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 재무국장 호선스님이 지난 1일 성지순례를 온 불자들에게 사찰의 역사와 전설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1일 상쾌한 공기를 느끼며 대전행 기차에 올랐다. 셀프 성지순례를 가는 길이다. 동행자는 본지 이시영 충청지사장. 오는 24일이 윤 5월 초하루, 공달이다. 윤달이면 불자들은 세곳 사찰을 찾아 돌아가신 부모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후손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사후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예수기도를 올린다. 대전에서 자가용으로 한 시간 남짓, 공주 마곡사에 발길이 닿았다.

춘(春)마곡, 추(秋)갑사라는 말이 있다. 생기가 움트는 마곡사의 태화산 나무와 꽃이 아름다워 붙여진 말이다. 백제 무왕 41년에 신라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마곡사에는 수많은 문화재와 역사가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경찰의 눈을 피해 백범 김구 선생이 잠시 출가자로 살며 중국 상해로 망명을 준비했을 만큼, 마곡사는 깊은 산중에 위치해 있다.

대광보전에 들러 삼배를 올렸다. 대광보전 바닥은 삿자리로 짜여 있는데 한 앉은뱅이의 사연이 전해온다. 사내는 부처님께 공양 올릴 삿자리를 짜면서 “걸을 수만 있다면 세세생생 보시하는 삶을 살겠다”고 서원을 했다. 그러다가 100일이 넘으면서 그 소원마저 버리고 “지금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삿자리를 완성했다. 그리고는 법당을 자신도 모르게 걸어서 나왔다는 이야기다. 이후로 다리의 병을 낫고자 하는 사람들이 삿자리를 오려가는 바람에 지금은 삿자리 위에 다른 천을 덧댔다. 삿자리를 구해 병을 낫고자 하는 사람은 많은데, 정성을 들여 삿자리를 만들고 보시하려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구나 생각을 하며 법당을 나섰다.

주지 스님과 차담을 나눴다. 스님은 윤달 절집의 풍속을 전해줬다. 윤달에는 예수재를 치르며 생전의 복을 닦고, 수의를 준비하면 무병장수한다는 풍속이 전해지고 있다. 더불어 각기 다른 세 곳의 명찰을 순례하며 액을 없애고 복을 비는 풍속이 있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에 보면 윤달의 각종 풍속이 나오는데, 윤달에는 장안의 여인들이 아무 날이고 와서 불공을 드렸다고 해요. 일반적으로 다른 달에는 초하루, 보름 등 기일을 정해 사찰을 가지만, 윤달은 아무 때나 절에 가도 다 기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요즘은 교통이 발달해 하루에 세곳 사찰순례가 가능하지만 예전에는 하루에 한 곳을 들르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한 달 사이 세 곳 절을 찾아가 기도를 올릴 수 있었겠죠.” 일본에도 삼사순례와 비슷한 풍습이 있다고 한다. ‘삼산참예(三山參詣)’라고 해서, 미타ㆍ관음ㆍ약사여래 세 부처님을 참배하고 복을 비는 풍습이다.

계룡산을 대표하는 사찰 갑사 전경.

스님과 차담을 마치고 나오니 10여 명의 불자들이 성지순례를 와 있었다. 마곡사 재무국장 호선스님이 요청을 받고 사찰에 대해 설명을 했다. 스님은 “예전에는 문화유산해설사를 배치했는데, 타종교인이 문화유산을 설명하면서 종종 불교와 다른 해석을 하는 등 문제가 있었다”며 “불자들끼리 성지순례를 오기 전에 사찰의 문화와 역사, 전설을 미리 알고 오면 더욱 신심나는 성지순례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마곡사에 이어 차로 40여분 떨어진 계룡산 신원사로 향했다. 백제 의자왕 때 보덕스님이 창건한 신원사는 보물로 지정된 중악단이 있다. 1394년 무학대사가 조선 태조에게 진언을 해 묘향산에 상악단, 계룡산에 중악단, 지리산에 하악단을 설치하고 국가와 백성의 안녕을 기원했는데, 현재는 신원사 중악단만 남아 있다. 
중악단에서 기도를 올리면 반드시 소원이 이뤄진다는 영험이 전해지면서 전국에서 기도를 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날도 두 명의 거사가 경전을 읽으며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사찰 관계자가 “선거를 앞두고 기도를 오는 정치인도 적지 않다”고 귀띔한다.

어느새 오후5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신원사에서 갑사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백제 420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갑사는 말 그대로 계룡산에서 으뜸(甲) 가는 사찰이다. 계룡산은 백제에서 으뜸되는 명산이니, 백제 최고의 사찰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 태조에게 건의해 무악대사가 건립했다는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

대웅전 법당 앞에 세워진 거대한 당간지주에 서서, 이곳에서 거대한 괘불을 올리고 국가의 안녕과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하던 마음이 임진왜란 승병활동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된다.
삼사순례를 마치고 다시 대전역에 섰다. 백제 최고의 명찰, 마곡사ㆍ갑사ㆍ신원사를 찾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세 곳 사찰에서 하나의 소원을 기도 올렸다는 것이 더 뿌듯하게 다가왔다. 어느 새 하루가 기울고 있었지만, 마음의 환희심은 노을이 들녘을 적시는 듯 했다.

[불교신문3304호/2017년6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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