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거 봐라 일을 그리 해 놓고도 잘 못한 줄도 모르지. 허허 참. 넌 늘 그렇게 덤벙대기만 하니 어쩌면 좋으냐. 일이란 시작하기 전에 깊이깊이 생각하라 했잖냐. 덜렁 저질러 놓고 잘못되면 그땐 어쩔거야. 내 그리도 말해왔는데 또 이 모양이냐. 허어 내 참. 그런 네가 나 죽고 없을 땐 어찌 살래?” “걱정 마십시오. 그러시는 아버지는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어찌 사셨습니까?”

부자간에 나눈 이야기다. 얘기하나 더 하자. 출가를 결심한 아들을 앞에 놓고 가족들이 둘러앉았다. 아버지 혼자서는 장남인 아들의 결심을 돌릴 자신이 없어 ‘가족회의’를 연 것이다. 엄마 형님 누나 동생 게다가 여동생까지 앉은 자리라면 혹시나 아들놈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진 아버지였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는 한 평생 무얼 바라고, 무얼 하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오셨습니까?” 아버지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입을 뗀 그 아버지의 말은 이러했다. “나는 그런 저런 거 생각도 않고 그저 살다보니 이렇게 됐다. 나이만 먹었고 이젠 기력도 약해졌다. 그저 느거들 키우고 가르치는데 세월 다 보냈다.” 아들은 아버지를 모른다. 자녀들은 부모를 모른다. 그런 채로 자라고 어른이 되어간다. 

제가 어른이 되고 세월을 살아가다 나이 더 먹고 제 밑에 자녀들이 자라서 그들이 어른이 됐을 때, 그때 가서야 부모를 알게 된다. 그것도 쬐끔. 

딸애가 시집가 살면서 친정 엄마를 만나러 왔단다. 엄마는 할매가 돼 버렸다. 장터로 나들이를 간 모녀는 자매처럼 즐거웠다. “엄마, 뭐 샀는데?” “으응, 손크림.” “엄마, 그거는 별로다. 내가 좋은 화장품 사 줄게. 그거 사지마라. 그런 거 뭐하로 사노?” 엄마가 말했다. “나도 여자 좀 되볼라꼬. 니는 내가 여자인줄 여태까지 몰랐제? 나도 여자데이.”

철 들자 늙은건가 늙어서야 철이 든 건가. 자식은 제 꼬락서니를 새삼 돌아본다.

[불교신문3292호/2017년4월22일자] 

이진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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