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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1 (2017).6.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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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쇼佛show] 노블리스 오블리주보살행과 자비행으로 국가발전 사회통합 기여
부처님 가르침에 귀의한 후 전쟁을 멈추고 평화를 실천하며 백성들의 안락을 위해 노력한 인도 아쇼카왕이 세운 석주. 사진은 바이샬리 대림정사의 아쇼카 석주이다. 사자는 부처님 열반지인 쿠시나가라를 향하고 있다. 사진제공 = 양주 석굴암 주지 도일스님.

 

영국의 명문학교 이튼 칼리지 학생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 자발적으로 참전해 조국을 지키다 전사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큰아들 제임스 루스벨트는 고도 근시에, 위를 절반이나 잘랐지만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복무했다. 한국의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 회장도 사원들의 경영 참여와 회사 이윤의 사회적 환원을 실천해 지금까지 존경 받고 있다. 지도층 인사들이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지 않고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실천한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모범사례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열거한 사례처럼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도덕적 의무를 실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투철한 공공정신과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실천하는 것은 국가발전은 물론 사회통합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를 통해 실리나 눈앞의 이익보다는 명분과 대의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이다. 또한 특정 계층에 집중된 부의 재분배를 가능하도록 하여 사회적 갈등과 대립의 원인을 감소하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성을 지닌 지도층뿐 아니라 평범한 국민도 사회적 책무를 실행하는 사례가 늘면서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평생 알뜰하게 모은 재산을 학교나 복지기관 등에 흔쾌히 내놓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서민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천은 지도층 인사들에게 오히려 경종을 울리고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전통은 단순히 서구 사회에만 있는 특별한 현상은 아니다. 특히 대의를 중시하는 동양 사상에 기초한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서는 유구한 역사와 함께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일부 지도급 인사들이나 가족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는 마음껏 향유하면서, 그에 부합하는 의무나 사회적 환원을 애써 외면하여 비판에 직면한 적도 비일비재한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자신이 획득한 권력과 경제력의 사회적 공공성을 애써 외면하고, 사유화함으로써 국가발전을 저해하고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들어 한국의 지도급 인사들이나 자녀들이 병역 의무를 기피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해 지탄을 받은 역사는 짧지 않다. 또한 경제적 여유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물론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에게 작은 도움의 손길도 전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국민에게 위임받은 국가권력을 자신의 출세나 자식에게 세습하기 위한 목적으로 편법까지 동원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실천은 고사하고 국가와 사회의 갈등을 극대화하는 처사라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특히 정치인이나 재벌 등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 공공(公共)의 이익을 위해 솔선수범하는 자세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깨달음과 중생구제의 가르침을 강조하는 불교의 노블리스 오블리즈는 보살행(菩薩行)과 자비행(慈悲行)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겠다는 원력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보살의 삶이 곧 노블리스 오블리즈이기 때문이다. <화엄경>에서는 “보살은 이웃들의 온갖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대비심(大悲心)을 일으킨다”면서 “보살이 자비심으로 중생을 구제하면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한다. 중생이 없다면 보살은 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한다.

지도층 인사의 솔선수범 
일반 국민 참여도 ‘늘어’
눈앞 이익보다 명분 중시
원광스님 세속오계 ‘지침’

부처님 재세시 전륜성왕(轉輪聖王)으로 불린 인도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노블리스 오블리즈를 실천했다. 15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피빈린내 나는 전쟁으로 마가다국을 북인도 최대 강국으로 변화시킨 그는 부처님 가르침에 귀의한 후 통치 방식을 바꾸었다. 전쟁 보다는 평화를 염원하고, 백성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부처님을 만난 뒤 패권을 다투던 코살라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

부처님 열반 300년 후에 나타난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제3대 왕 아쇼카 역시 노블리스 오블리즈를 실천했다. 왕위에 오르기 위해 99명의 경쟁자(이복형제 등)를 살해한 폭군이으로 숱한 전쟁을 통해 이웃 국가를 정복했다. 하지만 불교의 가르침을 접한 후 그는 불자로 거듭났다. 살육을 멈추고, 강압적인 통치를 거두었다. 전쟁 대신 백성을 위해 우물을 파고 곡식을 저장했으며, 빈민들에게는 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정책을 폈다. 부처님 성지에 칙령(勅令)을 새긴 아쇼카 석주(石柱)를 세워 세인들이 지침으로 삼게 했다.

2015년 5월 8일 원적에 든 전 청도 운문사 승가대학장 흥륜스님. 평생 검소한 생활을 하며 모은 정재를 동국대 의료원에 기증했다.

신라 진평왕 22년(600년) 원광(圓光)스님이 진평왕 22화랑들에게 전한 세속오계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구체적인 덕목을 담고 있다. 화랑오계(花?五戒)라고도 불리는 세속오계에는 신라의 지도자가 될 화랑들이 지녀야 할 삶의 방식이 담겨있다. 사군이충(事君以忠), 사친이효(事親以孝), 교우이신(交友以信), 임전무퇴(臨戰無退), 살생유택(殺生有擇)가 그것이다. ‘신라판 노블리스 오블리주’라고 할 수 있다. 세속오계를 전한 2년 뒤인 602년 화랑 귀산(貴山)과 추항(?項)은 602년 백제 전투에 참전해 순국했다. 이후 신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지도자로 양성된 화랑은 세속오계의 정신을 지키며 국가 발전에 이바지 했다.

불교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승군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한 스님들의 삶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불교의 영향을 받은 재가자들도 삶의 현장과 역사 속에서 보살행을 실천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시대와 역사를 넘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석길암 동국대 교수 견해

불탑(佛塔)이나 사원(寺院)을 지을 때 큰 기금을 제공자하는 시주자(조성 공덕자)와 신도들이 참여하는 기본적인 형태를 갖고 있다. 큰 시주자 외의 동참자는 불탑이나 사원 조성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노동력의 댓가를 받는다. 이러한 구조 자체가 불교에서는 부의 재분배나 일자리 창출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불탑이나 사원 조성이 가능하도록 동의한 큰 시주자들은 노를리스 오블리즈를 실행하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도의 빔비사라왕과 아쇼카왕은 불교에 귀의한 후 통치 방식에 변화가 있었다. 아쇼카 빔비사라 역시 부의 재분배 등 사회통합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기본적으로 동의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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