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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용성진종조사 ] <21> 대한제국의 현주소⑤
  •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 승인 2017.06.14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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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 생각으로 사유해보면

그림자는 정확하게 있어야할

실체를 헷갈리게 한

방해물일 뿐이에요.”

“그런데 방물장수 정체는

알아보았느냐?”

“중이 되었다네요.”

그 말에 삼촌이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그럼 절에 가서

찾아야겠구먼.”  

“아니 배움 그만하고 인물 반반한데, 따라다닌 사내도 없단 말이냐?”

이번에는 숙모가 나섰다.

“이화학당 다닐 땐 퀸이라고 했어요. 수업 끝나고 학당 문 나서면 동경대학, 와세다대학, 배재학당, 뭐 사각모자 쓴 건달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 성가셨어요. 그 때 받은 연애편지 모아두었으면 한 구르마는 될 걸요.”

“지금도 그런단 말은 아니겠지?”

“아이참! 숙모도, 제 나이가 몇인데….”

“봐라, 봄 색시 하루가 가을 색시 열흘이다.”

“그렇다고 사귄 남자 하나 없을까?”

삼촌이 거들었다. 사귄 남자가 있으면 털어놔 보란 이야기 같았다.

“제가 모두 딱지를 놨어요.”

“뻐꾸기도 유월이 한철이다.”

“쟤가 지금도 닭장에 봉황 들기를 기다리나 봐. 지식을 너무 탐한다했더니 콧대가 과붓집 굴뚝이 된 것 아니냐?”

삼촌이 기어이 귓구멍을 긁었다. 은엽은 어떻게 해야 속에 있는 마음을 털어놓을지 몰랐다. 한참 망설이고 있는데, 숙모가 은엽의 성격을 치켜세웠다.

“난 네가 평양 나막신처럼 영 살가운 것으로 안다.”

“병인가 봐요.”

무심히 뱉은 병이라는 말이 방향을 다른 데로 바꿔놓았다.

“병??”

숙모와 삼촌 시선이 은엽의 얼굴에 모아졌다.

“삼촌, 콤플렉스(コンプレックス)란 말 들어보셨지요?”

“그거 왜놈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미국 놈 소리냐?”

“정신분석학에서 쓰는 말이에요.”

“의학을 공부하더니 정신분석학도 하냐?”

“제가 장수 집에 있을 때 중매쟁이 오간 거 알잖아요?” 

“그래 안다.”

“시집갈 날 받아놓고 연길이니, 송복이니, 납폐가 오갈 때 방물장수가 끼어들었지요.”

잊어버릴 만한 이야기라 새삼스러운 듯 고개를 들었다.

“지대기 걸친 방물장수였어요. 마루에 방물을 펴놓고 측간이 어디냐고 묻더니 사라져 버렸지요.”

“정신이 보리동냥 간 놈이구나. 그런데 그게 언제 적 이야긴데 이제야 씩둑이냐?”

“그게 제 병으로 발전했다면요?”

삼촌과 숙모가 동시에 쳐다보았다.

“지난 동학란 때 집에 갔을 때, 어머니가 그 방물을 벽장 속에 넣어둔 것을 보았어요.”

“네 엄마도 참! 세상에 넣어둘 것이 없어서 그런 걸 벽장에 넣어두었더냐?”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을 거예요. 제가 보기에도 귀신 붙은 물건 같았으니까요. 엄마라고 그런 생각 못했겠어요.”

“태워버리든지 사람들한테 나눠주면 될 일 아니냐?”

“임자가 있는 물건인데, 숙모는 그럴 수 있겠어요?”

우두망찰이라, 숙모가 얼떨떨 대답을 못했다.

“숙모, 잘 아는 집 잔치에 갔을 때, 방으로 가면 더 잘 먹을 수 있을까, 부엌으로 가면 더 잘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 있어요?”

“너도 참…, 학당에서 그런 것도 배우냐?”

할 말 없으면 건넛산 쳐다본다더니, 숙모는 철 그른 동남풍 같은 말로 대꾸했다.

“방에 가면 잘 먹을까, 부엌에 가면 잘 먹을까, 그 비결 참 알기 어려워요, 숙모.”

은엽은 거실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 뒤에 이어질 말은 우리 주변에 의외에도 빗댈 근거가 없는 말들이 차례로 줄을 지어있었다. 가령 출타하려고 길을 나서는데, 여자가 앞을 지나가면 재수가 없다든가, 밤에 손톱을 깎으면 안 된다든가, 월경한 여자가 약수터에 가면 안 된다든가…. 사람들은 닭이 오줌을 안 갈기지만 저절로 해결할 방법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도가 넘으면 날 밝은 것이 싫어 수탉을 죽이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은엽은 벽장 속의 방물이 그런 해괴한 문제를 안고 있는 물건 같았다. 너무 섬세한 생각이 아닐까 되새겨도 보았지만, 날씨가 추우면 닭은 나무 위로 올라가고, 오리는 몰속으로 들어가듯 그것을 그럴싸하게 설명해낼 수 없었다.

“숙모, 한 가지만 더 물을게요. 숙모는 삼촌을 사랑하지요?”

“얘는….”

숫처녀처럼 눈을 흘겼다.

“숙모님 사랑에는 삼촌이라는 대상이 있지요, 그리고 삼촌에게 친밀감을 느끼죠, 그 친밀감에 열정까지 더해져 헌신하지 않아요. 그렇죠? 물어보나마나 대답은 예스일거예요.”

“네가 학문이 깊다는 건 안다만 그것이 ‘콤플렉스’냐?”

이번에는 삼촌이 나섰다.

“한편만 보면 그렇다 할 수 있습니다. 가령 미친 사람을 보면 다들 미쳤다고 인정하는데, 정작 미친 사람은 미쳤다는 생각을 안 해요. 반대로 사람들이 미친 사람으로 보지 않는데, 스스로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게 진짜 미친 사람일까요, 아닐까요?”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복잡하냐?”

“제가 어떤 사람 그림자를 사랑한다면 삼촌은 믿을 수 있겠어요?”

“그거야 미친놈이나 하는 짓이지.”

“그것보세요. 예전에 제가 동경대, 와세다대 돈 많은 집 아들들이 사랑한다고 눈물로 고백을 해도 딱지를 놓은 것은 과붓집 굴뚝이어서가 아니라 지대기 입은 방물장수가 저에게 드리워놓은 그림자 때문이었어요.”

“너 지금 꿈꾸고 있냐?”

“제가 미쳤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어요. 저는 제정신이 아닌데, 삼촌은 저를 미친 조카로 보지 않잖아요. 왜 그런 줄 아세요? 방물장수 그림자를 사랑한 것이 저에게는 ‘진실임직’ 하기 때문이었어요.”

“진실임직하다?”

감이 잡히지 않은지 고개를 갸웃했다.

“진실과 진실임직 함은 엄연히 다르지만 구별이 쉽지 않지요. 그것은 언어의 명징성 부족 때문이에요.”

삼촌은 황당한 듯 눈을 껌벅거렸다.

“요즘 너희들이 신학문이라고 배운 것이 그런 것이냐?”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만, 사람에 따라 ‘정신적 위기의 흔적’이 그렇게 나타나기도 하죠. 전체의 인격에서 분리된 작은 편린이 작용한 것 같은…, 서양 말에 리베르탱(libertin)이란 게 있어요. 기존 도덕이나 종교에 억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하는 사람을 가리킨 말인데요. 이것이 새로운 사상인 것 같고, 신여성이라면 의당 그렇게 사고해야 될 것 같지만 의외에도 제약이 많아요.”

“무슨 제약이 있다는 게냐?”

“극심한 고립주의(isolisme)에 빠지게 되요.” 

“고립주의?”

“네! 이 세상 모든 존재가 고립된 상태로 태어났고,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남들이 느끼는 고통도 나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지요.”

“중놈들 사상이 그런 것 아니더냐?”

“중들은 그 속에 자비를 끌어들이지 않아요?”

“뭐 중노릇을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만…, 그러면 무슨 재미로 살겠냐?”

“그런 허무 속에 아주 미미한 쾌락이 있다네요.” 

“그것이 이해가 되어 한 말이냐?”

“진실인 것 같아 다가가면 전체에서 한 조각이 떨어져나가 다른 것이 되어, 거기에 골똘하면 외로움에 빠질 것 같은데, 흥미롭다는 거죠.”

“너도 방물장수 그림자 속에서 그런 쾌락을 느끼느냐?”

“솔직히 말하면 증오와 애착만 교차돼요.”

“증오가 사랑의 다른 말이기는 하지….”

“이성적 생각으로 사유해보면 그림자는 정확하게 있어야할 실체를 헷갈리게 한 방해물일 뿐이에요.”

“그런 방해물인 줄 알면서도 욕망에 끌려 계속 재형성된다면?”

“그것 때문에 제가 다른 남자를 사귀지 못했잖아요.”

듣고 보니 그것도 큰 병이구나 싶은 듯 삼촌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런데 방물장수 정체는 알아보았느냐?”

“저와 혼인하기로 이야기가 된 총각이었어요.”

“아니, 그런 녀석이 방물장수가 되어 너를 만나러 왔더란 말이냐?”

“그러니 괴짜배기란 거죠.”

“그놈은 다른 데로 장가를 갔다더냐?”

“그렇게 되었으면 제가 이렇게 되진 않았지요.”

“그러니까 살아 있다는 것이구나?”

“중이 되었다네요.”

그 말에 삼촌이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그럼 절에 가서 찾아야겠구먼.”

“찾는다고 제가 부부로서 완전한 인격을 갖출 수 있겠어요?”

“음양의 이치는 그럴 수도 있다.” 

공동기획 : 용성진종장학재단(총재 도문)         

[불교신문3306호/2017년6월17일자] 

글 신지견 ·그림 배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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