡코리아에서 운영하는 알바몬이 대학생 14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학생의 31.0%, 여학생의 41.9%가 관태기를 겪고 있다고 응답해 충격을 주었다. 관태기를 느끼는 20대가 증가할지를 묻는 질문에는 무려 93.6%가 '증가할 것'이라고 답했다. 관태기를 겪는 가장 큰 이유로 대학생들은 '취업준비, 과제 등에 지쳐 인맥을 관리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어서‘라고 응답했다. 그 뒤로 단체 활동보다 혼자 하는 활동이 편하고 좋아서, 단체 활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라고 대답했다.

청년세대가 눈앞에 직면한 학업과 취업 문제로 타인의 일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로 인해 관태기를 겪는 관태족이 증가하고 있다. 관태족 개인 보다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기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관태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취업과 학업 등 청년세대가 안고 있는 고민을 국가와 사회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선결과제이다. 이와함께 중장년층과 노년층 등 전 세대에 걸쳐 겪고 있는 소외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려는 노력도 요구된다.

불교상담심리사 혜타스님은 “(관태족들은) 사람한테 두려움을 갖고 있다보니 자기중심적으로 자기를 보호하려는 마음이 강하기에 성(城)을 두루는 것”이라면서 “자기가 선택한 사람, 자기가 안전하다고 생각한 몇 명만 성안에 들어와 같이 사는 것과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혜타스님은 “그러다 보니 마음도 너그러워지기보다 피폐해진다”며 “선택한 사람만 사귀게 되면 처음에는 좋을지 몰라도 추리고 추리다보면 나중에는 외로워진다”고 지적했다. 혜타스님은 “좋은 것만 취하면 반드시 병이 되니, 관태기에 있는 분들도 힘들거나 불편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 기울어야 한다”며 “이와함께 본인의 마음을 찾아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관태기를 겪는 이들에게

이를테면 여기 두 묶음의 갈대단이 있다고 하자. 이 갈대단들은 서로 의지하고 있을 때 서 있을 수 있다. 이처럼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갈대단 중에서 어느 하나를 치워버리면 다른 갈대단도 따라 쓰러지고 만다. <상응부경전>

어리석은 사람은 한평생을 두고 어진 사람을 가까이 섬길지라도 참다운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마치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이. <법구경>

타인은 곧 나이고, 나는 곧 타인이라고 생각하여, 나 아닌 남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된다. <아함경>

온갖 놀라움으로 피어나는 생명을 위해 여기 있어야 한다. 불교 수행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간단하고 분명하다. “너를 위해 내가 여기 있다” <틱낫한 스님의 365일 잠언 모음집>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