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에서 가장 조화롭고 아름다웠던 조직”

 

5비구에게 中道 가르치며

최초의 교단 탄생

가족이나 씨족이 아닌

진리로 맺어진 공동체 ‘의의’ 

범부와 성인이 함께 섞인 곳

뛰어나든 문제가 있든…

결국은 깨달음이란 목표 향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귀감’  

진리를 추구하는 출가 수행자들로 이뤄진 승가는 자기나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뭇 생명의 이익과 안락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동체라고 할 만 하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깨달음을 얻은 후 붓다는 가장 먼저 자신에게 선정을 가르쳐 준 스승, 선정수행자들을 찾아 자신의 깨달음을 전하려 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며칠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함께 고행하던 5명의 수행자들을 찾아 나선다. 그들이 바라나시 인근의 녹야원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붓다는 320km나 떨어져 있는 녹야원까지 걸어간다. 가던 길에 한 브라만을 만나 자신이 깨달은 자임을 설명하지만 그는 냉소를 하며 떠나간다. 이 첫 번째 실패사례를 통해 붓다는 길을 걸으면서 5명의 수행자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깊이 고민하였다. 더구나 그들은 고행을 멈춘 붓다를 비난하고 떠난 이들이었지 않은가.

다섯 고행자는 처음에 붓다의 말을 쉽사리 이해하지 못했다. 순번을 정해 밥을 빌어 나누어 먹으면서 붓다는 무지와 착각에서 벗어나 중도, 즉 있는 그대로 본 존재의 실상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온 우주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한시도 멈춤 없이 서로를 물들이고 있는 연기의 실상, 그러한 연기적 관계는 내가 굳건히 존재한다고 믿는 실체적 자아관을 극복함으로써 가능하다는 무상·무아의 진리였다. 

가장 먼저 꼰단냐가 깨달았을 때 붓다는 뛸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옳지. 꼰단냐여, 그대가 이제 바로 알았도다. 삶의 주인이 되어 사는 눈을 얻었도다” 나머지 4명의 수행자들도 오래지 않아 붓다의 말을 이해했다. 그들은 붓다와 마찬가지로 브라만으로 대표되는 신의 속박과 아트만이라고 하는 실체적 자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났다. 5비구에 이어 청년 야사와 그 친구들까지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서, 붓다는 전법의 가능성과 방향을 확신한다. 인류사의 신새벽을 연 장쾌한 명문, 전도선언이 이렇게 탄생하였다.

“나는 신과 인간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그대들도 신과 인간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비구들이여! 길을 떠나라. 세상에 대한 깊은 애정의 마음으로 여러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세상을 연민하여 길을 떠나라.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마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의미와 문장을 갖춘 법을 설하라. 아주 원만하고 청정한 행을 드러내 보이라. 세상에는 마음에 먼지와 때가 적은 자도 있다. 그들이 법을 듣지 못하면 쇠퇴하겠지만, 법을 들으면 잘 알게 되리라. 비구들이여! 나도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의 세나니 마을로 가리라.”

불교의 전법은 내 편을 늘리거나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며, 교의에 대한 무조건적 믿음과 복종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제 삶이 자유로워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스스로 몸 말 마음에 부정적 습관이 많이 남아 있는 이가 타인에게 자유를 선물하기는 어렵다. 붓다는 “자유로워진 그대, 이제 뭇생명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세상을 향해 떠나라”고 하였다. 그 길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했다. 

출가수행자 수가 늘어나면서 공동체 살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나 씨족을 제외하고 아마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공동체를 들라하면 불교공동체인 ‘승가(Sangha, 僧伽)'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붓다는 하루 만에 오고갈 수 있는(오늘로 치면 10리 안팎) 거리 내에 있는 구성원들, 최소 4인 이상을 하나의 현전승가로 묶었다. 이를 결계(結界)라 한다. 공동체의 구성원 수별로 포살(4인 이상), 자자(5인 이상), 출가와 출죄(出罪)를 제외한 갈마(10인 이상)를 하게 하고, 20명이상의 규모에서만 모든 의사결정을 하게 하였다. 

이렇게 튼튼하게 자리 잡은 기초공동체들 간에는 사방승가라는 개념으로 연결되었다. 누구든 승가를 옮겨도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누릴 수 있었다. 지역과 나라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도, 다음 세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촘촘하게 짜인 기초공동체로서의 ‘현전승가’, 그리고 이 기초공동체들 간의 느슨한 연대체인 ‘사방승가’, 이 승가의 조직 전통이야말로 불교공동체의 청정성, 화합, 영속성을 가져온 원동력이었다. 

진리로 맺어진 불교공동체는 존재 자체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코살라국의 파세나디 왕은 붓다의 명성을 확인 차 승원에 들렀다가 비구들의 모습을 본 후 마음이 크게 움직인다. 그는 “이곳에서 본 비구들은 미소 띤 모습에 정중하면서도 진실로 행복해 보입니다. 긴장을 풀지 않으면서도 차분하며, 걸식으로 먹고 사는데도 들판의 사슴처럼 부드럽습니다”라고 칭송한다. 이미 세속화된 브라만들이나, 고행으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문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거룩한 불교공동체의 모습에 크게 감화되었던 것이다. 

승가는 붓다 재세 시에도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용사혼잡(龍蛇混雜), 범성동거(凡聖同居), 즉 용과 뱀, 범인과 성인이 한데 섞여 사는 공동체였다. 그곳엔 뛰어난 이들도 많았지만 문제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승단은 거룩한 이들의 모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평범한 이조차 거룩함으로 이끄는 모임이었다. 각기 다른 꽃과 나무, 풀들이 어울려 숲을 이루듯,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이룬 향기나는 사람 숲이 곧 승가였다. 

아무리 좋은 스승과 제도가 있다해도 공동체 안에 문제가 없기는 어렵다. 붓다가 성도 후 열번째 안거를 코삼비에서 보낼 때 일어난 저 유명한 코삼비 비구들의 분쟁이 대표적이다. 

코삼비에 살던 한 강사 비구가 용변을 본 후 뒷물을 버리지 않은 이유로 율사 비구의 비난을 들었고, 이 일로 시작되어 강사 비구를 지지하는 그룹과 율사 비구를 지지하는 그룹간의 다툼으로 비화되었다… 붓다는 서로 갈라져 싸우는 비구들을 찾아가 “만약 승단의 분열을 무겁게 여긴다면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된다”고 간곡하게 당부했다. 

그러나 그들이 고집을 꺾기는커녕 다툼을 계속하더니 급기야 포살과 갈마까지 따로따로 거행하였다. 그러자 붓다는 양측의 비구들을 불러 다시 화해의 방법을 일러주었다. 하지만 양측의 시비는 잦아들지 않았고, 저자거리에서 서로 욕설을 하며 몸으로 싸우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세 차례나 말렸지만 싸움을 멈추지 않자, 붓다는 “이들은 너무나도 어리석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코삼비를 떠나셨다. 이때 붓다께서 떠난 것을 알게 된 재가 제자들은 비구들을 만나도 절을 하지 않았고, 공양을 올리지 않았다. 큰 곤경에 처한 코삼비 비구들이 함께 세존이 계신 사밧티로 가서 참회하였다. (‘마하박가’, ‘아난존자의 일기’) 

싸움을 말려도 제자들이 듣지 않자 붓다는 미련 없이 코삼비를 떠나 홀로 기녀 암바빨리가 기증한 망고 숲으로 간다. 이 숲에서 붓다는 아니룻다(아나율)와 난디아, 킴빌라 등 세 명의 비구가 사는 수행처를 찾아 간다. 스승을 맞이한 제자들에게 붓다가 묻는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화목하게 지내고 있는가?” 아니룻다가 답한다. “스승이시여, 저희는 서로 깊이 존중하며 화목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도반에게 무슨 말을 하기 전에 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를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제 말과 행동이 이들을 어떤 식으로든 실망시킬 듯하면 하려던 말과 행동을 그만둡니다. 난디야가 덧붙인다. “저희는 세 사람이지만 한 사람처럼 지냅니다. 저희는 음식에서부터 생각과 경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붓다는 기뻐하며 그들을 칭찬하였다. “훌륭하다. 너희가 이렇게 화목한 것을 보니 기쁘구나. 승가는 이렇듯 화목할 때만 진정한 승가이다.” 그러면서 붓다는 그들 세 명의 비구와 한 달을 보낸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설해진 경전이 <육화경>이다. 

승가는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대안 공동체였다. 그 공동체에 깃든 이들은 누구나 차별 없이 자유와 평화의 삶을 한껏 누릴 수 있었다. 인류사에서 가장 거룩한 공동체라 해도 손색없는, 그래서 현대 사회가 주목하는 오래된 미래이다. 오늘 우리 불교공동체의 모습은 어떠한가? 더 늦기 전에 진실 되게 묻고 답해야 할 때이다. 

 

도법스님 조계종 화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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