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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佛性)은 양심입니다...하루하루 늘 베푸세요”[53선지식 구법여행] 18. 서울 삼천사 회주 성운스님
  • 정리=장영섭 기자 사진 김형주 기자
  • 승인 2017.05.0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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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법인 인덕원 대표이사 성운스님이 지난 4월28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18번째 53선지식 구법여행에서 ‘금강경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를 주제로 법문하고 있다.

불교사회복지에 앞장서온 서울 삼천사 회주 성운스님(사회복지법인 인덕원 대표이사)이 불교신문과 조계사불교대학총동문회가 공동 주관하는 53선지식 구법여행 초청법사로 법석에 올랐다. 스님은 지난 4월28일 오후7시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18번째 53선지식 구법여행에서 ‘금강경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를 주제로 법문했다. 법문 내용을 요약했다.

 <금강경(金剛經)>은 600부 반야부 경전 가운데 577권 째에 해당하는 경전입니다. 조계종 종헌은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규정해 스님을 포함한 불자들이 반드시 금강경을 공부하도록 했습니다. 주석서만 800종이 넘을 만큼 예로부터 대승불교의 핵심을 연구하는 경전으로 유명합니다. 어느 경전이든 경전의 제목에 그 경전의 핵심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금강이란 결코 깨어지지 않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의미입니다. 무엇이 영원히 사라지 않는 지혜인지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불교의 수행이란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입니다. ‘마하’는 ‘크다’, 반야는 ‘최고의 지혜’, 바라밀은 반야에 이르게 하는 수행법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하면 최고의 지혜를 키워나가는 행위와 생활이 곧 마하반야바라밀입니다. 그렇다면 최고의 지혜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설명될 순 있겠습니다. 우선 초기불교에서 설명하는 지혜는 분명한 앎과 함께하는 통찰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있는 그대로의 실체를 분명히 알기 위한 수행에 나선다면 그것이 바로 지혜를 키우는 일이겠습니다.
 불교의 수행은 고정된 견해로부터 벗어나려 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과 고정관념은 항시 어떤 현상의 한쪽만 보거나 절반만 보는 데서 비롯됩니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세상은 제행무상이어서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그러나 중생은 기억에 의존하고 그 기억에 따라 현상을 재단하려는 습성이 커서 지금 현재 생생하게 변화하는 삶의 모습을 좀처럼 정확하게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고정된 생각은 썩은 물
어디에도 집착하지 말자

편견과 선입견 없애는 게
금강경이 말하는 수행

‘나’라는 오만이 얼마나
덧없고 한심한지 깨달아야

부처님은 최고의 사회복지사
일상 속에서 보시 실천해야

 

흐르지 않는 물은 결국 썩은 물과 똑같다는 원리로 보시면 됩니다.  본래 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형상이 있는 것도 아니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애써 막으려고 하면 마음에는 집착이라는 괴로움이 자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에 어떠한 편견과 선입견과 고정관념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무주(無住)의 도리를 금강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하기를 바라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변화의 과정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고정된 생각이고 빠르게 변화하는 것은 실제 현실의 모습입니다. 결국 우리의 생각은 실상(實相)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나의 고정된 편견으로 현실을 재단하려 할 때 괴로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발생하는 고통을 알아차리는 시도가 바로 불교의 수행입니다. 최선을 다해 업념(業念)에서 실상을 통찰하려는 것입니다.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若見諸相非相) 즉견여래(卽見如來).’ 금강경의 본질을 가로지르는 사구게(四句偈)입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부처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허망하다’고 설명합니다. 여러분 어렸을 때부터 인생의 여러 장면을 떠올려보십시오. 갓난아기였을 때와 파릇파릇한 청소년 시절부터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열심히 생계를 잇고 양육을 하면서 지나온 그 세월들을. 그리고 이젠 얼굴에 주름살이 지고 기력이 예전 같지 않은 지금을 생각해보십시오. 자, 얼마나 허망합니까? 이렇게 ‘눈에 보이는 나’란 존재는 참으로 허망하다는 걸 절감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보통 만약 상이 상이님을 볼 수 있다면 그 즉시 부처님을 보리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저는 이를 ‘모든 것은 허망하지만 결코 허망하지 않은 것이 있다’는 뜻으로 바라봅니다. 예컨대 우리의 생각은 끊임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지만 그렇게 일어났다가 없어지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락날락하는 마음의 바탕이 있습니다. 그러한 바탕을 흔히 ‘불성이다 여래다’라고 하는데 저는 그걸 양심이라고 명명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양심을 느낄 때가 언제입니까. 배부르고 등 따시면 절대 양심을 느끼지 못합니다. 내 인생이 잘 나갈 때는 제 건강과 잇속만 챙길 뿐 나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남에게서 빼앗지나 않으면 다행입니다. 남에게서 사기를 당해 가진 재산을 다 잃었을 때, 제 잘난 맛에 살다가 뼈저린 실패를 맛 봤을 때, 내가 그동안 잘못 살아왔구나 깊은 후회와 반성에 빠져듭니다. 내가 공들여 쌓아올린 상이 허망하게 무너졌을 때 진정한 참회와 함께 참된 불자로 살아야겠다고 각오를 다지게 되는 법입니다. 나의 존재가 한심하고 덧없음을 알게 될 때, 향락이 허무하다는 걸 느꼈을 때 그 사무치는 마음에서 톡 튀어나오는 것이 바로 양심입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만 살던 사람은 허망함을 통해서 비로소 양심의 자리를 발견합니다. 결국 허망하지 않은 자리는 바로 양심의 자리입니다.
 양심이 일깨워지면 나눔에 익숙해집니다. 대승불교에서 으뜸가는 실천덕목은 보시입니다. 불교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을 고통의 속박에서 해탈시키는데 목적이 있으며 이것이 곧 중생제도 중생복지이자 대승보살도의 실천입니다. 이것을 현대의 용어로 말하면 사회복지라고 합니다. 사회복지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불국정토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불교와 사회복지는 고통을 여의고 행복을 얻는다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말씀을 시대에 맞게 전법포교하기 위해서는 현 시대의 사회복지 정책과 제도를 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심을 깨우치고 남들에게 베푸는 사람이 많아질 때 모두가 부처가 되는 사회는 한걸음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헐떡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면 금강경만큼 좋은 경전도 없습니다. 금강경을 늘 품에 수지하고 다니며 하루에 한 번 씩이라도 독송한다면 자연스레 깨달음의 눈이 열리고 깨달음의 말을 할 수 있게 되리라고 여러분에게 약속합니다. 쉴 새 없이 바라고 조르는 중샘심이 녹아내리는 묘한 가피를 맛볼 수 있습니다. 애욕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 정도를 걸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베풀었다는 마음(相)을 갖게 되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바라기 때문에 베풀었다는 그 마음마저 없이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위하고 뻐기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게 되면 공덕은 달아납니다. 이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합니다. 어디에도 머무름 없이 마음을 내라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의 실천행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은 대개 경제적으로 넉넉해졌을 때 인생이 여유로워졌을 때 해야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보시란 따로 마음을 내고 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 행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진시한 보시이고 온전히 남을 위한 보시일 때 그 공덕은 정말로 엄청나고 무한할 것입니다. 제가 약속합니다. 
 

정리=장영섭 기자 사진 김형주 기자  fuel@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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