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들 토론을 들어보면 양방 소통이 아니라 일방의 불통을 보고 있는 듯했다. 말 속에 사람이 있고 사상과 생각이 담겨 있건만 대화하자는 의도보다는 ‘단절’의 느낌이 강하게 든다. 마음과 본질에 귀 기울여 듣기 보다는 손가락 끝을 보고 말만을 좇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런 토론의 장은 보는 이도 답답하고 도통 신심이 나지 않는다.

언젠가 어른 스님이 주관한 한 워크숍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것은 비폭력대화의 장이기도 했는데 참가자들이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각자의 목소리를 내놓는 자리였다. 의견이 분분하기도 하고 자기 주장만을 펴기도 했다. 좌장 역할의 어른 스님은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전체 질서와 대화가 물처럼 흐를 수 있도록 조화롭게 균형을 잡아주었다.

처음에는 침묵하거나 방어적이었던 이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고 대화 속으로 스며들었다. 위엄과 권위만이 아닌 대중과 눈높이를 맞추고 조율해주는 좌장의 역할은 빛나고 감동스러웠다. 마치 큰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넉넉하게 품어주듯이 말이다. 

나 자신도 있는 그대로 보기가 어려운데 상대방을 존재하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해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좌장 스님은 일일이 눈을 맞추고 에너지와 마음이 들어있는 경청과 공감을 해주었다. 누구든 내 말을 제대로 경청하는지 건성건성 듣는지 알아차릴 수 있듯이 진정성이 담겨있는 공감은 마음이 먼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분의 말씀이 하도 아름다워 가만히 공책에 적어 보았다. “그 마음 정말 이해가 됩니다. 정말 그러셨겠습니다. 충분히 알 것 같습니다. 그러시겠네요. 잘 들었습니다. 이제 제 얘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제가 당신의 말씀을 정리해 볼게요. 귀중한 의견 잘 들었습니다.” 

상대방을 향한 관심과 배려가 흘러 넘쳤다. 진정한 비폭력대화란 이러한 것이구나. 말 한마디로 내가 상처 준 사람들, 또 내가 받은 상처를 꺼내어 흙을 털어내고 말끔히 씻어 채반에 널어야겠다. 입의 언어보다 마음의 언어에 귀 기울이자. 가끔씩 일상적인 안부가 아니라 마음의 안부를 물어볼 일이다. 말의 향기가 아카시아 꽃처럼 은은히 남도록. 두고두고 생각나도록. 공감과 배려가 더욱 절실한 5월이다.

[불교신문3298호/2017년5월20일자] 

일광스님 거창 죽림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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