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쉼이 기다리는 곳, 법련사
불일미술관, 불일서점 비롯
실내 참선공간 야외 약사전
도심속 오아시스 공간 톡톡
경복궁 옆 동십자각(東十字閣)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삼청로 길을 오르다보면 한옥처럼 생긴 3층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사찰 건축 양식을 그대로 따른 3층과 달리 1층과 2층은 세련된 모습의 현대적 외양을 하고 있어 자못 의아함을 자아낸다. ‘핫 플레이스’ 답게 젊은 직장인들 산책로로, 연인들 데이트 코스로, 가족 나들이 명소로도 인기가 높아 평일이건 주말이건 젊은 사람들의 발길이 멈추지 않는 곳. 삼청동 길 초입에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사찰, 서울 법련사가 있다.
경복궁을 마주 보고 선 법련사는 복작복작한 삼청동에서 살짝 빗겨나 있다. 외양만 보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느껴지는 탓에 선뜻 들어가기 쉽지 않지만, 막상 발을 디디면 그 느낌이 무척 청량하고 쾌적하다. 복잡스런 삼청동에 위치해있지만 마치 마음속으로 하는 혼잣말까지 들릴 듯 고요해 마음이 평안해지는 곳이다.
법련사는 도심 속에 있지만, 선방부터 대웅전, 약사전과 지장전까지 여느 산속 사찰 못지않은 구색을 갖추고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누구나 들러 가볍게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연다원부터 좁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알짜배기 갤러리 불일미술관, 불서를 비롯해 일반서적까지 다양하게 구비된 불일서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사색에 잠길 수 있도록 배려한 참선 공간, 고려시대 불교 정화운동을 이끌었던 보조국사 사상을 깨우치고 알리기 위한 연구 및 강연 공간까지 도심 속 문화예술 공간에 위치한 사찰답게 허투루 낭비하는 것 없이 짜임새 있는 공간으로 가득하다.
오고가는 이들이 “조선시대 때의 사찰이냐” 물어올 정도로 전통미를 자랑하는 법련사지만, 사실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서울에는 조계총림 송광사 분원이 두 군데 있는데 바로 법련사와 길상사다. 재미있게도 두 사찰 모두 두 보살들의 자비희사로 창건됐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시인 백석과 그의 연인 김영한의 이야기로 대중에 잘 알려진 길상사에 비해 법련사에 얽힌 사연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법련사는 창건주인 법련화 보살(1920~1973년)의 이름을 따 지어졌는데, 법련사 1층 지장전에는 그녀의 영전이 모셔져 있다. 곱슬머리에 외꺼풀을 한 그녀의 이름은 김부전. 황해도 출신으로 22살 때인 1941년 금강산 정양사에서 ‘응무소주 이생기심’,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 내라’는 한마디에 아낌없이 모든 것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 특히 효봉스님이 1년 동안 선학원에 주석하며 정화불사에 전념할 때 법련화 보살과 스님의 운명적 만남은 법련사를 세우는 데 큰 계기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법련화 보살의 보살행은 1950년 종단 정화불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데서 빛을 발했다. 일제 시대 잔재를 청산하고 청정 수행 가풍을 지키려는 불교정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각 사찰 주지는 대처승들이 맡고 있었고 독신 비구 스님들은 쫓겨나 여러 모로 열악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법련사 일대의 땅을 소유하고 있던 법련화 보살은 비구 스님들을 돕기 위해 적극적인 후원에 나섰고, 종로구 사간동 자택을 불사에 써달라는 유언을 남긴 뒤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그 자리에 세운 것이 지금의 법련사다.
창건은 1973년 했지만 중창된 때는 그보다 20년 지난 1995년이다. 법련사는 대우그룹과도 각별한 인연이 있는데, 김우중 전 회장은 당시 큰 아들이었던 고(故) 김선재 씨가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아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송광사에 거액의 불사금을 희사했다. 법련사 중창불사가 이뤄진 것도 바로 이 때다. 대우그룹의 지원으로 법련사는 사격을 갖추고 서울 도심 속 수행과 포교도량으로 일신할 수 있었다. 김 전 회장 부인인 정희자 여사는 지금도 아들의 위패가 있는 법련사를 종종 찾는다고 한다.
역사는 짧지만 질곡의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법련사는 최근 들어 문화예술 공간, 개방된 사찰로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해 개관 20주년을 맞은 불일미술관은 교계 안팎으로 이름난 유명 작가를 비롯해 개성 있는 신진 작가를 위한 크고 작은 전시가 해마다 열리는 곳이다. 열정 있는 작가들에게는 무료 대관 등 아낌없는 지원도 해 이제는 부러 찾지 않아도 예술가들이 먼저 찾는다. 예술가들의 전시공간이자 복합문화공간인 미술관과 서점, 곳곳에 숨겨진 참선공간, 법당, 강의실 등 친근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요소가 곳곳에 숨어있다.
삼청동이 뜨기 진작부터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서서히 자리잡아온 법련사지만 최근 들어 가장 공들이고 있는 부분은 다름 아닌 ‘포교’다. 어린이, 청소년법회를 비롯해 <금강경> 만독 업장소멸기도, 1000일 기도 등 적극적으로 일반에 다가서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도심 주택가가 곳곳에 있어 평일과 주말 가리지 않고 인근 주택가에서 가족 단위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다는 점은 고려해 내놓은 것이다.
주지 진경스님은 “어떻게 하면 한명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법련사를 찾아 마음 편히 쉬어갈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며 “서울 중심부에 자리한 도심 속 수행과 포교의 전당인만큼 누구에게나나 개방돼 있다는 장점을 살려 가벼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오갈 수 있는 공간으로 다가가길 바란다”고 했다.
시대의 변화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건재함을 이어온 곳, 바삐 걷다가도 잠시나마 숨을 고를 수 있는 곳, 사계절 내내 풍성한 볼거리가 끊이지 않는 곳, 한번 찾기 시작하면 아지트로 더 없이 그만인 곳, 법련사가 가진 ‘출구 없는 매력’이다.
“편안하고 친근한 사찰로”
법련사 주지 진경스님 인터뷰
“법련사 앞에는 송광사 서울분원이라는 말이 따라붙습니다. 서울 도심 속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지만 송광사 수행 가풍을 이어받은 조계산 깊은 암자와도 같은 곳이지요. 목우가풍을 이어 청정기도 도량으로 거듭나면서도 사람들에게 한결 다가가기 쉬운 지리적 장점을 살려 편안하면서도 친근한 사찰로 다가가려 합니다.”
지난 5일 만난 서울 법련사 주지 진경스님은 요즘 고민이 한창이다. 자칫 콧대 높은 예술공간으로 비춰질 수 있는 법련사가 어떻게 하면 편안하고 친근한 매력으로 다다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지경. 진경스님은 “경복궁과 갤러리 속에서도 위화감 없이 잘 스며들어 있는 것은 법련사만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선뜻 경내로 들어오지 못하는 분들이 꽤 있다”며 “큰 불사는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사찰이 가진 분위기를 밝게 만드려는 노력중에 있다”고 했다.
때문에 법련사는 최근 꽃단장이 한창. 일주문 역할을 하는 사찰 입구에 화분도 놓고, 인조잔디도 깔고, 사찰임을 알리는 색색의 연등도 매달고, 야간 조명 점등 시간도 늘리는 하는 등 다양한 시도 중에 있다. 그 와중에도 수행과 포교 도량으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으려 부지런까지 떤다.
소의경전 <금강경>의 참뜻을 올바로 이해하고 알리기 위한 ‘금강경 만독 업장소멸기도’가 그것. 나 자신의 업장 소멸을 기원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1독, 내 가족과 이웃의 안녕과 무탈함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1독, 돌아가신 조상과 인연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비는 마음으로 1독 등 하루 3독을 기본으로 한다. 매일 아침 사시예불 때마다 스님이 직접 집전을 하고 100일이 되는 날에는 신도들과 함께 스스로를 점검하는 과정도 거친다.
진경스님은 “어린이 청소년 법회를 통해 어릴 때부터 신심을 가지고 성장하며, 성인이 돼서는 불심을 다시 한 번 아로새기기 위한 것이 필요하다”며 “언제든 수행을 할 수 있고 부처님 법을 알릴 수 있는 장소인 동시에 누구나 쉽게 찾아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장소이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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