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에게는 

인과와 연기의 준엄함을 

강조하고 싶다

치열한 경쟁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으로 선택받는 순간

모든 상대방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조선 중종 39년(1544년)에 태어난 조원(趙瑗)은 이조좌랑, 삼척부사, 승지를 지낸 남명 조식의 문하로, 20대에 진사시에서 장원급제해 사간원의 정언(正言)을 지낸 강직하고 문장이 뛰어난 선비였다. 두 차례에 걸친 왜구의 침입과 광해군의 폭정이 끝난 인조 때 승지 조희일(趙希逸)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명나라의 한 대신으로부터 뜻밖의 질문을 받는다. “조선의 승지를 지낸 조원을 아십니까?” “제 부친입니다.” 그 대신은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이라 쓰여진 한지와 함께 ‘이옥봉의 시집’을 건네준다. 놀라운 인연이다. 

양녕대군의 고손자로 선조 때 의병장이자 충북 옥천군수를 지낸 이봉(李逢)은 서녀 이옥봉(李玉峰)을 조원의 첩으로 출가시킨다. 조원은 첩실을 거절하다가 이봉의 친구로서 병조판서를 지낸 장인 이준민(李俊民)의 강권에 옥봉을 받아들이면서 앞으로는 시를 쓰지 않고 조신한 여인으로 살 것을 다짐 받게 된다.

그러나 타고난 시재(詩才)를 숨길 수 없던 터에 옥봉의 이웃 농부가 억울하게 소도둑으로 몰려 옥에 갇히게 되자 농부 아내의 부탁으로 수령에게 위인송원(爲人訟寃)이라는 탄원의 시를 써서 바치려 하는데 이것이 남편 조원에게 발각됐다. 조원은 ‘아녀자가 쓴 글이 문지방을 넘어 나라 일까지 간섭하니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면서 부부의 연을 끊고 친정으로 내치게 된다.

끝내 남편 조원을 보지 못하고 온몸을 자신의 시로 칭칭 감은 옥봉의 주검은 바다에 떠다니다가 명나라 연안에서 수습되어 조원의 아들 조희일의 손에 넘겨져 주검은 시가 돼 조선으로 돌아오게 된다.

조원에게서 내쳐진 옥봉의 시는 그 아들 조희일, 조석형을 거쳐 조경망이 숙종 30년(1704년)에 <가림세고(嘉林世稿)>라는 문집으로 편집해 조원과 그의 아들, 손자의 글과 함께 부록으로 엮어 32편이 세상에 알려진다. 이로써 이옥봉은 황진이, 허난설헌 등과 함께 조선 3대 여류시인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연생기(因緣生起), 즉 인연법의 준엄함을 다시 일깨우는 일화다. 요즈음 대선 주자간의 공방을 지켜보면서 갑자기 세대와 국경을 상관하지 않고 끈질긴 인연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몽혼(夢魂)같은 규정(閨情)의 주인공인 이옥봉을 생각한다.

누가 되든 이 나라의 지도자로서 대통령이 된다면 상대후보 뿐만 아니라 그 지지층까지 다 끌어안고 가야 할 터인데 편을 갈라서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몰아붙이고 깎아내리고 심지어는 사실과 다른 것을 꾸며내어 공격하고 있다. 정치평론, 시사해설 등에 동원되는 사이비들은 그것이 마치 정치의 속성이고 선거전략이라도 되는 듯이 부추기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백척간두의 위태로운 지경에 처한 대한민국을 책임지고 이끌겠다고 나선 후보자들은 물론이고 국민들도 두 눈 크게 부릅뜨고 옥석을 가려야 할 것이다. 정치는 최선이 아니고 차선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다시 한번 대선 후보들에게는 인과와 연기의 준엄함을 강조하고 싶다. 치열한 경쟁이라 하더라도 대통령으로 선택받는 순간, 모든 상대방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불교신문3293호/2017년4월26일자] 

하복동 논설위원·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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