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한 걸음 가파른 산길을 올라챌 때마다 다리가 천근처럼 무겁고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열 걸음도 못 떼어 멈춰서 해녀의 숨비 같은 된 숨을 몰아쉬기를 여러 차례. 무등산 고도 700여m 지점인, 토끼등에서 동화사 터 오르는 구간에서 나의 체력은 기진맥진해 있다. 그럴 때쯤이면 응급 처방하듯 써먹는 감동적인 일화 하나 되새긴다. 티베트를 침공한 중국의 박해를 피해 한 노승이 여러 날 걸려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 땅에 도착한다. 사람들이 놀라 묻는다. “아니, 스님께서 노구를 이끌고 어떻게 그 험준한 산을 넘어 왔습니까?” 스님 답하기를, “한 발 한 발 걸어서 왔지요.”

1000m가 조금 넘는 무등산은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산에 비하면 동산 수준일 테다. 또한 일흔 넘은 노승보다 나는 훨씬 젊다. 역시 티베트 노승의 약발 덕분에 30여분 만에 800여m에 자리 잡은 동화사 터에 당도한다. 하지만 등산로 팻말에 부릅뜨고 있는 동화사 터라는 글귀가 무색하게 하다못해 몽동발이 돌탑 하나 없고, 바위벽에 선각되어 풍우에 닳아진 부처상 하나 없다. 그저 전각들 주춧돌이나 기단으로 사용됐을 돌무더기들만 잡목 속에 하릴 없이 나뒹굴 뿐 완벽하게 폐허지가 돼버린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공간이 좋아 무등산 산행 때면 힘든 코스여도 즐겨 찾는다. 

비어 있어 오히려 충만하다 했던가. 이 적멸의 공간에 상주하는 자연의 불보살님들이 제각각 성심을 다해 야단법석을 펼쳐주니 말이다. 바람이 사물을 치고, 새들은 경전을 읊고. 물소리 염불을 한다. 이파리 넓은 수목들은 바라춤 추고, 넌출식물들은 오체투지를 하며 적멸의 공간을 신명으로 채운다. 이 자연의 불보살님들의 야단법석에 참관하고 있노라니 허물 많은 중생 번뇌 망상으로 도가니 속처럼 들끓었던 마음이 청정해지고 평온해진다. 자리를 뜰 때, 부처님도 분명 이와 같은 자연의 불보살님들에게서 깨달음을 얻어 설하셨을 금강경의 한 구절 읊조린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집착하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이라.

[불교신문3307호/2017년6월21일자] 

이선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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