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나들이에 신나

앞서가던 손녀가

계단에서 구를 뻔 했다

“아유, 큰일 날 뻔 했어요”

“할머니, 케첩 좀!”

자장면을 시킨 할머니는

손자에게 덜어주고

남은 것을 먹었다

높임말을 하여

높임말을 가르치고 

아이 시중을 들며

배려와 사랑을

대물림하는 할머니 …

“무궁화 완행열차로 물금역에 다가가면/ 역장은 물 그음 하고 비음을 내지만/ 아득히 떴다 갈앉는 자리 그리움이 남는다// 가령 물금은 물건 값을 말하지 않는다/ 물 그음, 그 비음의 쓸쓸함을 따라가면/ 여운이 끝나는 어디쯤에 어머니는 계셨을까// 불치병에 숨져가던 어린 손자를 품에 안고/ 수염 하얀 명의를 물어 물금역을 찾아가던/ 물 그음, 그 비음 끝에서 손을 젓는 내 어머니.” 

한 세기 전부터 기차가 다녔으니 대단한 영화를 누렸을 경부선 물금역. 지금은 완행열차로 급할 것도 없는 여행객이 다니지만, 불치병에 숨져가던 어린 손자를 품에 안고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가던 걸음은 얼마나 다급했을까. “물금˜”하고 발음을 하면 아득히 떴다 갈앉는 자리에 그리움이 남는 〈물금역>(박옥위). 딸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치맛단을 끄셨을 노모.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다시 만날 수 없는 어머니. 

한 번도 가본일 없는 물금의 여운을 안은 채 양재천 벚꽃길에 나선 주말. 풀 섶에 내려앉은 꽃송이가 반가워 하나씩 주워 모으는데 수양벚꽃가지를 휘어잡은 할머니가 예닐곱쯤 되어 보이는 손녀에게 “그만 따세요”라고 했다. 아이는 또 “이것 좀 잡아줘”하며 어긋 맨 가방에 꽃송이를 따 담고 할머니는 나뭇가지를 잡아주곤 했다. 주말에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아이를 돌보러 온 것 같았다. 곱게 차려입고 느긋한 걸음에 웃음 실린 목소리로 높임말을 하는 할머니. 줄곧 어리광 섞인 반말을 금지옥엽 어르는 모습이 푸근해보였다. 꽃그늘을 지나며 뒤돌아보지 않아도 다 보이는 조손(祖孫)의 한나절이 아름다웠다. 

물길 따라 가다 청둥오리 원앙도 만나고 들길 따라 가다 오목눈이 직박구리 어치도 만나며 반환점 늪지에 이르면 육천걸음 정도. 돌아가는 천변 윗길에서는 가뭄에 물이 준 하천의 잉어 떼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둑방을 지나 마을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육교에서 두 손녀를 앞세운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바깥나들이 신나서 질라래비훨훨 가던 아이 하나가 넘어져 계단 아래로 구를 뻔 했다. “아유, 큰일 날 뻔 했어요!” 운동복 차림의 할머니는 아이들과 한집에 사는 것 같았다. “천천히 가요.” 얼굴이 하얘졌으나 꾸지람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주로 혼자 먹는 식당에 앉아 전주곱돌비빔밥을 기다리는 사이 육교에서 만난 할머니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가 굴러 떨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옆자리에는 돈가스를 시킨 손자와 함께 나온 할머니가 식판을 가져다주며 시중을 들고 있었다. “할머니, 케첩 좀!” 자장면을 시킨 할머니는 손자에게 덜어주고 남은 것을 먹었다. 

딸의 아들을 살린 어머니의 내리사랑. 해줄 수 없는 것도 해주고 싶은 어머니. 높임말을 하여 높임말을 가르치는 할머니. 아이 시중을 들며 배려와 사랑을 대물림하는 할머니. 물금의 여운 속에 천변 산책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풍경이 ‘신모계사회’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어미의 내리사랑은 거역할 수 없는 천형이다. 꽃받침을 단 채 송이 째 내려쌓인 꽃 무덤 멀리 할머니와 아이의 뒷모습이 겹쳐 흐른다.

[불교신문3293호/2017년4월26일자] 

홍성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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