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회의원 진각스님
전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제적)과 은인표 씨가 500억 원이 오가는 뒷거래를 시도했다는 본지 보도와 관련해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진각스님이 기고를 본지에 보내왔다. 전문을 싣는다.

종단에서 제적된 봉은사 전(前) 주지 명진스님과 관련된 불교신문의 보도에 무척 놀랐다. 종단이 과거 봉은사 소유였던 한국전력 부지를 되찾아와 그 개발권을 어떤 개인에게 넘기면, 당시 봉은사 주지였던 스님이 그 대가로 500억 원을 받는 계약을 체결했었다고 한다. 더구나 상대는 과거 불법대출 사기사건으로 악명 높았던 은인표 전 전일저축은행 대주주였다.

사찰을 관리하는 조계종 총무원에 대한 공식적인 보고도 없었고 승인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누구보다 정의롭다고 자처하던 본인이 사회적 지탄을 받던 인사와 사적으로 담합을 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매우 충격적이다.

정황상으론 엄연한 사실로 보인다. 불교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계약서상의 ‘갑'은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이며 ‘을’은 ‘은인표’로 설정돼 있다고 한다. 주지 직인도 찍혔다. 또 다른 배후가 있었는지는 그 다음 문제다. 종단 소속 사찰 그것도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대표 사찰에 대한 권리를 제3자에게 양도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빼도 박도 못하는 물증인 셈이다.

얼굴 한번 본 스님에게 500억 원을 준다고?

명진스님은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중앙종회로부터 해종언론으로 지정된 인터넷매체를 통해 ‘계약에는 총무원 총무부장이 입회했고 당시 봉은사 총무국장이 알아서 한 일’이라고 반박하는 상황이다. 은 씨에 대해선 ‘얼굴 한 번 본 게 전부’라며 친분관계를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건대 실제로 500억 원을 받게 되는 계약서상의 ‘갑’은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이다. 특히 은 씨가 미치지 않고서야 ‘얼굴 한 번 본’ 스님에게 500억 원의 거금을 선뜻 주겠다고 약속할 이유가 없다. 또한 천문학적 금액이 걸린 일인데, 스님이 ‘얼굴 한 번 본’ 사람의 제안을 자기 명의를 내주고 덜컥 받아들였다는 점 역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현재 한전부지는 현대자동차그룹이 매입해 글로벌비지니스센터(GBC)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총 개발비용 12조 원을 헤아리는 초대형 사업으로 알고 있다. 무리한 사업으로 철창신세를 지게 된 은 씨가 명진스님에게 왜 접근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만약 계약이 성사됐더라면...

게다가 보도에 의하면 계약과 관련한 서류가 총무원에 일절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개인적인 뒷거래였음을 보여주는 유력한 증거다. 만에 하나 계약이 성사돼 명진스님이 500억 원을 받았더라면 계약에 가담한 몇몇 빼고는 아무도 몰랐을 일이다. 결정적으로 은 씨에게 천문학적 액수를 헤아리는 개발권이 넘어갔게 됐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과거 군사정권의 강요로 억울하게 빼앗긴 ‘봉은사 땅 매각 사태’의 파국이 재현되지 않았을까 심히 두렵다.

무엇보다 실망스러운 것은 스님의 대응방식이다. 불교신문과의 통화에서 “주지인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겠다”고 인정해놓고는 갑자기 정정보도 및 1억 원의 손해배상을 신문사에 청구했다는 소식이다. 죄가 있으면 진심으로 참회하고 억울한 점이 있으면 당당하게 소명하면 진작 끝났을 일인데, 사태는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주지로서 책임” 인정해놓고 손해배상 청구?

또한 명진스님은 은 씨와의 계약은 사실상 무효화됐는데 왜 지금에 와서 시비냐는 불만을 터뜨린다. 그러나 봉은사는 그냥 봉은사가 아니라 엄연히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다. 사안의 본질은 실제로 돈을 주고받았느냐가 아니라, 응당 종단이 공적으로 보유해야 할 봉은사에 대한 권리를 자의적으로 넘기려 했다는 도덕성에 있는 것이다. 작금의 상황은 지난 2010년 총무원이 봉은사 직영을 선언하자, 정치적 외압 운운하며 주지 자리에서 한사코 버티던 모습과 정확히 겹친다.

어쩌면 문제의 시작은 스님에 대한 호계원의 제적 결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님은 현 종단 집행부를 신뢰할 수 없다며 호계원의 등원 요구를 수차례 거부하다가 결국 종단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집행부가 자신에게 우호적이든 우호적이지 않든 종헌종법의 절차를 준수하는 것이 종도의 의무 아니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스님은 그동안 단순한 종도를 넘어 ‘혜택 받은 종도’로 살아왔다. 봉은사 주지를 비롯해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장 심지어 중앙종회 부의장까지 지내며 제도권 내에서 적지 않은 영광을 누려왔다. 그리고 현재의 종헌질서는 당신이 칭찬해마지 않는 1994년 종단개혁의 결실이다. 이제 와서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깔보며 능멸하는 행태는 명백한 이율배반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걸레이고 누가 수건인가?

1994년 봄 모든 사부대중이 종단의 쇄신을 발원하던 무렵 명진스님이 가사를 벗어 부처님 전에 바치던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만큼 공심(公心)과 애종심으로 투철한 분이었다. 물론 ‘그저 쇼에 불과했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나는 진정성의 발로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 사회원로들이 징계를 철회하라며 스님의 편에 선 것도 그날의 진정성을 믿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23년 전의 명진스님이 그립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개인적으로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착잡하고 황망하다. 왜 자꾸 밖으로만 돌며 외부의 적들과 합세하면서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몰아가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종단의 제적 결정을 비난하며 “걸레들이 수건 보고 나가라”고 했다는 호기로운 발언은, 떳떳치 못한 행보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질 뿐이다.

진각스님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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