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선사에게 젊은이가 물었단다. 이 산중에서 얼마나 사셨냐고. 그러자 선사는, 몇 해인지는 모르나 사방의 산이 푸르렀다 다시 누래지고, 누래졌다가 다시 푸르게 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고 대답했다. 산중무일력(山中無日曆)의 이 선사가 바로 중국 당대(唐代)의 선승 대매법상(大梅法常)이다. 법상선사는 87세를 사는 동안 한 차례도 산중을 떠나지 않았다. 요즘 같은 정보시대에서 고인(古人)들의 삶의 자세가 부럽기도 하지만 세월과 날짜를 잊고 사는 것도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월과 날짜를 잊고 살라는 것은 ‘바보처럼 이 세상을 살아야 지혜롭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성공과 입신을 위해서는 현명하게 처신해도 모자랄 판에 바보처럼 살라고 한다면 사람을 놀린다고 화를 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오래 전에 열반하신 경봉선사는 ‘바보가 되어라’는 법문을 했고, 고(故) 김추환 추기경도 자화상을 보면서 ‘바보!’라고 탄식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바보가 되라는 참뜻은 본래의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을 쓰지 못하고 거짓과 욕망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본래의 마음을 회복하라는 권유이다. 인생에서 때로는 바보의 철학이 필요하다. 바보의 철학에서는 자기주장을 내세울 일이 별로 없다. 바보니까 남들보다 뒷줄에 서서 잘난 척하지 않겠다는 것이 바보 철학의 핵심이다. 

공자님 말씀에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면 아는 것’이라 했다. 우리는 잘못된 것을 인정하고 솔직해지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현명한 바보다. 지금 우리주변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많지 않아서 오히려 어리석은 바보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러 후보들이 바보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이런 세태라서 바보의 요지를 떠올려 보았다.

[불교신문3292호/2017년4월22일자] 

현진스님 청주 마야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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