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가 싸웠다. 공교롭게도 한 친구는 며칠 전 다른 학교에서 전학을 왔고, 다른 학생은 며칠 후면 역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갈 예정이었다. 이 군이 멀뚱멀뚱 한 곳을 보고 있었는데, 김 군은 그게 자기를 노려보는 줄 알고 쫓아가서는 일격을 날렸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다른 친구들이 몰려와서 싸움을 말린다는 것이 이 군만 잡는 바람에 그는 순식간에 샌드백 신세가 되고 말았다. 코뼈가 부러지고 입술이 터졌다.
물론 거기까지도 친구들과의 단순한 싸움이라고 하면 그만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그저 다반사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하고 서로 툭툭 털며 치료를 해주고 악수를 하면 된다.
문제는 담당교사의 해결과정에 있었다. 다른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혀 이곳으로 전학을 와서 또 문제를 일으킨 김 군과 화해하지 말라고 은근히 조장했다. 그러면 그 아이는 다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교사는 짐덩어리 하나를 덜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가해자인 김 군은 오히려 앙심을 품고 자기가 이 군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여길 것이고, 이 군이 다니는 길목에서 몽둥이를 갖고 기다릴 수도 있다. 그러면 교사는 김 군으로 하여금 더 큰 죄를 짓게 만든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 군도 김 군도 모두 피해자가 되고 인생의 행로가 엉뚱하게 꼬일 수도 있다.
어른은 그 둘을 화해시키고 친구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 사회는 친구들을 경쟁자로 적으로 만들기에 바쁘다. 앞에 가면 넘어뜨려서라도 밟고 지나가게끔 만든다. 내가 만난 이 군은 말썽을 부리긴 했지만, 그래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는 신세지만, 착하고 섬세한 아이였다. 김 군과 화해하고 용서했냐고 물으니까,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이들을 문제아로 낙인을 찍어 유랑민으로 만드는 어른들, 이 사회가 더 문제아다. 원래 친구인데 그 관계를 적이라고 조장한다.
[불교신문3293호/2017년4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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