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칠십은 안 넘길거라” 말씀대로…

큰스님께서는 무오년(戊午年)에 열반하셨다. 나는 무오년 하안거는 내원사에서 살았기 때문에 동안거는 석남사로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와, 동안거도 내원사서 살지 그랬노.” “다른 선방에도 살고 싶어서요.” “그래.” 그 말씀뿐이었다.

그 말씀을 들은 것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리요. 정말로 큰스님께서 돌아가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내가 큰스님 뜻에 따라 내원사에 살았다면 큰스님을 뵐 기회가 더 있었으련마는. 어리석은 중생이라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후회스러웠다. ‘나는 칠십을 안 넘길 거라’고 늘 말씀하셨지만, 말씀대로 가실 줄이야.

무오년 겨울, 내원사에서 시자로 난 스님은 고경(古鏡)스님과 진구(眞求)스님이었다. 큰스님은 열반하시기 며칠 전에 내원사를 다녀가셨다. 내원사를 떠나시는 날은 해운정사에 사십구재 법문이 있어 해운대로 먼저 가시게 되었다. 고경스님과 진구스님은 해운대까지만 모셔다드리고 내원사로 도로 돌아갔다. 두 스님은 욕두(浴頭)라는 소임이었는데 공교롭게도 다음날이 대중목욕날이었다. 미리 가서 목욕탕을 청소하고 물도 대고 땔나무도 준비해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월내까지 가지 못했다. 훗날, ‘그때 월내까지 모셔다 드리지 못한 일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었다’고 고경스님이 말했다.

이상하게도 그해 겨울에는 큰스님께서 내원사로 자주 발걸음을 하신 것 같다. 내원사는 출가본사(出家本寺)라는 인연이 있어 특히 좋아하셨다. 큰스님의 걸음이 잦다보니 사중에서 조금 눈치를 보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큰스님이 가시면 대중이 조금 분주해진다. 후원에서는 뭐라도 해드리려고 부산을 떨게 되고 대중들은 공부하다가 물을 것이 있다고 큰스님 방을 들락거리게 되어서다. 그런 것을 좋게 보는 시선도 있지만, 별로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는 이도 있기 마련이라 시자들의 마음이 그리 편안하지 않았을 성싶다. 시자가 된 입장으로는 잘 해드리고 싶지만, 사중에서 그리 협조적이지 않아 마음이 괴로웠다고 한다.

큰스님께서 내원사에 며칠 계시는 동안, 시자들은 별식으로 녹두죽을 쑤어 드린 것 외에는 별다른 음식은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에는 내원사 성불암(成佛庵)의 홍시를 좋아해 거기까지 가서 갖다 드리곤 했는데 그땐 드시지 않겠다고 해 가지러 가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열반하시고 난 뒤 난데없는 말이 떠돌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난다더니 정말 그랬다. ‘향곡 큰스님은 내원사 가셔서 홍시를 잡수신 것이 잘못 되어 그게 원인이 되어 돌아가셨다’라는 말이다. 세상에 이런 이상한 유어비어가 나돌다니. 있지도 않은 일이 정말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감은 월내로 돌아온 그날 저녁에 드셨다. 싸리나무를 넣어 소금물에 삭힌 감을 어느 신도가 선방에 공양을 올렸다. 그 감을 큰스님에게도 한 쟁반 갖다드린 것이다. 감을 워낙 좋아하시다보니 밤에 드시고 속이 편치 않으셨다. 그러나 그것이 원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큰스님께서는 간경변증(肝硬變症)이라는 지병을 가지고 계셨다. 말하자면 간이 딱딱하게 굳어져 간 기능이 저하되는 병이다. 그 병이 짙어져 가신 것이다. 담당의사가 큰스님의 병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빵빵한 풍선과도 같아 항상 조심해야 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스님은 병에 대해 평소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병원에서 이르는 대로 식습관도 바꾸지 않았다. 성철 큰스님께서도 향곡 큰스님의 그런 점을 걱정을 하며 일침을 놓으셨다.

“향곡이 니는 아무끼나 묵고 많이 무가서 오래 못 살끼라. 조심 안 하모 빨리 가삐린다”고 경고하셨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투리 속에 도반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들어있음을 엿볼 수 있는 말씀이다. 그나저나 사인(死因)을 똑바로 알고 말해야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추측해서 말한다는 건 삼가야 될 일이 아닌가 싶다.

법념스님 경주 흥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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