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담] 사부대중공사, 무엇을 해냈으며 어디로 가야 하나

조성택 : 알다시피 대중공사는 승가의 오랜 전통이다. 2015년 종단 집행부가 이를 복원해 풀기 어려운 현안들을 화쟁(和諍)적으로 대중공의(大衆共議)적으로 잘 풀어내고 있다. 직접민주주의의 살아있는 모델이다. 과거에는 승려대회가 종단을 바꿨지만 이제는 사부대중공사가 종단을 바꾼다. 승려대회는 출가자들만의 단합이었던 데다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 사부대중공사가 종단의 중요한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고 의사를 결정하는 방법으로 정착돼야 한다. 국민이 불교를 지켜보고 있다.

신호승 : 대중공사의 법제화도 필요할 것이다. ‘대중공사의 활성화’ 여부를 주지인사고과제 항목에 넣으면 지역불교에 뿌리를 내리는 데 크게 기여할 것 같다.

백년대계본부장 도법스님

도법스님 : 대중공사가 말들만 쏟아내는 자리 같지만 종단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 눈부신 사실이 묻혀 있다. ‘예산 30억 원 이상 대형사찰의 재정공개’와 ‘서의현 전 총무원장의 사면 보류.’ 대표적인 성과 두 가지다. ‘면죄부’ 논란을 빚은 호계원의 공식 결정에 제동을 걸어 빛이 바래던 1994년 종단개혁의 정신을 환기시켰다. 특히 재정공개는 이미 94개혁 때 나온 선언이지만 20여 년 동안 단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던 상태였다. 대중이 가진 소통과 단결의 힘으로 만들어냈다.

'승려대회' 이후 새로운 대안

흥선스님 : ‘개혁’과 ‘화합’이라는 일견 양립되는 가치들을 동시에 구현했다. 여러 경험들이 쌓였으니 지역에도 대중공사의 정신이 널리 퍼져야 한다. 불교 내부 문제를 넘어 사회 현안에 대한 불자들의 합의된 목소리도 생산해냈으면 한다.

김왕근 : 우리가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델인 숙의민주주의의 담론을 주도하자.

도법스님 : 제16교구본사 고운사가 모범을 보이고 있다. 신(新)도청 포교당 건립이라는 교구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사부대중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낸다. 주지 호성스님에게 들으니 신도들이 주인의식을 갖게 된 게 눈에 보인다고 하더라.

화쟁위원회 부위원장 흥선스님

흥선스님 : 바깥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대중공사 덕분에 스님들의 의식이 달라지고 있다. 종교집단이 원래 보수적이고 변화에 둔하다. 주로 이야기를 하고 지시를 하던 스님들이 대중공사를 통해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의 태도를 바꿔가는 게 고무적이다. 발언과 대화와 토론의 과정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난 시민의식과 공동체의식이 한국불교의 내일을 기대하게 한다.

이제는 지역에 전파해야 할 때

조성택 : 사부대중공사에 참여하면서부터 ‘한국불교의 위기’ 운운하며 여는 교수들의 세미나에 잘 안 간다. 굉장히 관념적이기 때문이다. 대중공사에서 현장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듣는 게 훨씬 재미있고 유익하다.

신호승 : 지역대중공사에 초점을 맞추자. 처음엔 재가불자들이 스님들과 말을 섞는 것 자체를 매우 낯설어하는 분위기였다. ‘어떻게 내가 감히 큰스님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나’ 불경스럽게 생각했다. 승속을 불문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하는 대중공사는 전통적 사고를 답습하는 신도들에게 우리는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시민의식을 키워줬다. 끝나고 나면 다들 행복하고 속 시원하다는 표정이다. 바닥에서부터 변화를 추동해내는 공간이자 마당이다.

김왕근 : 아쉬운 점도 말해야 도움이 될 것이다. 사부대중공사에서 결정된 내용이 시행은 되는지 얼마나 되고 있는지 왜 안 되는지 참석자들은 잘 모른다. 대중공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히 말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결론이 된 말을 현실화에 종단을 발전시키고 성숙시키자는 것이다. 제안들이 어느 정도로 현실화됐는지 결과보고의 자리가 대중공사에 정례화됐으면 좋겠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흥선스님 : 스님들에게야 대중공사는 너무 당연한 전통이고 일상이다. 하지만 일반인들 가운데 일부는 사부대중공사가 ‘급조된’ 것인 줄 안다. 대중공사가 불교철학 및 사상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계기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부처님의 지혜에서 만들어진 틀이며 우리의 현실적 문제를 풀어갈 대단히 훌륭한 ‘툴(Tool)'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옳다. 지적 재산권도 확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직선제'가 결론 아니었다

신호승 : 현재 한국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통합’ ‘공존’ ‘합의’다. 서구에서 고안한 갈등조정 프로세스는 많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프로세스만 15개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양하기도 한 데다 매우 효과적이다. 이해당사자들의 양극화한 이익을 중간 지점에서 절충하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그것들에 대한 한계를 서양 이론가들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동양에서 묘안을 구하고 있는데, 대중공사가 그들의 관심에 딱 들어맞으리라 본다. 대중공사는 ‘나’와 ‘너’가 아니라 우리는 한생명이라는 연기적 관점에 철저히 입각해 있다. 한계와 맹점이 분명한 서구의 방법을 무작정 수입해다 쓰는 게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도법스님 : 학습과 탁마와 발심과 서원을 확립해가는 마당이다. 집단지성이 역동적으로 발현되는 현장이다. 사부대중이 주체로 참여해서 허심탄회하게 말하고 공평하게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는데 주최 측은 어떠한 의견도 버리지 않고 있다. 대중이 동의한 것이든 동의하지 않았어도 내용이 괜찮은 것이든. 전부 다 모아서 전부 다 녹여내면 자원도 되고 불쏘시개도 된다.

흥선스님 : ‘대중이 결정하면 소도 잡는다’는 승가의 유명한 속담이 있다. 대중공사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시사하는 말이다. 합의만 이뤄지면 우리가 못 할 일도 못해낼 일도 없다. 무엇보다 대중공사가 결정한 내용은 반드시 실행에 옮겨진다는 믿음을 집행부가 종도들에게 심어줘야 신뢰가 커질 것이다.

김왕근 '붓다로 살자' 편집장

김왕근 : 4차 산업혁명의 핵심적인 양상 가운데 하나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소통하기만 해도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수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만으로 매우 소중한 경험이고 자산이다. 아무쪼록 사부대중공사로 형성된 소속감과 동질감이 재가불자들을 사찰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이는 마중물 역할을 했으면 한다.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 전문직 인사들이 사찰 운영에 참여해 불교 전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날을 기대한다.

'사전' '집중' 대중공사 필요

조성택 : 미국 민주주의의 기반은 ‘타운 홀(Town Hall)' 미팅이 다졌다. 비공식적 공개 모임으로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을 발표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노변(路邊) 담화 외에도 백악관 보좌관들이 국가의 현안을 국민에게 설명하는 방식을 정례화했다. ‘타운 홀’ 미팅이 불교적 버전이 바로 대중공사다.

신호승 : 최초 대중공사를 시작할 때 “한국불교가 가진 최고의 상품”이라고 총무원장 자승스님에게 말씀드린 바 있다.

도법스님 : “대중공사에서 다수가 총무원장 직선제를 원했는데 집행부가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 그날의 정확한 결론은 “직선제 염화미소법(추첨제) 종단쇄신위 안 등 3가지의 장점을 골고루 수렴해 더욱 완성도 높은 제도를 만들어가자”는 것이었다. ‘양자택일식 고집’, ‘묻지마 주장’이 사부대중공사가 지향하는 바는 아닐 것이다. 염화미소법은 선거의 과열과 혼탁을 막을 수 있어 좋고, 직선제는 참종권을 확대할 수 있어서 좋고, 쇄신위의 안은 지방 불교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러나 ‘직선제 프레임’에 묶여 논의가 한 발자국도 진전을 보지 못하는 실정이다. 밖에서 욕하지만 말고 안에서 싸우자.

신호승 : 대중공사가 추구하는 방향은 확실한데 그걸 운영해내는 주체와 방법론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느꼈다. 그래서 ‘사전(事前)’ 대중공사를 제안한다. 본 대중공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말하고 듣는 ‘연습’을 하자는 것이다. 고운사 지역대중공사의 경우 사전 대중공사를 진행했더니 본 대중공사의 집중도와 완성도가 대단히 높아지는 것을 체험했다.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곧 수많은 의견들을 적절히 정리하고 토론의 묘미를 살릴 수 있는 전문적인 ‘진행자’를 양성하는 기구와 교육프로그램도 필요하다.

흥선스님 : ‘집중’ 대중공사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지난 18일 제1차 사부대중공사에서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며 “1박2일이든 2박3일이든 정말 치열하게 논의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종도들의 기대와 믿음이 계속 유지되도록 힘쓰자.

신호승 동그라미대화훈련센터 대표

조성택 : ‘촛불’이 대한민국을 뒤흔들어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다. 다만 촛불민심이 비단 대선 이슈를 넘어 사회의 전반적인 변혁으로 회향돼야 하는데 부진한 형편이다. 불교가 촛불의 저력을 이어받아 우리 사회를 부처님의 광명으로 밝히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

총무원장 선출제 재논의하자

김왕근 : 도법스님 말씀대로 사부대중공사는 민주주의에 대한 최고의 학습과 탁마의 장이다. 종단 지도층이 이것저것 할 일이 많겠지만 대중공사의 확대와 정착을 종책 1순위로 두고 중앙과 교구, 적어도 사암연합회까지는 제도화한다면 우리의 길을 찾고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신호승 : 한국불교의 미래와 관련해 ‘생활불교’로의 전환이 화두다. 국민들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 그들의 애환을 얼마나 치유해주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무엇보다 생활불교가 실현되려면 무엇보다 단위사찰이라는 공간의 위상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불교가 지역민과 만나는 최초의 지점이 절이기 때문이다. 산중에서 홀로 수행하는 산중불교 역시 소중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지역사회와 밀착하지 않으면 사찰은 존재 근거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사찰이 시민단체와 이웃종교단체를 초청해 마을의 현안을 대중공사 방식으로 다룬다면 신뢰도가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도법스님 : 지나간 시절 기존의 종헌종법 질서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사태가 종종 있었다. 이러한 비상상황에서 초법적 형식의 승려대회가 꼬인 실타래를 푸는 데 공헌했다. 2012년 백양사 승풍실추 사건으로 난리가 났었다. 누군가는 옛 관향에 따라 ‘총무원장 사퇴’ ‘중앙종회 해산’ ‘비상체제 출범’을 외쳤다. 그러나 결사추진본부 자문위원회가 ‘총무원장 참회’ ‘종헌질서 유지’ ‘종단 쇄신’이라는 발전적인 방향의 대책을 제시해 원만하게 마무리했다. 이것이 바로 사부대중공사의 기원이다. 1998년 종단분규 이후 내부문제와 관련해 대규모 승려대회는 일어나지 않았다. 종헌종법 질서를 안정적으로 구축한 오늘날, 또 다시 파괴적인 방식으로 그 질서를 허무하게 허물어뜨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조성택 : 다툼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화쟁은 다투되 평화롭게 다투자는 것이다. 모두가 불교의 주인이 되는 사부대중공사는 불교 자체의 성숙과 함께 불교의 사회에 대한 확장성을 넓혀줄 것이라 확신한다.

흥선스님 : 사람이 아니라 오직 숫자만 보는 세상이다. ‘내게 얼마나 이익이 되는가’로만 타인의 가치를 판단한다. 진심어린 소통은 바보짓이고 자살행위라고 여긴다. 대중공사 현장은 인성교육의 현장이다. 주인의식만큼이나 공동체의식도 중요하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덕목은 ‘함께’라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한다.

신호승 : 총무원장 스님의 진정성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매번 참석해 현장을 묵묵히 지켰다. 종단의 수장임에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평등한 일원으로서 발언했다. 듣기 거북한 말이 나와도 듣기만 했다. 심지어 면전에서 ‘물러나라’는 공격을 당해도 평상심을 잃지 않았다. 대중공사의 연착륙을 이끌어낸 마음이다.

도법스님 : 곧 총무원장 선거철이 온다. 정치적으로 이런저런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누구를’ 차기 총무원장으로 뽑는가는 사부대중공사의 일이 아니다. 다만 ‘어떻게’ 뽑느냐는 우리의 몫이다. 물론 종단 발전을 바라는 순수한 애종심으로 직선제를 말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총무원장 선출제도에 대해서 공의를 모아야할 때다. 정식의제로 재논의하자고 사부대중공사 추진위원회에 제안할 생각이다. 앞서 밝힌 3가지 안에 덧붙여서 진심을 가지고 치열하게 의견을 나눈다면 정말 혁신적이고 바람직한 방법론이 나올 것도 같다. 전화위복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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