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처음 뵙습니다, 법명을 알고 싶습니다”

법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고

지혜가 깊었던 장자 덕분에

암바따까 사원 스님들은 그에게

네 가지 보시뿐 아니라

많은 도움을 받고 의지도 했다

하지만 그의 뛰어난 지혜가

때로는 부담이 되기도 했다

법에 대한 의심이 있으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면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명쾌하게 이해를 해야만

질문을 멈추지 않아 스님들은

긴장하고 당황하기도 했다  

암바따까 사원의 주지 수담마 존자는 자신이 수행자라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찟따 장자로부터 뒤늦게 공양 초대를 받은 그는 자존심이 상했고 앙심을 품었다. 다음 날, 공양이 한창 진행 중인 찟따 장자의 집에 찾아간 수담마 존자는 음식 중 ‘참깨과자’가 없다고 지적하였다. 이는 찟따 장자의 선조가 참깨과자 장사를 했다는 것을 조롱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찟따 장자는 수담마 존자의 도발에 조금도 상처를 받지 않았고 ‘잡종 병아리’ 이야기의 비유를 들어 존자의 행동이 얼마나 유치한가를 알려주었다. 찟따 장자를 망신주려다가 오히려 창피를 당하게 된 수담마 존자는 분노하며 암바따까 사원을 떠나 부처님이 계신 스라바스티로 향했다. 그러나 수담마 존자의 하소연을 들은 부처님은 간결하고 명확한 명을 내렸다. 찟따 장자 앞에서 교만한 마음으로 지은 허물을 진정으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라는 것이었다. 

수담마 존자는 수행자 본분을 찾고 

출가 제자와 재가 제자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졌을 때, 부처님께서는 어느 편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판단을 하셨다. 출가 수행자라 할지라도 허물이 있으면 재가 신도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이 부처님의 뜻이었다. 부처님께서는 수담마 존자에게 출가 수행자가 교만한 마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독이 되는가를 알려주고자 하셨던 것이다. 부처님은 세상의 모든 생명에게 자비로운 분이셨지만 교만한 수행자에게 한없이 냉정한 분이기도 하셨다.

부처님이 무조건 출가 제자인 자신의 편을 들어주실 것이라 믿고, 부처님의 위신력을 빌려 찟따 장자에게 위세를 부리려던 수담마 존자의 마지막 계획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결국 수담마 존자는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채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맛치산따까 마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찟따 장자를 만날 생각을 하자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차마 암바따까 사원에 들어갈 수 없던 수담마 존자는 다시 도망치듯 스라바스티로 떠났다.

그로부터 수일이 흐른 어느 날, 기원정사에서 오신 스님 한 분이 암바따까 사원으로 찟따 장자를 찾아왔다. 그는 끝내 사과할 용기를 내지 못한 수담마 존자를 대신하여 찟따 장자에게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찟따 장자는 이미 수담마 존자에 대한 한 조각 원망이나 미움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수담마 존자가 암바따까 사원으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고 간곡하게 말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수담마 존자는 마침내 암바따까 사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다시 돌아왔을 때 수담마 존자의 얼굴에는 지난 날 자신의 행동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원의 주지로서 대접을 받고자 했던 오만함은 사라졌고 몸가짐과 말투에는 조심스러웠다. 소문을 들었던 다른 스님들은 수담마 존자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그를 다시 도반으로 받아들여주었다. 그리하여 수담마 존자는 다시 암바따까 사원의 주지가 되었고 전과 달리 겸손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그 후 수담마 존자는 교만한 마음으로 짓게 되는 허물과 이로 인한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수행의 화두로 삼았고 마침내 깨달음을 성취하였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암바따까 사원에서 열반에 들었다.

수담마 존자가 열반에 든 후 암바따까 사원에는 새로운 주지 스님이 오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암바따까 사원의 스님들은 한 가지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하였다. 토론의 주제는 ‘애착 받는 이와 애착 하는 이’에 대한 것이었다. 어떤 스님들은 이 두 가지 단어의 말과 뜻이 모두 다르다고 하였고, 또 다른 스님들은 단어는 다르지만 뜻은 같다고 주장했다. 이때 마침 암바따까 사원에 도착한 찟따 장자는 스님들이 토론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토론의 주제를 확인한 장자는 비유를 들어 이 두 가지의 차이를 정확하게 설명하였다.

검은 소와 흰 소의 비유

“스님들 제가 한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어 검은 소 한 마리와 흰 소 한 마리를 줄로 묶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때 누군가 흰 소가 검은 소 때문에 묶였다고 하거나, 검은 소가 흰 소 때문에 묶였다고 한다면 그것은 옳은 주장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흰 소가 검은 소 때문에 묶인 것도 아니고, 검은 소가 흰 소 때문에 묶인 것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그럼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에게는 눈, 코, 입, 귀, 몸, 마음이라는 여섯 가지 ‘느끼는 성품’이 있습니다. 그리고 모양, 냄새, 맛, 소리, 닿음(촉감), 담마(법)라는 바깥으로부터 ‘와서 부딪히는’ 성품도 있습니다. 이 열두 가지 성품 중 느끼는 성품은 와서 부딪히는 성품에 묶이지 않고, 와서 부딪히는 성품은 느끼는 성품에 묶이지 않습니다. 다만 느끼는 성품과 와서 부딪히는 성품이 만났을 때, 그것이 원인이 되어 좋아하고 집착하는 감정이 생겨나고 애착이 되는 것입니다. 즉, 느끼는 성품과 와서 부딪히는 성품 이 열두 가지 성품이 만났을 때 묶일 수 있도록 좋아하고 집착하는 것이 바로 ‘애착’입니다.”
찟따 장자의 설명을 들은 스님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완전히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자신들끼리 토론을 했을 때 도저히 풀리지 않았던 문제가 해결되자 스님들은 찟따 장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재가 신도에게 가르침 받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법을 바르게 이해한 것을 기뻐하며 찟따 장자에게 감사 인사를 한 스님들에게는 수행자라는 교만함이 없었고, 스님과 신도라는 분별심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처럼 걸림 없는 대화가 가능했으리라.

이처럼 찟따 장자는 법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고 지혜가 깊었다. 덕분에 암바따까 사원의 스님들은 그에게 네 가지 보시 뿐 아니라 여러 가지로 많은 도움을 받기도 하고 의지도 했다. 하지만 찟따 장자의 뛰어난 지혜가 때로는 스님들에게 부담이 되기도 했다. 법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의심이 나는 것이 있으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스님들에게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스님의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면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명쾌하게 이해를 해야만 질문을 멈췄다. 따라서 찟따 장자를 만날 때면 스님들은 긴장을 하였고, 준비되지 못한 질문을 받을 때는 당황하기도 했다.

찟따 장자의 질문은 거듭되니 …

한 달에 한 번, 찟따 장자는 암바따까 사원의 스님들께 공양과 가사, 약을 보시하였는데 이 날이 되면 사원에서는 법회를 크게 열었다. 이날은 다른 신도들도 사원에 와서 공양을 올리는 것을 돕기도 하고, 법문을 듣기도 하였으며 암바따까 숲의 작은 암자에 머물며 수행을 하는 스님들도 와서 찟따 장자의 공양을 받았다. 언제나처럼 여법하게 네 가지 공양을 올린 찟따 장자는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장자는 주지 스님께 예배를 올린 뒤 곧바로 질문을 올렸다.

“스님, 세상이 영원하다고 하거나 영원하지 않다고 하거나, 세상의 끝이 있다고 하거나 또는 없다고 하거나, 생명과 육신이 같다고 하거나 다르다고 하거나, 중생이 죽은 뒤 다음 생이 연결된다고 하거나 그렇지 않다고 하거나 등 갖가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견이 무엇 때문에 생겨나는 지 말씀해주십시오.”

주지 스님은 찟따 장자의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고, 이에 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주지 스님에게는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법문을 할 능력이 없었다. 설명을 잘 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의문이 더 커질 것을 염려한 주지 스님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였다. 질문을 받은 주지 스님이 입을 굳게 다물었으나 찟따 장자는 이에 굴하지 않고 거듭하여 같은 질문을 올렸다.

아완띠에서 온 젊은 스님에 주목 

신도의 질문을 받은 주지 스님이 대답하기가 어렵거나 대답하기를 원치 않을 경우, 다른 스님에게 대답할 권리를 넘겨주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찟따 장자의 질문을 받은 주지 스님은 스스로 대답도 하지 않고 또 다른 스님에게 대답할 권리를 넘겨주지도 않았다. 찟따 장자가 두 번, 세 번 같은 질문을 거듭해도 주지 스님이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자 대중들의 마음에는 의문이 생겼다. 대중들이 동요하자 다른 스님들은 민망함에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알지 못하는 이상 나설 수도 없었다. 스님과 신도들 모두 곤란하고 당혹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주지 스님, 제가 장자의 질문에 대답을 해도 되겠습니까?”

암바따까 사원에 손님으로 잠깐 머물고 있던 젊은 스님 한 분이 주지 스님 앞에 나아가 공손히 물었다. 그 스님은 그 자리에 있는 스님들 중 법랍이 가장 낮았기 때문에 예를 갖춰 주지 스님께 허락을 구한 것이었다. 주지 스님께서 이를 허락하자 젊은 스님은 찟따 장자를 향해 말했다.

“장자님, 모든 사견은 아견 때문에 생겨납니다. 아견이 없으면 사견 또한 없습니다.”

젊은 스님의 대답을 들은 찟따 장자는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나갔다.

“스님, 그렇다면 아견이 생겨나는 모습을 말씀해주십시오.”

젊은 스님은 찟따 장자의 계속된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을 하였고, 마침내 장자는 의문과 궁금증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었다. 찟따 장자는 흐뭇하고 기쁜 마음으로 젊은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스님을 처음 뵙습니다. 스님의 법명을 알고 싶습니다.”

[불교신문3299호/2017년5월24일자] 

글 조민기  삽화 견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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