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중앙종회의원 진각스님

 

올해는 봉암사 결사 70주년을 맞는 해다. 해방 직후 당대의 내로라하는 수좌들이 봉암사에 모여 철저한 참선과 계행(戒行)으로 일관함으로써, 일제강점기의 잔재에 찌든 한국불교에 경종을 울렸다. 오늘날의 청정승가 복원에 봉암사 결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건 부인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조계종립 특별선원으로 지정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듯 봉암사는 종도 전체의 양심이자 긍지다. 그러나 최근 봉암사의 청정수행가풍이 변질되는 것 아닌지 우려감을 느끼게 하는 소식이 들렸다. 오는 4월29일 전국선원수좌회가 봉암사에서 총무원장 직선제와 관련한 토론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종단의 법통을 상징하는 신성한 도량에서 정치적이고 파당적인 성격이 농후한 집회를 연다는 건 매우 부적절하다는 생각이다.

더군다나 토론회가 열릴 예정인 4월29일은 하필 국가중요무형문화재인 연등회가 성대하게 봉행되는 날이다.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30만 개의 연등이 밤하늘을 수놓는 불교계 최대의 잔치다. 불자는 물론 온 국민이 부처님이 설한 지혜와 자비 안에서 서로 화합하고 협력해야 할 날에, 종단 내부에 분란을 일으킬 게 자명한 집회를 계획하고 있는 셈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찬탄해마지 않아야 할 봉축 분위기에, 우리 스스로 찬물을 뿌리고 있는 행태를 일반인들이 비웃기나 하지 않을지 몹시 걱정스럽다. 과연 진정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들인지 정체성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주최 측인 전국선원수좌회가 수십 개의 재야단체에 토론회 참석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간 종단 집행부에 깊은 반감을 표하거나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온 사람들의 모임이 다수 눈에 띈다. 무엇보다 기가 막힌 건 젊은 대학생들까지 종단 내 분열과 혼란의 소용돌이에 밀어 넣으려 한다는 것이다.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가 초청명단에 포함됐다. 대불련에 소속된 법우들은 탈종교화 시대와 젊은 층이 종교에서 대거 이탈하는 막막한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정진하고 눈물겹게 전법을 펼치고 있는 친구들이다.

도대체 직선제가 무엇이기에 어른으로서의 체면을 버려가면서까지, 부처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면서까지 강행해야 하는 건지 통탄스런 마음으로 자문하게 된다. 이렇게 말하는 자신도 제방선원에서 수십안거를 지내온 납자로서 봉암사는 우리 수좌들의 마음의 고향이기에 더더욱 가슴이 아프다. 궁극적으로 이처럼 졸렬하고 지질한 세속화는 결국 승가의 선거가 초래했다는 사실을, 수좌 스님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진각스님 중앙종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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