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는 

등 뒤에서 ‘폭탄’이 터졌다 

꿈 귀신도 자주 들락거린다 

어릴 때야 영문도 모르고 꾼 

꿈이라지만 생각이 분명해진 

지금의 나이가 되고 보니 

‘꿈 귀신’이 무섭기도 하다 

억압된 무의식의 발현인가? 

영문도 모르고 깨어나길 반복했던 

사춘기의 어린 소녀로부터 

한 걸음도 성장하지 못했다 

며칠 전 서러움에 잠을 설치다 결국 폭탄이 내 등 뒤에서 터지는 꿈을 꾸고는 놀라 깨어났다. 무엇이 그리 서럽고 불안했는지 폭탄을 구경도 못 해본 내 꿈에 폭탄이 찾아와 팔이 저리고 뒷목이 뻐근해서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진입할 무렵 자아가 여물어가던 즈음 가족들보다 늦게 잠든 내 꿈에 대형 메주가 나타났었다. 지금 누군가에게 들려주면 웃기는 얘기가 될 테지만 집채보다 더 큰 대형 메주 위를 뛰어다니며 발이 쑥쑥 빠지는 꿈이란 공포 그 자체였다. 발이 빠지면 곧 메주 속에 파묻혀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꿈속의 나를 하염없이 뛰어다니게 해 진땀이 나고 무섭고도 고독했다. 

어릴 적 사랑방 한쪽 구석에는 때가 되면 늘 메주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메주 꿈은 메주의 잔상과 잠 때를 놓친 내가 밤늦게 텔레비전에서 틀어주던 ‘추적 60분’을 홀로 보고 잤기 때문이었다. 기묘한 배경음악과 중저음의 남성이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추적해 나가는 영상은 공포 영화보다 무서웠다. 그날 대형 메주 꿈을 꾼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꿈 귀신이 가끔 나를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다. 갓 여물어 가는 여자아이에게 닥친 신기하고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상황과 여러 감정들이 매일 희한한 꿈을 만들어 냈다. 초경이 지나고 사춘기를 맞고, 첫사랑을 앓고, 몸의 성장이 급속히 빨라지면서 느낀 불쾌감과 야릇한 울렁거림들이 늘 곁에 꿈 귀신을 데려다 놓았다. 그 시절 나는 매일같이 꿈을 꾸었다.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다녀온 후 친구들이 옷도 걸치지 않고 왕릉을 빙빙 도는 꿈, 쫓아오는 여우에게 구슬을 던지다 갑자기 그네를 타는 꿈, 도랑을 따라 하염없이 달리다 신발을 놓치고 앉아 우는 꿈, 마루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보름달이 뜬 늦은 밤 자세를 유지한 채 하늘로 유유히 올라가는 꿈처럼 대개 요상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꿈들이었다. 그런 꿈들을 꾸고 나면 일기장에 기록처럼 써 두었다. 비슷한 꿈을 반복해서 꾸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해석이 되지 않아 찾아본 <꿈의 해석>에서 프로이트는 ‘꿈은 억압된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적 충동, 꿈을 꾸는 시점에 처한 환경적 요인, 최근 일어난 일, 그리고 밤에 자면서 경험하는 신체적 자극 등이 취합되어 하나의 꿈으로 만들어 진다고 했다. 책에 따르면 당시의 내 환경과 질풍노도의 시기, 즉 바람처럼 흔들리던 정신세계가 요상한 꿈으로 발현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도 가끔 요상한 방식으로 꿈 귀신은 나를 찾아 왔었다. 그러고는 무서운 잠을 깨웠다. 결핍과 두려움, 불안감이 엄습할 때 꿈 귀신은 여지없이 어느 곳에서건 나를 찾아왔다. 어릴 때야 영문도 모르고 꾼 꿈이라지만 생각이 분명해진 지금의 나이가 되고 보니 이제는 좀 꿈 귀신이 무섭기도 하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등 뒤에서 폭탄이 터졌다. 

등 뒤에서 폭탄이 터지고, 새벽 세 시에 식은땀을 닦고 보니 아직 나는 어른이 덜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나약한 ‘나이만 든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어쩌면 어린 나에게는 꿈이 찾아온 것이고, 많은 것이 두려워진 지금의 나는 꿈 귀신을 스스로 불러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작은 두려움도 다스릴 줄 모르는 껍데기만 나이든 사람이 되고 말았다.

최근 두려움은 자주 내 곁에 있다. 꿈 귀신도 자주 들락거린다. 영문도 모르고 깨어나길 반복했던 사춘기의 어린 소녀로부터 한 걸음도 성장하지 못했다. 그러나 차라리 잘 됐다. 지금 찾아온 이 꿈 귀신과 싸워 꿈 귀신을 이겨내고 싶다. 몸도 마음도 나이든 어른이 되어야겠다. 

[불교신문3299호/2017년5월24일자] 

신효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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